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전북공약으로 공식화…한동훈 위원장도 약속
기관 "현실성 없는 공약, 총선용으로 재탕"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서울 재이전' 주장도
"그런 공약이 있었나요? 전혀 몰랐습니다. 정치에 관심이 없는 편이긴 하지만 문의라도 들어온 게 있었으면 알았을 텐데 없었거든요. 황당합니다."
8일 한 공제회 관계자에게 국민의힘이 내건 '공제회 전북 이전 공약'에 대해 묻자 나온 반응이다. 금시초문이라는 그는 오히려 어떤 내용인지 되물었다. 또 다른 공제회 관계자는 "우리는 정부 소유 공공기관도 아니고 회원들의 기관인데 표를 얻으려고 너무 막 나가는 것 아니냐"라며 "원래 무당층이었는데 너무 열받아서 꼭 투표하기로 마음을 먹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與 공약으로 공식화…韓도 직접 언급
국민의힘은 22대 총선 전북 지역 공약으로 '한국투자공사(KIC)와 7대 공제회의 전북 이전'을 약속했다. 7대 공제회란 경찰공제회, 과학기술인공제회, 교직원공제회, 대한소방공제회, 대한지방행정공제회, 한국군인공제회, 한국지방재정공제회를 뜻한다. 이 공약은 국민의힘 시도 정책공약집에 들어갔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도 이 공약을 지난달 한국지방신문협회 회원사들과의 공동 인터뷰에서 직접 언급했다. 관련 기관과 기업의 유치를 지원하겠다는 약속도 곁들였다. 기존에 전주에 본사가 있는 국민연금과 함께 국부펀드인 KIC, 7대 공제회의 막대한 '자산운용 벨트'를 전주에 만든다는 구상이다. 현실화한다면 전주 지역 정치권, 언론, 시민을 중심으로 그동안 제기됐던 우리나라 '제3의 금융 중심지'에 전주가 한발짝 다가서게 된다.
KIC와 공제회의 전주 이전 주장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양경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KIC의 소재지를 서울에서 전주로 이전하는 내용을 담은 법률안을 발의했다. 당시 진승호 KIC 사장은 "인력 유출이 우려되고, 전주로 내려가서 시너지를 낼 만한 부분이 없다"며 공개적으로 반대했다. 당시 이 발언에 유감을 표한 정치인은 양 의원뿐이었다. 법안도 진척되지 못한 데다 양 의원의 전주을 공천 불발로 수면 아래로 잠들었던 '이전론'이 이번엔 여당 공약으로 부활했다.
기관 "현실성 없어, 총선용 그 이상도 이하도 아냐"
기관 관계자들은 "이미 실리가 없다고 계산이 끝난 문제를 총선용으로 끄집어낸 것"이라며 "현실성이 없어도 너무 없다"고 입을 모았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송주아 수석전문위원은 지난해 KIC 이전 법안 검토 보고서에서 "지방 이전에 따라 다수의 전문인력 이탈이 예상된다"며 "한국투자공사는 해외투자 전문기관으로 지속적인 국부창출 및 국내 금융산업 발전 기여라는 설립목적 달성의 제약 등으로 지방 이전에 따른 손실이 크다는 입장"이라고 했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15개의 글로벌 상위 국부펀드 소재지는 모두 각국의 수도라는 자료도 덧붙였다.
국민연금은 2017년 전주 이전 이후 극심한 인력 이탈 문제를 겪고 있다. 기금운용본부 퇴사자 수는 2014년 9명, 2015년 10명 정도였으나 지방 이전이 결정된 2016년(30명)부터 급증했다. 지난해에도 퇴사한 운용역이 30명이었다. 핵심 인력인 실장급도 있었다. 업계 대비 보수 수준이 낮은 데다 소재지가 지방이라는 점에서 인기가 하락했기 때문이다. 기금운용본부만 따로 떼서 서울로 재이전해야 한다는 주장도 꾸준히 나오고 있다.
공제회의 반발은 더욱 큰 분위기다. 공공기관이 아닌 '공직 유관단체'로 분류되는 공제회의 소재지에 대해 정치권이 왈가왈부하는 것이 불편하다는 것이다. 한 공제회 관계자는 "정부의 지분이 하나도 없으며 회원들이 출자한 자산으로 운용되는 곳이 공제회이기 때문에 소재지는 회원들이 결정할 일"이라며 "공공기관에 비하면 인력도 적은 편이라 '이전 효과'가 크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했다. KIC와 7대 공제회의 인력을 모두 합해도 2000명 수준이라는 것이 그의 지적이었다.
오유교 기자 5625@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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