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치동 학원가의 반경이 더 커지고 있다. 킬러문항 척결로 사교육을 잡겠다는 1년 전 윤석열 대통령 공언과 달리, 킬러 사교육의 ‘주범’으로 꼽힌 초대형 학원이 사세를 키우면서 중심부인 롯데백화점 강남점~은마아파트 사거리를 더 점령하고 있다. 킬러 대신 지난해 불수능을 불러온 준킬러를 목격한 상위권 입시생들이 몰려들기 때문이다. 이 바람에 중소 학원들은 학원이 없던 근처 빌딩으로 밀려나고, 등하원 교통지옥 구간이 넓어지고 있다. 수능을 어설프게 건드리면 오히려 사교육이 심해질 것이라던 입시 전문가들 예상이 맞았다. 입시 시장 원리에 따른 작동이다.
의대 증원이 초대형 학원의 기세에 기름을 더 부었다. 지역인재 선발용 원정 유학을 떠났다가 주말·방학 때마다 대치동으로 올라올 의대 입시생을 노린 원룸 초단기 임대(달방) 시세까지 벌써 들썩인다고 이 동네 부동산중개업자는 전했다.
이렇게 배출될 ‘증원 의사’들이 과포화할 인기과목 대신 윤 대통령과 정부의 기대처럼 전국의 저수가 ‘내외산소’(필수과목)에 퍼지진 않을 것으로 의료 전문가들은 내다본다. 비급여 진료과 시장이 차면 그들을 먹여 살릴 새로운 상품이 의약업계에서 개발된다. 의료 시장 원리에 따른 작동이다. 당장 인공관절 수술이 포화하자 줄기세포 무릎주사가 신의료기술로 등장해 정형외과 실손보험 청구를 폭증시키는 중이다. 피부과, 안과, 성형외과에서도 지난 30여년간 기존 시술의 경쟁이 치열해질 때쯤이면 늘 더 비싼 신기술이 등장했다.
의사가 늘면 진료량이 는다(2035년 부족해질 진료량을 늘리려고 2000명을 증원한 것이다). 건강보험이 의사에게 주는 지출도 증가하는데, 이미 턱밑에 찬 현행 건강보험료율로는 감당 불가능하다. 정부도 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2월 발표한 4대 필수의료 패키지에서 건보법을 개정해 월급이나 소득에서 걷는 건강보험료율 법정상한선을 인상할 운을 띄웠다. 그러나 3년 뒤 차기 대선을 앞둔 정부가 실제로 법 개정을 할 리 없고 그 대신 개원면허제, 진료적합성검증, 가치기반지불제, 혼합진료금지 등 증원하면서 수입은 줄이는 칼을 꺼냈다고 의료계는 주장한다. 이번 ‘밥그릇 싸움’은 여기서 비롯됐다.
모두가 못 살고 병원에 못 가던 시절 설계된 ‘저부담(국민)·저수가(의사)·박리다매(의료접근성)’ 건강보험 체제 개혁 필요성은 정부와 의료계가 오래전부터 공감했다. 양측은 개혁 방식과 우선순위에서 극한 대립했는데, 정부는 증원 주도 개혁을 선택했다. 의료계가 초강경 반발하자 필수의료 관련 수가 인상, 전공의 사직서 수리 및 근무조건 개선 등의 후속 당근책이 나오는 중이다. 그래도 의료계는 증원 원점 재검토와 근 50년간 적자 편성인 의료수가 현실화가 개혁 출발점이라며 요지부동이다. 의협이 건보공단과의 수가 협상에서 10% 인상을 요구하며 총파업을 거론한 배경이다.
정부 대책과 의료계 요구 모두 ‘실행 전제 조건’은 건강보험 등 의료재정의 대폭 추가 투입이다. 그러나 어느 쪽도 "국민이 더 내야 한다"는 말은 입 밖에 꺼내지 않는다. 정부는 호의적 여론에 찬물을 끼얹기 싫고, 의료계는 의료재정 확대를 반대할 이유가 없다. 이번 의료사태는 양측이 중간 어딘가에서 타협해야 종결된다. 만난다면 어느 지점이냐에 따라서 국민 월급봉투를 얼마나 더 건드릴지가 결정된다. 의료사태 후반전의 관전 포인트다.
이동혁 바이오중기벤처부장 do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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