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 회복세에 이어 내수도 회복하는 조짐을 보인다.” “가계부채는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있다.” “금융시장은 상당히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수출, 내수, 가계부채,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등 한국 경제를 둘러싼 각종 우려에 대한 정부의 평가다. ‘회복하는 조짐’ ‘안정적 관리’ ‘상당히 안정적인 모습’ 등 수식어가 어딘가 모호하고 객관적이지 않은 느낌이지만 대다수 국민은 정부의 시각을 일단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지식이나 기술을 보유하면서 사회나 조직의 의사결정에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테크노크라트(technocrat)’의 레토릭은 그렇게 작동한다.
그러나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면 한국 경제를 둘러싼 환경은 정부의 평가와 달리 녹록지 않음을 발견한다. 가계대출의 추이, 연체율이 그렇고 자영업자들의 상황과 소비자들의 심리 그리고 고용통계 등이 그러하다. 우선 한국은행에 따르면 4월과 5월 가계대출 잔액은 11조원 증가했다. 누적 잔액은 1109조6000억원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국제금융협회(IIF)가 최근 내놓은 지난해 말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도 93.5%로 34개국 중 최상위에 속했다. 기준 연도를 2015년에서 2020년으로 바꾸면서 비율이 100% 이하로 낮아졌지만 순위에는 변동이 없었다. 더욱이 주요국 가계부채 항목에는 없는 ‘전세보증금’을 합한 부채비율은 약 145%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빚이 많아도 잘 갚고 있다면 다행이지만 연체 지표도 위태롭다. 금융감독원이 집계한 올해 들어 지난 4월까지 은행의 신규 연체액은 10조8000억원에 달했다. 코로나19가 창궐했던 2021년(11조5000억원)과 2022년(12조6000억원) 연간 연체 금액에 비견될 만한 수준이다. 특히 600만 자영업자들의 상황이 심상치 않다. 지난 4월 기준 개인사업자의 연체율은 0.61%로 0.2%포인트 상승해 2012년 12월 이후 11년 4개월 만에 최고를 기록했다. 이미 폐업률은 지난해 말 기준 9.5%로 1년 새 0.8%포인트 상승했고, 폐업자 수는 91만1000명으로 11만1000명 증가했다.
부담이 누적돼 온 탓에 취약 차주의 상황은 특정 임계점을 눈앞에 둔 듯하다. 실제로 지난 5월 소비자심리지수는 98.4로 올해 들어 처음으로 100에 미치지 못했고, 6월 소상공인체감경기지수(BSI)도 67.4로 전달 대비 7.0포인트 하락했고, 1년 전 대비 13.4포인트나 급락했다.
경제의 활력을 가늠할 수 있는 고용은 지난 5월 39개월 만에 가장 나쁜 성적을 거뒀다. 통계청 고용동향에 따르면 15세 이상 취업자는 1년 전에 비해 8만명 늘어나는 데 그쳤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본격화하기 시작한 2021년 2월 이후 3년 3개월 만에 최소다. 무엇보다 청년층 고용률이 0.7%포인트 하락, 청년층 실업률을 6.7%까지 끌어올렸다.
같은 지표를 두고 정부와 연구기관이 내놓은 메시지마저 엇갈린다. 내수 회복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는 정부의 그린북(green book) 발표와 달리 한국개발연구원은 수출은 늘고 있으나 내수 회복세는 “아직 아니다”고 진단했다. 정부 평가에만 기대기엔 각종 지표와 둘러싼 환경이 심상치 않다. 한국 경제 피벗(pivot·정책 전환)은 요행으로 얻어낼 수 없다.
임철영 경제금융부 차장 cyl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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