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세 논쟁 등 큰 그림으로 봐야
개인·국가 경쟁력 결정적 문제 될 수도
최근 국내 증시에서 저PBR 주식이 급등했다. 정부가 일본 증시를 벤치마킹해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시행할 것이라고 발표하자 관련 종목들이 상승했다. 한국 증시에서 코리아 디스카운트란 말이 등장한 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하지만 요즘처럼 증시에서 화제의 중심이 된 적은 없었다. 상속세에 대한 논란도 뜨겁다. 세율부터 대상에 이르기까지 상속세를 두고 이렇게 활발한 논의가 전개된 적은 없었다. 아마도 집값 급등으로 서울 지역의 웬만한 집값이 10억 원을 넘어서면서 상속세가 더 이상 부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니게 된 점도 이런 논란의 중요한 이유일 듯싶다.
넓은 범주에서 보면, 이런 논의의 행간에 깔린 것은 사회적 차원의 ‘자본 배분(Capital Allocation)’ 문제이다. 기업으로 좁혀 얘기하면, 기업은 영업활동으로 창출된 현금을 기업 가치를 올리는 데 써야 한다. 너무 당연한 얘기이다. 이 돈으로 유기적 성장을 위한 투자를 할지, 아니면 M&A를 통해 성장할지를 결정하고 배분해야 한다. 주식 가치가 지나치게 낮을 때는 자사주 매입 및 소각에 자본 배분을 할 수도 있고, 주주들에게 배당을 할 수도 있다. 이 모든 과정이 지향하는 지점은 한 곳이다. 바로 기업 가치를 올리는 데 있다. 그리고 기업의 주인인 주주들은 주식 수에 따라 동일한 대접을 받아야 한다. 지배주주와 소액주주의 이해 상충이 발생하는 것은 주주 차별이다. 영업활동으로 현금을 창출해도 지배주주가 더 많이 가져가면 소액주주들이 그 주식을 보유할 이유가 없다. 남 좋은 일만 시키기 때문이다. 자본 배분과 지배 구조가 맞물려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조금 사정은 다르지만, 개인이나 국가도 자본 배분 문제에 자유로운 게 아니다. 고령화로 예를 들어 보자. 현재 가계 금융자산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세대가 60대이다. 과연 이 자금을 계속해서 60대들이 보유하게 할 것인가? 아니면 세대 간 이전을 통해 자본 배분을 바꿀 것인가? 부동산 문제도 자본 배분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 고령층은 늘어나고 도시와 비도시간의 격차는 갈수록 벌어지는 상황에서 전 국민의 자산 중 70%가 부동산이라는 점이 과연 미래에도 유효할 것인가? 지금이라도 자산 배분을 바꿔 나가야 하는 것은 아닐까? 더 나아가 자산을 한국에만 투자할 것인가 아니면 적극적인 글로벌 투자로 저성장과 고령화의 파고를 넘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고 국내 증시를 빼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자본시장이 활력이 잃으면 벤처와 창업 시장이 죽는다. 증시 상장을 통해 보상받을 가능성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주식시장은 단순히 주가가 오르고 내리는 곳이 아니다. 새로운 기업이 등장해 수혈을 계속하면서 경쟁력이 떨어지는 곳은 도태되는 곳이다. 그래야 기업과 자본시장의 생태계가 맞물려 돌아간다. 지금처럼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완연하면, 누가 국내 주식에 투자하려고 할 것인가. 클릭 하나면 전 세계 주식을 살 수 있는 시대에 말이다.
한국 사회는 저성장과 고령화 시대를 맞이해 자본을 재배치해야 한다. 이건 하면 좋고 안 해도 괜찮은 일이 아니다. 자본 재배치는 세금을 조금 더 걷느냐 덜 걷느냐의 문제를 넘어선다. 기업의 자본 배치의 최종 목적지가 기업 가치 상승이듯이 우리 삶과 더 나아가 국가의 경쟁력을 좌우할 결정적인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상속세, 기업 레벨업 프로그램, 금융투자세 등의 논쟁에서 한국 사회의 자본 재배치에 대한 큰 그림 없이 논의가 진행되는 게 아쉽다. 지지하든 반대하든 자신의 정치적 입장에서만 보지 말고 큰 틀에서 깊은 논의가 되었으면 한다. 잃어버린 30년을 거친 일본의 경험이 옆에 있으니 맨땅에서 시작하지 않아도 되는 점은 그나마 다행이다.
이상건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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