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ar_progress

글자크기 설정

닫기

"돈타령 하는 '흥부가'… 판소리, 옛 것 아닌 현재"

시계아이콘02분 29초 소요
숏뉴스
숏 뉴스 AI 요약 기술은 핵심만 전달합니다. 전체 내용의 이해를 위해 기사 본문을 확인해주세요.

불러오는 중...

닫기
뉴스듣기 글자크기

김정민 명창, 23번째 완창 '흥부가' 무대
"여류 명창에게는 꽤나 힘든 작품이지만
권선징악 잊은 현재에 꼭 필요한 이야기"

"잘난 사람도 못난 돈, 못난 사람도 잘난 돈. 맹상군(孟嘗君)의 수레바퀴처럼 둥글둥글 생긴 돈 생살(生殺) 지권(之權)을 가진 돈. 부귀공명에 붙은 돈. 이놈의 돈아 아나 돈아 어디 갔다 이제 오느냐! 얼씨구나 돈 봐라 여보아라 큰 자식아, 건넛마을 건너가서 너의 백부님을 모셔오너라"


판소리 다섯마당 중 '흥부가' 박 타는 대목, 흔히 돈타령이라 부르는 사설은 언제 들어도 신명이 난다. 생활이 어렵기는 나나 흥부나 매양 같은 것으로 느껴지는데, 내가 사는 로또가 맞을 확률은 814만분의 1인 데 반해 박 타는 홍부의 당첨 확률은 2분의 1이 아닌가. 박에서 돈이 쏟아져 나오는데, 그 와중에도 홍부는 자신을 괴롭히던 형 놀부를 생각하고 있으니 사실 감정이입은 고사하고 고구마 100개 먹은 듯한 답답함이 밀려온다. '흥부가'는 현전 판소리 중에서도 재담과 춤, 소리를 엮는 대목이 많아 민속성이 두드러진 데 반해 여류 명창들은 잘 부르지 않는 작품으로 통해왔다.

"돈타령 하는 '흥부가'… 판소리, 옛 것 아닌 현재" 김정민 명창. [사진제공 = 딜리셔스국악]
AD

2013년부터 2022년까지 22차례 판소리 완창 무대를 선보여온 국가무형문화재 판소리 '흥부가' 보유자인 김정민(55) 명창은 오는 20일 서울 종로구 돈화문국악당에서 23번째 완창 무대로 '흥부가'를 공연한다.


공연을 앞두고 지난 15일 서울 중구 소공동에서 진행한 간담회에서 김 명창은 "사실 흥부가가 어려운 작품이다. 여성 명창 입장에서는 주요 등장인물이 남성인데다 해학적 내용과 재담이 많이 나와 잘해도 태가 나기 어려운 소리다. 하지만 착하게 살면 결과가 좋고, 반대로 악한 짓을 하고 남의 것을 과하게 탐하면 벌을 받는다는 권선징악의 메시지는 도덕을 잊고 사는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어 이 작품을 선택했다"라고 작품 선택 배경을 밝혔다.


김정민은 고(故) 박송희 명창의 애제자로, 박 명창으로부터 '흥부가'와 '적벽가'를 사사했다. 대가들조차 10번 하기도 힘들다는 판소리 완창무대를 지난해까지 22번 올리며 연 1~2회 완창을 이어온 강철 체력의 소유자다. 앞서 지난해 이탈리아 3대 극장인 밀라노 테아트로 달 베르메(1436석)에서 적벽가 완창을 선보여 기립박수를 받았고, 지난해 5월에는 프랑스 파리에서 '판소리 4바탕 4대목' 공연 티켓을 30분 만에 매진시키며 K-판소리의 저력을 과시했다.

"돈타령 하는 '흥부가'… 판소리, 옛 것 아닌 현재" 김정민 명창 이탈리아 밀라노 공연. [사진제공 = 딜리셔스국악]

김 명창은 "판소리 완창 공연을 본 이탈리아 관객이 나를 두고 판소리야말로 '오페라 솔로(1인 오페라)'가 아니냐며 오페라는 우리가 원조인 줄 알았더니 한국이 원조였나보다 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벅찬 감정을 느꼈다"며 "한국에서는 판소리 완창 공연 티켓은 2만원, 이마저도 판매가 안 돼 초대권으로 객석을 채우는데, 외국에선 반나절도 안 돼 공연이 매진되고 기립박수를 받을 땐 만감이 교차한다"고 말했다.


그런 아쉬움에서였을까. 그는 외길만 고집하는 소리꾼의 삶을 제쳐두고 다양한 분야에 도전하며 새로운 시도를 이어오고 있다. 소리꾼이었던 외조부의 영향을 받아 가야금 전공에서 스스로 판소리를 선택해 입문한 김 명창은 10대 때 남원 명인 명창대회에서 대상을 받으며 두각을 나타냈다. 이후 중앙대 한국음악과를 졸업하고 국립창극단에 합격했지만, 정해진 작품만 하는 삶은 우물 안 개구리처럼 정체될 것 같아 합격 통보와 동시에 입단 포기서를 쓰고 나와 모교인 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에서 후배 양성에 전념했다. 당시 제자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신청서를 제출한 영화 '휘모리' 오디션에 28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주연으로 캐스팅되면서 대종상 신인여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많은 관객께 판소리, 우리 소리가 옛 소리가 아닌 지금도 살아있는 소리이고 또 후배들에게 소리만 해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는 그의 바람은 끊임없는 도전으로 이어졌다. 그는 MBC, KBS, EBS 등 국내 방송에서 강연 ‘우리 소리 우습게 보지 마라’로 국악 대중화에 앞장섰고, 이런 대중 강연의 인기를 통해 대기업과 공공기관, 국회 등 다양한 무대에서 판소리의 우수성을 설파해 왔다.

"돈타령 하는 '흥부가'… 판소리, 옛 것 아닌 현재" 2023프랑스 파리 주한국문화원 판소리 4바탕 공연 중인 김정민 명창. [사진제공 = 딜리셔스국악]

이번 흥보가 완창 무대에서도 새로운 시도가 눈에 띈다. "이번 공연에서는 사설이 많은 흥보가의 내용을 애니메이션 영상으로 구성해 해당 대목에 맞춰 영상이 책장처럼 넘어가는 효과를 시도한다"고 설명한 김 명창의 무대에는 돗자리와 병풍 대신 애니메이션이 자리를 지킬 예정이다. 그는 "대중들에게 판소리가 멀어진 이유는 옛날 것이라는 인식 때문인데, 고루하지 않다는 것을 무대에서 보여주고 싶다"며 "시대가 변하면 판소리도 변해야 한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고, 조상들께서 남겨놓은 원재료가 워낙 풍부하니 이렇게도 시도하고 저렇게도 시도하면서 동시대적 감성에 발맞추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최근 한 제자가 찾아와 보험 설계사로 전업을 고민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가슴이 아팠다는 김 명창은 K-컬처가 세계를 휩쓰는 지금, K-판소리로 세계 관객들은 물론이고 우리 소리에 대한 붐을 일으키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밀라노 공연 때 객석에서 깊은 감동을 받은 이탈리아 다큐멘터리 감독 레오나르도 치니에리 롬브로조의 제안으로 현재 다큐멘터리 '오페라 솔로'(가제)를 촬영하고 있다. 우리 소리가 외국에서 대접받고, 우리나라에서 외면받는 현실이 안타깝지만, 영화도 촬영하고 완창 무대도 계속하고 또 강연 콘서트도 선보이면서 계속 대중 앞에 판소리가 옛날 것이 아니라는 인식을 심어주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래야 판소리 붐이 일어 소리하는 사람이 설 무대가, 기회가 많아지지 않을까."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AD
AD

당신이 궁금할 이슈 콘텐츠

AD

맞춤콘텐츠

AD

실시간 핫이슈

AD

다양한 채널에서 아시아경제를 만나보세요!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