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發 상업용 부동산 위기감 확산
미·영·독·프 등 전 세계 곳곳에 투자
4000억 넘는 자기자본 투자금 '100%' 손실처리
평가손 80~90% 사례도 확인
북미를 중심으로 해외 상업용 부동산 가치가 내림세를 보이면서 위기감이 확산하고 있는 가운데 국내 주요 금융그룹이 자기자본을 투입한 일부 해외 부동산 투자 건을 전액 손실처리한 것으로 확인됐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 미국은 물론 캐나다, 영국, 독일, 프랑스, 아일랜드, 인도 등 세계 곳곳의 상업용 부동산 투자에 나섰으나 평가손실이 80~90%에 달하는 투자 건도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23일 아시아경제가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양경숙 의원(더불어민주당)실을 통해 입수한 해외 부동산 투자 관련 전수 조사 자료에 따르면 5대 금융그룹(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이 투자한 해외 부동산 중 14건이 전액 손실처리됐거나 투자금 대부분을 손실로 인식한 것으로 나타났다. 5대 금융그룹이 밝힌 투자원금만 4159억600만원에 달했다.
주요 금융그룹은 저금리 환경과 풍부한 시장 유동성에 기대를 걸고 공격적으로 자기자본(일반계정·PI)을 이용한 해외 부동산 투자에 뛰어들었다. 투자하는 동안 임대료 이익을 얻고 추후 매각차익까지 기대한 대체투자의 일환이었다.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의 여파로 미국, 캐나다, 영국, 독일 등지의 투자부동산 가치가 하락하고 전 세계 기준금리가 상승세를 지속하면서 투자수익은 고사하고 원금조차 지키기 어려워진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하나증권은 미국 텍사스 댈러스 소재 글로벌 통신사 AT&T 본사 건물에 300억원을 투입했으나 전액 손실처리했다. 하나증권은 2006년 8월 199억9999만원을 수익증권 형태로 투자하고 약 14년 후인 2020년 3월 96억1849만원을 추가 투자하며 반전을 노렸으나 현재 가치를 '0원'으로 평가했다. 전액 손실처리한 셈이다. 하나생명보험은 2018년 말 영국 시티오브런던 소재 부동산에 투입한 263억원 투자금 전액을 손실로 인식했다.
같은 해외 부동산에 투자했다가 전액 손실 처리된 사례도 있다. KB손해보험을 포함해 농협생명보험과 하나손해보험은 시차를 두고 미국 뉴욕 타임스스퀘어에 위치한 '20 타임스스퀘어' 건물에 각각 228억원, 571억원, 114억 원 등 913억원을 투자했다. 자산운용사 이지스자산운용의 사모펀드를 통해 중순위 대출 채권에 투자했으나 기대와 달리 호텔 준공이 지연되고 코로나19까지 덮치면서 투자원금을 사실상 전액 손실처리했다.
손실률이 80~90% 달하는 건도 상당수 확인됐다. 신한투자증권은 2020년 8월 미국 전역 30개 호텔 포트폴리오에 218억872만원을 투자했으나 현재 평가액이 16억7000만원으로 쪼그라들었다. 3년2개월 만에 손실률은 92.3%로 집계됐다. KB증권이 미국 뉴저지 DSM 빌딩에 투자한 179억6800만원도 현재 평가금액이 10억7500만원에 불과했다. 누적 배당금 97억1100만원을 감안해도 원금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우리은행은 이지스글로벌전문투자형사모투자신탁을 통해 독일 부동산에 168억599만원을 투자했으나 현재 가치는 27억1265만원으로 줄었다. 단순 평가 손실만 83%에 달했다. 누적배당금도 20억원에 미치지 못했다.
금융당국은 전액 손실처리된 해외 부동산 투자 건이 당장 대형 위기로 번질 가능성은 작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해외 부동산 시장을 둘러싼 악재가 장기화하고 이에 따라 익스포저(위험노출금액)가 확대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시각도 있다. 금융감독원이 파악한 기한이익상실(EOD) 발생 사업장은 28개로, 지난해 3분기 이후 3건의 사례가 추가됐다. 28개 사업장의 총 투자규모는 2조4600억원으로 집계됐다.
김병칠 금감원 부원장보는 "국내 금융회사가 해외 부동산에 투자한 규모는 총자산 대비 1% 미만으로 금융회사의 양호한 자본비율 등 손실흡수 능력 감안 시 투자 손실이 금융시스템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면서도 "앞으로 해외 부동산시장 악화 가능성에 대비해 적정 손실 인식과 충분한 손실흡수능력 확충을 유도하겠다"고 설명했다.
임철영 기자 cylim@asiae.co.kr
전영주 기자 ang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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