⑪행동주의펀드 제안 배당확대안 부결
배당 늘었다면 최대주주 배당금 1524억
기업 재무부담·높은 세부담 등 고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우리나라에서 배당금 수익으로 가장 많은 돈을 버는 재벌 총수다. 자산 상위 10대 그룹 총수 가운데 이 회장이 2023회계연도 배당으로 3000억원이 넘는 가장 많은 배당금을 받게 될 것이란 재벌닷컴의 추산이 나올 정도다. 이 회장은 삼성에서 사실상 지주사 역할을 하며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삼성물산을 비롯해 삼성전자, 삼성생명, 삼성SDS 등으로부터 현금 배당금을 받는다.
그런데 이 회장이 받을 수도 있었던 600억원 이상의 삼성물산 추가 배당금이 한순간에 날아갔다. 삼성물산 주총장에서 행동주의펀드들이 제안한 대규모 배당확대와 자사주 매입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서 이 회장이 받을 수도 있었던 추가 배당금이 사라진 것이다. 추가 배당금을 포기하면서까지 이 회장과 삼성물산이 지키려 했던 건 뭐였을까.
행동주의펀드 요구 배당확대·자사주 매입 요구안 모두 부결
지난주 열린 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시티오브런던 등 5개 행동주의 펀드들이 요구한 배당확대안은 모두 부결됐다. 이들의 배당확대안은 보통주 1주에 4500원, 우선주 4550원씩 배당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또 5000억원 규모 자사주 매입도 함께 요구했다. 현금배당과 자사주매입 금액을 합치면 1조2364억원에 달한다.
행동주의펀드가 가진 삼성물산 지분은 1.46%로 힘을 가지기엔 매우 적다. 하지만 박스권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삼성물산의 지지부진한 주가 흐름과 이에 지친 소액주주들, 정부의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기 위한 기업 밸류업 추진이 행동주의펀드 움직임에 힘을 실어줬다. 행동주의펀드는 주총에서 소액주주 등 전체 23% 지분의 지지를 모았다.
그러나 주요 대주주를 비롯해 지분 82%를 가진 주주들이 반대표를 던졌다. 삼성물산은 이재용 부회장 일가와 측근들이 약 40%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이들은 경쟁력 제고와 신사업 투자가 더 필요하다는 입장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물산도 주총 전 공시를 통해 행동주의펀드들의 주주환원 강화 요구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회사 전체의 잉여현금흐름을 초과하는 수준의 대규모 배당확대를 실시할 경우, 삼성물산의 미래 성장동력 확보와 사업경쟁력 강화를 위한 투자 재원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주당 4500원 가결됐다면 이재용, 삼성물산 배당금 1524억
물론 부결에 따른 진통도 따랐다. 배당확대안이 부결되면서 삼성물산의 주가는 주총 전후로 크게 요동쳤다. 지난 1월18일 주당 11만5400원을 기록했던 주가는 행동주의 펀드들의 배당확대안 요구 소식이 전해진 이후 급등해 지난달 19일에는 17만1700원까지 올랐다. 하지만 15일 배당확대안 부결 이후 19일까지 3거래일 연속 하락해 15만원까지 내려갔다. 2개월 동안 48% 급등했다가 다시 12.6% 하락한 것이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지난달 15일 일부 주주들의 배당확대 제안에 단기적으로 주목을 받았던 것"이라며 "결과적으로 부결되면서 다시 주가가 안정세를 찾고 있다. 배당확대를 요구했던 주주들은 그 이후 추가적인 움직임을 보이진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삼성물산이 이번 주총에서 발표한 배당금은 보통주 2550원, 우선주 2600원. 이에따라 최대주주인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보유 지분인 보통주 3388만220주(18.10%)에 맞춰 863억9456만원을 지급받게 됐다. 만약 행동주의펀드들의 요구대로 보통주 1주당 4500원으로 배당금이 가결됐다면 1524억6090만원의 배당금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단순 계산할 경우, 660억6634만원을 더 받을 수 있었던 셈이다.
기업 총수들은 당장 얻을 수 있는 배당금 이익을 생각하기 보다 경영자 입장에서 기업의 경쟁력 약화나 재무상황을 감안할 수밖에 없다. 또 대규모 배당 발생시 적용되는 높은 세율도 부담이다. 배당소득은 원래 배당소득세(지방세 포함 15.4%) 세율을 적용받지만, 연 2000만원 이상 배당소득을 거둘 경우 종합소득세율이 적용된다. 또한 배당소득이 연 10억원 이상이면 최고세율인 45%를 적용받고, 지방세 4.5%가 추가돼 총 49.5%의 실효세율이 적용된다. 실수령액이 세금 때문에 반토막 나는 만큼 기업 총수, 대주주들도 과도한 배당확대를 꺼릴 수 밖에 없다.
"행동주의펀드 경영 개입시 고용위축 ·수익성 악화 우려"
비록 부결되긴 했지만 삼성물산 주총에서 행동주의펀드들의 배당요구안이 20% 이상의 지지를 받으며 주총 주요 안건으로 올라간 것은 주총시즌을 마주한 기업들에 적잖은 충격을 주고 있다. 그만큼 잘 올라가지 못하는 주가에 실망하고 있는 투자자들이 한국에는 많다는 뜻이고, 기업 밸류업 니즈가 높아짐에 따라 앞으로 이와 비슷한 상황이 더, 자주 펼쳐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행동주의펀드들의 과도한 경영개입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는 지난 20일 미국의 10대 행동주의 펀드가 지난 2018∼2019년 경영 개입에 성공한 67개 기업의 경영 성과를 분석한 결과 고용이 위축되고 수익성이 악화되는 결과가 나왔다고 밝혔다. 해당 기업들의 총 고용인원은 2018년 평균 5만6141명에서 2022년 4만5946명으로 줄었다. 수익성을 나타내는 당기순이익은 행동주의 펀드 개입이 시작된 2018년 16억1000만달러로 26.7% 늘었지만, 개입이 끝난 시점인 2020년에 9억6000만달러로 43.4% 감소했다. 영업이익도 2020년에 15억2000만달러로 1년 새 29.6% 줄었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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