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대 식물에게도 그런 순간이 있습니다. 잎 한 장에 가는 뿌리 하나가 겨우 달려 있는 몬스테라의 삽수묘를 화분에 심어보지만, 몇 달이 지나도 새 잎이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아 애가 탑니다. 그러던 어느 날, 새 잎 한 장이 나오면서 하루가 멀다 하고 새 잎을 뽑아냅니다. 잎 한 장이 새 잎을 낼 때까지 화분 속에서는 잔뿌리들을 만들어내고 있던 것입니다.
식물은 줄기와 뿌리의 비율이 비슷해야 잘 성장합니다. 이것을 상층부(Top)와 뿌리(Root)의 비율, 즉 T/R 비율이라고 합니다. 잎 한 장짜리의 삽수묘가 한동안 새 잎을 내지 않은 이유는 잎이 나올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뿌리와 줄기의 비율이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줄기보다 뿌리의 비율이 높으면 뿌리를 쳐내야 하고, 뿌리보다 줄기의 비율이 높으면 줄기를 쳐내야 식물이 건강하게 잘 자랍니다. 이 둘 중 어느 하나에도 치우침이 없어야 균형 있게 잘 자랍니다.
그는 자신이 뿌리를 내린 만큼의 비율로 균형감 있게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현재를 즐기고 몰입하는 힘이 그에게는 '뿌리'였던 것이지요. 그의 몰입이 바로 폭풍 성장의 동력인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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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에게는 표현형 가소성(phenotypic plasticity)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식물이 주변의 바뀐 환경 변화를 알아차리고 식물 스스로 자신의 형태를 환경에 맞추는 것입니다. 무늬식물의 경우 빛이 식물에게 어느 각도로, 얼마만큼의 세기로, 어디에 비추느냐에 따라 잎의 무늬 형태와 색깔이 달라집니다. 그만큼 식물은 환경 변화에 능동적으로 적응합니다.
한편으로 식물의 표현형 가소성은 식물이 그만큼 현재에 집중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아무리 '천재적인' 무늬를 가졌어도 식물은 지금 내 잎 위에 떨어지는 빛의 각도와 세기에 집중할 뿐입니다. 식물은 결코 "난 천재적인 무늬를 가지고 태어났으니, 빛이 없어도 충분히 좋은 무늬를 낼 수 있어" 하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천재' 무늬 식물도 언제든지 미련없이 '바보' 무늬를 만들 수 있습니다. 식물에게는 단지 생존 전략일 뿐이니까요.
-아피스토(신주현), <처음 식물>, 미디어샘, 1만7800원
조인경 기자 ikj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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