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여 년 전 탄소(카본)에 처음으로 색이 칠해졌다. 나무나 숲이 흡수한 탄소는 그린(녹색)카본, 바닷가 생태계가 흡수하면 블루(청색)카본, 화석연료를 태울 때 나오는 블랙(흑색)카본으로 나눴다. 탄소라도 다 같은 탄소가 아니라 블랙카본은 줄이고 그린, 블루카본은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서였다. 지금은 국제연합(UN)도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용어가 됐다.
이 색깔 입히기는 유행처럼 수소로도 옮겨졌다. 탄소를 배출하면서 만든 수소는 그레이(회색)수소이고, 이 때 탄소를 포집하면 블루수소다. 재생에너지로 만들면 그린수소, 원전으로 만들면 핑크(분홍)수소다. 석탄을 이용한 브라운(갈색)수소도 있다. 원래 색이 없는 수소에 색깔을 입히자 생산 방식과 탄소 배출 여부를 단번에 구별할 수 있게 됐다.
갑자기 색깔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최근 출범한 무탄소(Carbon Free·CF) 연합을 보면서 한번 색칠을 하면 그 인식을 바꾸기가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난 27일 민관이 모여 CF연합을 만들었다. 정부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포스코 등 민간 기업은 물론 한국전력공사, 한국수력원자력까지 국내 탄소 다배출 기업들이 동참했다.
CF연합은 태양광이나 풍력 등 재생에너지뿐만 아니라 원전, 수소 등 다양한 무탄소에너지를 활용해 탈(脫)탄소화를 추진하자는 CF100(Carbon Free 100)의 국제규범화를 추진한다. 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전력만 사용하자는 글로벌 캠페인 RE100(Renewable Energy 100)과 조금 다르다. RE100은 태양광, 수력, 풍력을 이용해 에너지를 만들자는 것이다. CF100은 만들 때 탄소를 내뿜지 않는 에너지를 쓰자는 것이다. 재생에너지 이외에 원자력도 무탄소 에너지원이다.
다만 CF100이 국제적인 규범이 되려면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정부는 11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와 12월 제28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8)를 계기로 각종 국제세미나와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에 참여해 CF연합에 세계 각국의 동참을 유도할 계획이다.
RE100과 CF100 모두 기업에겐 넘기 힘든 보이지 않는 무역장벽이다. 그러나 한국 기업 입장에선 CF100보다 RE100이 더 높다.
태양광 발전한 유리한 사막이 한국에 없다. 유량과 유속이 빠른 강도 없다. 바람도 잔잔하기 그지없어 풍력발전도 효율이 떨어진다. 반면 우리는 세계 최고 수준의 원자력 발전을 가지고 있다.
CF100도 이행하기 쉽지 않다. 현재 기술로 하루 24시간 1주일 내내(24/7) 무탄소 전원을 사용하는 CF100을 구현하기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냉정한 평가다.
원전을 과연 친환경 에너지로 봐야 하느냐는 논란도 남아있다. 당장 모두가 만족하는 대답을 내놓거나, 합의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두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다. 지금 질문의 초점은 현재 우리 기술력으로 가장 현실적인 탄소배출 저감 기술이 무엇일까에 맞춰야 할 때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고양이는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덩샤오핑의 흑묘백묘론은 1970년대 중국을 개혁 개방으로 이끌었다. 탄소배출만 줄일 수 있으면 가용한 모든 방안을 책상 위에 올려야 할 때다.
지난달 기상청은 대전에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알리고자 기후위기시계를 설치했다. 지구 평균온도가 1.5℃ 상승하면 기상 이변이 폭증한다. 불과 5년 263일(1일 기준) 후면 지구 온도가 1.5℃ 오른다.
오현길 산업IT부 차장 ohk041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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