지하철 내 휴대폰 벨소리·통화는 민폐
방일관광객 늘면서 야당 의원 "통화 허용해야" 지적도
"지금 2호선 막 탔어. 빨리 갈게."
우리나라에서는 지하철 탔을 때 통화하는 것이 딱히 주의를 줄 만한 행동은 아닙니다. 약속 시간에 늦었을 때 오히려 지금 열심히 가고 있다는 현장감을 전달하기 위해 통화가 필요할 때가 있죠…. 제가 자주 그런다는 것은 아닙니다만.
여름휴가로 일본 여행 가는 분들은 이야기가 좀 다릅니다. 일본에서는 지하철 통화에 꽤 엄격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관광객이라도 일단 "여보세요. 너 어디야?"하고 받는 순간 모든 시선이 집중되는 기분을 느끼실 수 있을 텐데요. 일본에서 외국인 관광객이 가장 많이 하는 실수가 이 지하철 통화라고 하죠.
'법적으로 금지하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할 이유가 있나'하는 생각이 드는 분도 있고, 또 한편으로는 '지하철에 시끄럽게 울리는 벨소리를 생각하면 공감이 간다'라는 분도 계실 텐데요. 사실 일본에서는 올해 초 국회까지 이 통화 논쟁이 도마 위에 올랐었답니다. 오늘은 생각보다 크게 다가오는 문화 차이, 일본의 '전철 통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일본 철도회사인 JR동일본이나 서일본에서는 홈페이지에 열차 이용 매너로 "휴대전화는 매너모드로 설정하신 후 통화는 삼가시기 바란다"라는 점을 명시하고 있는데요. 구글에서 검색하면 '일본 열차 통화', '일본 열차 통화 해외 반응', '외국인은 왜 맨날 열차에서 통화하느냐', '열차 내 통화 이유'에 대한 것들이 연관 검색어로 나올 정도입니다.
일본에서 지하철 통화는 실례로 여기는데요. 전화를 받을 경우 작은 목소리로 "지금 지하철이라 나중에 전화하겠다"고 짧게 대답하고 끊거나, 업무 연락으로 회신이 꼭 필요한 경우라면 아예 내려서 받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와는 사뭇 다른 풍경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가는 길 한마디도 벙긋 못하고 가만히 있어야 하냐. 그것도 아니고요. 너무 큰 소리가 아니라면 이야기 나누거나 하는 것은 또 다들 용인하는 분위기입니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외국인 관광객 입장에서는 이 문화가 굉장히 신기한데요. 올해도 TV아사히에서 지하철 통화 금지 문화에 대한 외국인 반응을 인터뷰해 보도하기도 했죠.
2023년 일본민영철도협회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지하철에서 스마트폰 등을 사용하는 데 있어 가장 민폐라고 생각되는 행동은 1위가 '걸으면서 사용하는 것', 2위가 '혼잡한 열차 내에서 사용하는 것'이었습니다. 3위는 '안 내리고 계속 사용하는 것', 4위는 '통화하는 목소리나 벨소리'였는데요. 이것만으로도 기본적으로 사용 자체에 민감하다는 것이 느껴지시죠.
실제로 일본에서도 이제는 바뀌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여론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는데요. 올해 초 일본 국회에서는 지하철 내 휴대전화 통화를 인정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논의가 나왔습니다. 일본유신회의 후지마키 겐타 의원은 "왜 지하철에서 떠드는 것은 되는데 휴대전화로 통화하는 것은 매너 위반으로 여겨지는 것이냐"며 사이토 데쓰오 국토교통상에게 의문을 제기했는데요. 우리나라로 따지면 국토교통부 장관한테 질의한 것이죠.
여기서 사이토 국토교통상의 대답은 굳건합니다. 그는 "나는 매너라는 것이 적절하다고 보는데 이런 의견도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겠다"고 말했는데요. 사실상 통화를 삼가야 한다는 주장에 변함이 없음을 드러낸 것이죠. 그러나 후지마키 의원은 끝까지 작은 목소리의 통화는 인정해야 한다고 맞섰는데요.
올 초에는 열차 내 통화로 인한 형사 사건도 벌어졌습니다. 고속철도 신칸센에서 통화 매너를 둘러싸고 승객이 운행 지연으로 경찰에 체포됐는데요. 사건의 발단은 한 승객이 고속철도 객차 연결 부분에서 20분 이상 전화로 말다툼을 하고 언성을 높이면서 시작됐습니다. 다른 승객이 이를 시끄럽다고 항의하게 된 것입니다. 이에 이 말다툼을 하던 사람이 갑자기 다른 신칸센으로 옮겨타면서 운행에 지연을 발생시켰다는 것인데요. 이 때문에 '열차 통화로 발생한 사건'이라는 제목으로 보도가 됐었죠.
그렇다면 왜 이렇게까지 엄격할까요? 이는 아마 예전부터 있던 일본 철도회사들의 규칙 때문으로 보입니다. 도쿄메트로 등 일본 철도회사들은 예전부터 홈페이지 공지사항으로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통화를 삼가달라는 룰을 띄웠었는데요. 심지어 예전에는 열차에 탑승했을 때 노약자석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휴대전화 전원을 꺼야 한다는 규칙도 있었습니다. 총무성에서 스마트폰 등 각종 휴대전화 기기의 전자파가 노약자들이 신체에 삽입한 각종 의료기기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의견을 내면서부터인데요. 2015년부터는 이것이 '혼잡할 시에만 노약자석 인근에서 핸드폰을 끈다'로 완화가 되는 등 점차 바뀌게 되죠.
여하튼 최근에는 20대 등을 중심으로 '어느 정도는 용인해야 한다'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TV 아사히 보도에서도 "그래도 짧게는 괜찮지 않나", "몇십초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한다"라는 일본 시민들의 생각이 담기기도 했습니다. 방일 관광객이 늘어나는 가운데 이것이 지나치게 남의 시선을 의식한 관습일지, 새롭게 주목받을 수 있는 문화가 될지는 지켜봐야겠습니다.
전진영 기자 jintonic@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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