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역 지형 변화로 본 미·중 갈등
美 최대 수입국, 20년 만에 중국→멕시코로
멕시코, 베트남, 한국 등 반사이익
"中, 美 제재 우회로 찾아"…통계 착시 지적
중국이 20년 만에 처음으로 미국 수입국 1위 자리에서 밀려났다. 대신 멕시코가 중국의 자리를 꿰찼다. 미·중 신냉전과 글로벌 공급망 재편으로 인한 교역 흐름 변화가 현실화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국도 상당한 반사이익을 얻었다. 다만 일각에서는 중국이 멕시코, 베트남, 한국 등으로 생산기지를 이전하는 우회로를 택하면서 미 무역통계에 상당한 통계적 착시가 숨어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美 최대 수입국, 20년 만에 중국→멕시코로
7일(현지시간) 미 상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멕시코와의 무역에서 수입액은 1년 전과 비슷한 4756억달러로 집계됐다. 중국에서 수입한 금액은 4272억달러로 전년 대비 20%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멕시코는 20년 만에 처음으로 중국을 제치고 미국의 최대 수입국으로 올라섰다. 20년 동안 미 수입국 1위 자리를 지켜 온 중국은 2위로 내려왔다.
미국의 대중 무역적자는 크게 감소했다. 미국은 중국과의 무역에서 2794억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는데, 이는 전년 대비 26.9% 줄어든 수준이다. 미국 국내총생산(GDP) 대비 대중 무역적자 비율은 1%로 2002년 이후 최저 수준을 나타냈다. 지난해 미국의 전체 무역수지 적자는 7374억달러로 전년 대비 18.7% 줄었다. 수출이 350억달러(1.2%) 늘어나고, 수입이 1427억달러(3.6%) 줄어들면서 무역적자폭이 감소했다.
중국이 미국의 최대 수입국 지위에서 밀려난 것은 미·중 디커플링(탈동조화)과 미국 주도의 공급망 재편 여파로 풀이된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중국을 배제한 공급망 재편에 나섰고, 대신 동맹·우방과 손잡고 공급망을 구축하는 '프렌드 쇼어링' 전략을 펼치고 있다. 오는 11월 미 대선을 앞두고 공화당 유력 후보인 트럼프 전 대통령은 한술 더 떠 재집권에 성공하면 대중 관세율을 60% 이상으로 올리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이런 흐름 속에 미국의 대(對)중국 수입은 10년 전과 비슷한 수준에 머물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 수석 경제학자인 랄프 오사에 따르면 미·중 교역 위축으로 양국 간 무역은 미국과 다른 국가들의 무역과 비교해 30%가량 더디게 성장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글로벌 신용평가사 무디스 애널리틱스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마크 잔디는 "미국과 중국은 디커플링 중이고, 이는 무역 흐름에 큰 부담을 주고 있다"고 짚었다. 블룸버그 이코노믹스의 선임 글로벌 이코노미스트인 마에바 커즌은 "2023년 (무역) 지표를 통해 미국 수입 지형이 중국에서 다른 교역 대상국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 확인됐다"며 "2018년 이후에는 (대중) 관세 부과가 이러한 변화를 주도했으나 지금은 미국 무역 다각화가 다른 범주로도 확대될 수 있다는 초기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중 무역 디커플링에 멕시코, 베트남, 한국 등 수혜
미·중 디커플링이 지속되고 미국이 프렌드 쇼어링에 속도를 내면서 멕시코와 한국, 대만, 유럽 등은 반사이익을 얻고 있다. 미국은 지난해 중국과는 무역적자 규모가 줄었지만 멕시코와의 무역에서는 1524억달러의 적자를 내 적자폭이 역대 최대 수준을 기록했다. 우리나라에 대한 무역적자는 514억달러로 역시 사상 최대 수준이었다. 이 밖에도 독일, 이탈리아, 네덜란드, 대만, 인도에서 기록한 적자폭도 사상 최대였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미·중 교역 흐름 변화로 수혜를 얻는 국가로 한국을 집중 조명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로 한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율이 낮고, 바이든 행정부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통해 한국 전기차 배터리·부품 기업들이 미국 진출에 속도를 내는 등 공급망 재편 작업에 적극 참여할 기회를 잡고 있다고 평가했다. SK온은 앞서 조지아주에 26억달러를 투자해 전기차 배터리를 생산하고 있고, 미 완성차업체 포드와 합작법인을 설립해 테네시, 켄터키에도 공장을 짓는 중이다.
미·중 갈등으로 인한 우리나라의 반사이익은 통계로도 확인된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한국의 지난해 12월 대미 수출은 112억9200만달러, 대미 무역흑자는 50억300만달러로 모두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미국은 20년 만에 중국을 밀어내고 한국의 최대 수출시장으로 부상했다.
"中, 美 무역 제재 우회"…통계적 착시 지적도
일각에서는 미국 대외 교역에서 확인된 미·중 디커플링 움직임에는 일부 통계적 착시가 숨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중국 기업들이 생산 단가를 낮추고 고율 관세를 피하기 위해 멕시코, 베트남 등으로 생산기지를 이전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사실상 '메이드 인 차이나' 제품을 원산지만 바꿔 미국으로 수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멕시코, 베트남에 대한 무역적자가 2018년 본격화된 미·중 무역전쟁 직전과 비교해 크게 늘어나긴 했다. 미국은 멕시코와의 무역에서 2022년 12월~2023년 11월 151억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는데 이는 2017년 대비 두 배 증가한 규모다. 미국은 같은 기간 베트남에서 1040억달러의 무역적자를 냈는데 2017년보다 3배가량 늘어났다. 미 경제 전문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베트남과 멕시코에서 늘어난 수입의 상당 부분은 중국에서 공급된 것"이라며 "데이터 공백으로 얼마나 많은지는 말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중국이 가격 800달러 미만인 상품에 수입 관세를 면제하는 미 관세법을 악용하고 있다는 견해도 있다. 예일대 경제학자인 아밋 칸델왈이 미 정부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면세로 반입 가능한 800달러 미만의 상품 수는 지난해 10억개로 2017년 이후 세 배나 증가했다. 그는 중국이 우회로를 찾아 미국의 무역 제재를 회피하고 있다고 해석했다.
전문가들은 미국이 대중 무역 제재 수위를 높일수록 이를 무력화하려는 중국의 움직임도 보다 정교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교역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앞으로 점차 줄어들겠지만, 예상보다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미 외교관계협의회의 브래드 세서는 "중국은 더 높은 관세를 회피하거나 무력화하려는 노력을 두 배로 강화할 것"이라며 "제품을 분해하고, 나사를 빼고, 대체 공급자를 찾는다. 100% 중국산이 아니게끔 하기 위해 제3자에 배송하고, 이를 다시 수출용으로 제3자가 포장하도록 하기도 하는 데 이런 노력은 정말 대단하다"고 말했다.
WSJ는 "관세는 미·중 무역관계를 크게 악화시키진 않았다"며 "중국 기업들 역시 미 관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게임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뉴욕=권해영 특파원 rogueh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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