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대만·미국과 파격 협력으로 위협
美는 반도체 공급망 제국 야망
韓, 광폭으로 보조금 직접 지원해야
엔비디아가 차세대 인공지능(AI) 반도체인 ‘블랙웰’을 올해 말부터 양산한다. 이에 들어가는 고대역폭메모리(HBM)를 두고 삼성전자와 하이닉스의 경쟁이 뜨겁다. 지난달 엔비디아의 개발자 콘퍼런스에서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는 두 회사가 앞으로 엄청난 성장 기회를 맞이할 것이라는 반가운 발언을 했다. 젠슨 황의 사랑은 그런데도 모국인 대만으로 향했다.
세계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업체인 TSMC는 엔비디아의 AI 반도체를 독점해서 생산하고 있다. 그 TSMC가 반도체 부활을 부르짖는 일본과 손잡았으니 위협적이다. 지난 2월 TSMC의 일본 생산 기지인 규슈 구마모토현 제1공장 개소식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반도체 산업 지원을 확실히 할 것을 거듭 강조했다. 그의 발언은 지난 행보에서도 나타났다. 일본 정부는 TSMC 1공장 사업비 1조1천억의 약 40%인 4760억엔(약 4조2500억원)을 지원했다. 올해 말 공사가 시작되는 구마모토 2공장(2027년 가동 예정)에는 한술 더 떠 약 7300억엔(약 6조5천억원)을 투입한다.
어디 대만 TSMC뿐인가. 미국 메모리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 테크놀로지의 히가시히로시마 공장에도 최대 1385억엔(약 1조2300억원)의 보조금을 지급한다. 일본 정부의 동맹국과의 파격 행보에는 반도체 자국 공급망을 안정적으로 만들려는 야심이 묻어 있다. 5%에 불과한 반도체 자급률을 2031년 44%로 끌어올리겠다는 결기를 읽을 수 있다.
미국은 지난달 20일 칩스법에 따라 자국 반도체 기업 인텔에 연방보조금과 대출 지원으로 195억달러(26조원)를 투입하려 한다. 칩스법은 미국 내 반도체 투자에 총 520억 달러(약 70조 원)의 보조금과 세금 혜택을 제공하는 법안이다. 인텔은 85억달러의 보조금과 110억달러의 대출을 받아 미국 네 개 주(洲)에서 1,000억달러 공장을 건설하고 확장한다. 인텔은 세금 감면을 통해 추가로 250억 달러 확보를 희망한다. 미국은 칩스법으로 전 세계 핵심 반도체 기업에 대규모 자금 지원 공세를 펼쳐왔다. 미국에서는 인텔이 이른 시일 내 대만과 한국 반도체 경쟁사(社)와 겨룰 수 있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고 있다. 미국 중심의 반도체 인력, 기술, 공급망 제국 건설로 2030년까지 전 세계 첨단반도체 20% 생산 목표를 달성하려 한다.
용인시 반도체 클러스터 건설은 2021년 3월에 개시한 사업이다. SK하이닉스가 2027년 봄에 그곳에 1기 공장 가동을 위한 결실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년 3월 예정인 착공 시점에 맞춰 도로 확장공사가 한창이다. 그동안 정부, 지방자치단체, 기업이 세계적인 칩 워(반도체 전쟁)의 한가운데에서 ‘원 팀’을 이루는 데 숱한 어려움이 있었다. SK 하이닉스는 하루 26만 5000t 공업용수 확보를 둘러싼 지자체와의 갈등으로 1년 6개월을 허비했다. 삼성전자는 평택캠퍼스에서 지자체와 송전탑 문제로 5년이나 고생했다.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기업의 산업단지 내 입주와 관련해 규제를 둘러싼 시비도 끊이지 않았다. 메가 반도체 클러스터를 만들려는 용인시 노력에 빛이 보여 다행이다.
늦었지만 여야가 용인을 포함해 경기도 일대를 묶어 ‘반도체 메가시티’를 구축하려는 특별법 공약을 내놓은 것은 환영할만하다. 일본처럼 구마모토현에 배치해 지역 균형을 이루면 더 아쉽지만 말이다. 미국과 일본에 견줬을 때 세액공제 같은 간접지원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주요 반도체 경쟁국에 필적할 광폭 보조금을 직접 지원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칩 워에서 지속가능한 생존 기틀을 마련할 수 있다.
조원경 UNIST 교수·글로벌 산학협력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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