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인공지능(AI)을 도입하면 저희한테는 뭐가 좋습니까?"
금융, 증권, 자동차 등 산업의 모든 영역에서부터 인사, 재무, 영업 등 기업내 직무 영역까지 AI가 거론되지 않는 곳이 없다. 모두가 AI를 이야기한다. 그럼에도 내가 몸담은 산업 영역이, 내 조직이 어떻게 달라지는지에 대한 명쾌한 답을 듣기는 쉽지 않다. 실리콘밸리 빅테크들은 이렇게 했다더라, 금융 핀테크 기업은 AI로 저렇게 혁신을 했다더라 하는 등 활용 사례는 넘쳐나지만 여전히 감은 잡히지 않는다. 책 ‘AI 경제학’은 명확한 답을 준다. "AI란 예측하는 기술이다."
캐나다의 핀테크 기업 베라핀은 AI를 활용해 금융부정탐지 시스템을 개발했다. 금융 부정을 예측하고, 은행 고객의 신원을 인증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최첨단 머신러닝 모델을 활용한 기술적 역량이 뛰어났다. 미국 나스닥이 27억5000만달러(약 3조8000억원)에 인수하며 유니콘 기업이 됐다. AI의 활용은 사실 베라핀만의 특징은 아니다. 기존 거대 기업들도 자사 서비스에 AI를 들이고 있다. AI를 활용한 신규 서비스를 내놓기도 한다. 그러나 성공 사례는 찾아보기 쉽지 않다.
저자들이 주목하는 것은 베라핀이 ‘AI를 통한 예측’을 조직내 핵심 워크플로(workflow)에 통합시켰다는 점이다. ‘예측이 돈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정도를 넘어, 예측 비즈니스가 가능하려면 조직의 혁신 또한 수반돼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라는 것이다.
1차 세계대전 때 영국 육군은 탱크를 도입했다. 여전히 기병대가 활동하던 당시에 탱크는 역전의 무기였다. 영국은 그러한 탱크를 기병대에 배치했다. 독일이 재무장을 시작하자 영국은 말의 사료를 10배 늘렸다. 기병 장교에게는 말 두 필, 탱크 장교에겐 말 한 필을 제공했다. 탱크로 ‘재미’를 본 것은 군 조직이 심각하게 와해해 있던 독일이었다. 그들은 탱크를 기존 조직에 붙이지 않았다. 새로운 기술엔 새로운 조직과 전략이 필요하다고 봤다. 역사책에서 ‘전격전’은 독일군의 위력을 상징하는 표현으로 남았다.
신기술은 막연히 도입되는 것이 아니다. 기술의 수용에는 세 가지 단계가 있다. 도입 단계, 응용 단계, 시스템 단계다. 대부분의 기술은 도입 단계와 응용 단계까지 침투하며, 때론 이 정도로도 생산성 향상을 기대할 수 있다. 다만 진정한 혁신은 ‘조직의 혁신’이 동반돼야만 가능하다. 진정한 변화는 혁신가들이 새로운 시스템 단계 솔루션을 창조할 때 비로소 시작된다. 네이선 로젠버그는 "무수한 사업 실패는 대부분 창업자가 자신이 우연히 매료된 부분과 전체 시스템의 나머지 부분 사이의 상호 의존이라는 연관성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한 신기술은 언제나 기존 조직과 관성의 저항을 받는다. 토머스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하고 20년이 더 지난 20세기에 들어서도 전기는 드문 동력이었다. 1897년 에디슨이 전구 작동을 시연하면서 유명세를 탔다. 몇 년 후 맨해튼의 펄 스트리트에서 발전소를 가동하면서 그 거리를 가로등으로 밝혔다. 그 후 20년이 지났지만, 미국 가정의 3%만이 전기를 사용했다.
책은 어떻게 전기가 증기를 넘어서는 지배적 동력원으로 자리 잡았고, 또한 AI가 어째서 21세기의 새로운 전기가 될 것인지를 보여준다. 저자들은 앞서 ‘예측 기계’라는 책을 통해 AI 경제학의 초안을 제시했으나, 기술의 수용 단계 중 첫 단계인 ‘도입 단계’만 다뤘다. AI의 진정한 혁신은 다름 아닌 ‘시스템’의 혁신이었는데, 정작 그 부분을 빠뜨렸다는 자아비판에서 출발한 책이다.
AI 경제학|어제이 애그러월 외 2인|천형석 옮김|에코리브르|384쪽|2만2200원
김동표 기자 letme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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