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 투입 현실적으로 어려워…정책금융기관 활용 가능성
선진국보다 열위에 있는 韓첨단산업 지원제도
추가 증자 땐 최대 14조원 금융 지원 가능할 듯
정부가 KDB산업은행에 대한 추가 증자 논의를 물밑에서 진행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 등과 비교해 반도체 경쟁력 제고를 위한 지원 제도가 빈약한 탓에 산업은행을 통해 우회로를 택해 금융 지원을 확대하기 위해서다. 다만 아직까지 금융당국과 산업은행은 결정된 사항이 없다는 입장이어서 실제 집행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7일 금융권에 따르면 관계 부처는 반도체 등 첨단산업 지원 방안으로 산업은행 증자를 통한 저리 대출 또는 지분 투자에 나서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재정으로 직접 지원하는 방안이 여의찮은 만큼 우회로를 확보해 금융 지원 확대를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의 경우 첨단 산업 육성과 유치 등에 투자하면 세액공제 혜택을 주는 'K칩스법'을 3년 연장하는 정책을 제외한 지원 방안이 없는 상황이다. 이에 비해 미국과 일본은 세제 혜택은 물론 보조금 지원을 병행하고 있어 상대적으로 첨단 산업에 대한 원활한 지원이 가능하다.
관계 부처 논의를 거쳐 정부가 산업은행에 1조5000억원 출자를 결정하면 최대 14조원의 금융 지원이 가능할 전망이다. 산업은행의 지난해 말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은 13.70%로 지난 3월 한국토지주택공사(LH) 현물출자가 2조원 규모로 이뤄졌고, 추가로 증자가 이뤄지면 자기자본비율도 14%를 웃돌게 된다.
강석훈 산업은행 회장도 최근 'KDB 넥스트라운드 인 신리콘밸리' 행사를 위해 미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전 세계 국가들이 자국 제조기업을 지원하는 새로운 산업 정책의 시대가 됐다"면서 "산업은행이 자본금을 10조원 늘리면 100조원의 대출 여력을 확보할 수 있어 인공지능(AI), 반도체, 이차전지 기업을 지원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산업은행 증자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관련 부처도 정책금융기관을 통한 첨단 기업 지원방안이 가장 신속하고 현실성 있는 대안이라는 데 공감대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권 관계자는 "재정으로 하기 어려운 상황인 만큼 정책금융기관에 대한 현물출자를 통해 금융지원을 하는 게 가장 가능성이 높은 대안"이라고 분석했다.
이목은 이르면 다음주 초에 열릴 국가재정전략회의에 쏠리고 있다. 내년 예산안과 중기 재정운용 방향을 논의하는 최고위급 회의체인 만큼 산업은행 증자를 통한 첨단산업 지원책도 언급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금융당국 관계자는 "산업은행 등을 활용해 저리 대출과 지분 투자를 하는 방법으로 기업에 지원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는 매년 나오고 있다"면서 "이번 증자 이슈와 관련해 구체적인 내용은 결정된 게 없다"고 설명했다.
임철영 기자 cyl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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