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류승룡 인터뷰
넷플릭스 시리즈 ‘닭강정’ 아빠 최선만役
“이병헌 감독, 처음에 농담하는 줄 알아
촬영장서 명상과 슬픈 생각하며 ‘웃참’”
닭강정이 된 딸을 되돌리기 위해 아빠와 짝사랑남이 나선다. 언뜻 들으면 이게 무슨 이야기인가 싶다. 이 엉뚱하고 신박한 상황에 배우 류승룡(53)이 숨결을 불어 넣으니 그 맛이 달라진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넷플릭스 시리즈 ‘닭강정’은 지난 15일 공개돼 온라인상에서 각종 ‘짤’을 양성하며 ‘Z세대’(Zen-G, 1990년 후반~2010년 초반 태생)들의 지지를 얻고 있다. 1626만명을 동원한 코미디 영화 ‘극한직업’(2019) 콤비, 류승룡과 이병헌 감독이 재회한 작품이다. 무대를 옮긴 이들은 작정한 듯 웃긴다.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류승룡은 “처음에 ‘닭강정’ 줄거리를 듣고 감독이 농담하는 줄 알았다”고 떠올렸다. 그는 “원작 웹툰을 봤는데 신선했다. 도전하고 싶은 마음에 설렜다”고 말했다.
‘닭강정’ 시나리오를 보며 대사를 나도 모르게 소리 내 읽었다고 했다. ‘극한직업’ 때와 비슷한 인상을 받았다고 떠올린 류승룡은 “당시 ‘지금까지 이런 맛은 없었다’ 대사도 저절로 읽혔는데, 이번에도 술술 나왔다. ‘이런 의도로 썼겠구나’ 느껴졌다. 난도 높은 작업이었지만, 감독과 두 번째 호흡이라서 수월했다”고 말했다.
“이 악물고 슬픈 생각” 진정성 있게 몰입한 코미디
류승룡이 연기한 최선만은 닭강정이 된 딸 민아(김유정)를 되돌리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닭강정(딸)이 바닥에 내동댕이쳐지자 세상을 잃은 표정으로 절규하는 모습이 웃음을 준다. 그는 영화 ‘테이큰’(2008) 리암 니슨을 떠올리며 연기했다고. 전체 이야기를 꿰뚫으며 진정성 있게 몰입해 만든 최선만이다.
“엄청난 명상과 진심이 요구되는 연기였어요. 조금이라도 가짜 연기를 하는 순간 몰입이 깨진다고 봤죠. 닭강정에 정말로 딸이 갇혀있다고 생각하고 집중했어요. 다른 작품과 똑같이 진심으로 연기했어요. 초반에는 당황하고 놀랐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고군분투하는 과정에 진지하게 임했어요.”
류승룡이 배우 안재홍, 김남희, 유승목 등과 만나는 장면에서는 여지없이 웃음이 터진다. 촬영하며 배우들의 코믹 연기에 NG를 내지 않으려 뜻밖의 ‘웃참 챌린지’를 했다고 떠올렸다. 그는 “‘헥! BTS 따라 할 뻔했네’ 대사는 애드리브였다. 촬영할 때는 내가 그 말을 한 줄 모를 만큼 집중했다. 나중에 알고 놀랐다. 그 장면에서 라바(유승목)를 보는데 너무 웃겨서 충격받았다. 그분 따님이 시집갈 때가 됐는데, 목을 빼고 라바가 되는 모습에 이를 악물고 슬픈 생각을 했다”며 웃었다.
극적인 상황을 표현하며 극적인 연기로 시청자의 몰입을 도왔다. 데뷔 초, 연극 무대에서 쌓은 호흡과 내공이 빛을 발했다. 류승룡은 “친근했다”며 “물 만난 고기처럼, 고향으로 돌아간 듯이 연기했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 연극 무대에 오르던 때가 떠오른다. 요즘은 기술이 발전해서 공연 환경이 좋지만, 당시에는 중강당, 대강당 끝까지 소리가 전달돼야 해서 지나친 발성, 과도한 몸짓으로 연기했다. 이후 매체로 넘어오면서 몸에 밴 연극 연기를 지우는 게 힘들었다. ‘닭강정’ 은 연극적인 발성을 원 없이 하며 쾌감을 느꼈다. 그 모습을 오히려 젊은 시청자들은 신선하게 보지 않을까. 새로운 기호로 다가갔다고 본다”고 했다.
“제가 잔인한 걸 못 봐요. 요즘 호르몬의 변화도 느끼고.(웃음) 원래 고수를 못 먹었는데, 맛있게들 먹기에 용기 내서 한번 먹어봤더니 맛있더라고요. ‘닭강정’도 마찬가지예요. 처음에는 ‘이상해’ 하다가도 진입장벽을 넘으면 중독성이 있죠. 생각 없이 웃다 보면 스트레스도 풀리고, 고정관념도 부서질 겁니다.”
“코미디는 당분간 쉬어갑니다”
류승룡은 환갑이 될 때까지 코미디를 안 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당분간 코미디 안식년을 가질 생각”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공개를 앞둔 작품인 ‘아마존 활명수’도 코미디라서 당분간 이쪽은 쉬고 싶다. 대중이 또 류승룡이 웃기는 걸 보고 싶어할 때 ‘짠’ 하고 나타나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OTT 최고 흥행작으로 꼽히는 ‘무빙’에 이어 ‘닭강정’까지. Z세대 사이에서 뜨거운 인기를 얻은 작품에 연이어 출연했다. 덕분에 10·20세대에서 높은 인지도를 구축했다. 류승룡은 “기발한 작품에 도전과 호기심을 강하게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악역도 하고 싶고, 정극에서 진지한 모습도 보여드리려 한다. 여러 가능성을 열어놓을 생각이다. 다만 ‘지금 아니면 영영 못 하겠다’는 마음이 드는 장르가 있는데, ‘닭강정’이 그랬다”고 했다. 그러면서 “배우는 선택받는 직업이다. 관객, 시청자와 연출자, 제작자로부터 선택받는 사람들이다. 하얀 도화지 같은 배우로 살고 싶다. 그래서 더 다양한 작품에 참여하고 싶다”고 전했다.
이이슬 기자 ssmoly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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