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배터리업체인 중국 CATL과 국내 배터리 3사의 연구개발(R&D) 비용 격차가 더 벌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절대 금액뿐만 아니라 매출 대비 비율에서도 뒤처졌다. 싼 배터리만 판다고 얕보던 CATL에 물량전에도 밀리고 질적 싸움에도 밀리고 있는 셈이다.
24일 CATL의 올해 3분기 분기보고서를 보면 CATL의 1~3분기 매출은 2947억위안(약 53조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40.1% 늘었다. CATL은 실적을 당해연도 누적으로 공시한다. 같은 기간 R&D 비용도 매출과 비슷하게 40.7% 늘렸다. CATL은 보고서에서 “R&D 프로젝트 증가와 함께 투자도 지속해서 늘리고 있다”며 “전년보다 연구개발팀을 확대했고 비용도 증가했다”고 밝혔다. 최근 글로벌 전기차 수요 둔화에도 R&D 투자를 늘린 것은 아직 기술이나 규격 표준이 확립되지 않은 배터리 시장에서 차세대 배터리 기술을 선점하려는 의지로 풀이된다.
국내 배터리 3사들도 같은 기간 매출이 적게는 20%대 많게는 100%대 늘었지만 매출 대비 R&D 비용 비율은 되려 줄었다. 연구조직과 R&D 비용이 매출 급증을 따라가지 못한 것이다.
LG에너지솔루션의 올 1~3분기 실적은 매출 25조7411억원, 영업이익 1조8250억원으로 전년 대비 각각 51%, 87% 늘었다. 하지만 같은 기간 매출 대비 R&D 비용 비율은 4.5%에서 2.8%로 내려갔다. 외형과 수익성 모두 성장했지만 그 성장세가 R&D 투자를 늘리는 요인은 되지 않았다.
SK온의 올 3분기 누적 매출은 10조1741억원으로 전년보다 114.5% 증가했다. SK온 역시 매출 대비 R&D 비용 비율은 3.6%에서 2.2%로 낮아졌다. 올 3분기 누적 5600억원의 영업손실을 낸 SK온이 재무적으로 여유가 없다는 점을 고려해도 미래 자산이 될 신기술 개발에 역량을 집중하지 못하는 것은 뼈아픈 대목이다.
삼성SDI는 올 1~3분기 매출 17조1435억원, 영업이익 1조3216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각각 21%, 0.3% 증가한 수치다. 이 기간 매출 대비 R&D 비용 비율은 5.5%에서 4.9%로 줄었다. 다만 매출 대비 R&D 비율은 배터리 3사 중 유일하게 CATL(5.05%)에 버금가는 수준이다.
국내에선 삼성SDI가 R&D 우등생이지만, 액수만 놓고 보면 턱도 없는 수준이다. CATL의 올 3분기 누적 R&D 비용은 149억위안(약 2조6700억원)이다. 국내 배터리 3사 R&D 비용을 다 합친 금액(1조7875억원)보다 1.5배 많다. 삼성SDI가 국내 배터리 3사 중 가장 많은 8364억원을 R&D에 썼고 LG에너지솔루션은 7304억원, SK온은 2207억원을 투입했다.
글로벌 배터리 업계에선 차세대 배터리 확보를 위한 기술 경쟁이 갈수록 격화되고 있다. 비교적 조용히 관망하던 일본 파나소닉도 최근 매출 11조원 규모 자동차 부품 자회사를 매각하고 배터리 사업에 집중하기로 하면서 ‘배터리 전쟁’에 참전을 선언했다. 한·중·일 3국 전쟁이 본격화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기업 미래를 보여주는 지표인 R&D 비용을 줄이면 지금이 아니라 2~3년 뒤 큰일이 터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배터리는 신기술을 찾아내기 어려운 분야다. 기술 발전 속도나 주기가 반도체보다 훨씬 길다. 아직 기술이나 규격 표준도 정해지지 않았다. 박철완 서정대 교수는 “배터리 분야는 생각보다 기술 변화가 크지 않지만, 벌어진 기술 격차를 극복하기 위한 비용은 엄청나게 많이 든다”며 “R&D 비용을 줄였다가 나중에 다시 늘린다고 해도 (기술의 차이를) 금방 따라갈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이어 “비용으로 잡히는 R&D 투자를 줄여 내실 없는 영업이익률을 올리는 것은 성장할 수 있는 동력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라고 했다.
최서윤 기자 sy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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