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심 "명예훼손죄 성립 안 돼"→ 2심 "사실 적시 명예훼손"
재판부 "학문적 표현에 숨겨진 배경·배후 단정해선 안 돼"
저서 ‘제국의 위안부’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박유하 세종대 명예교수가 2심 재판을 다시 받게 됐다.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26일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박 교수에 대한 상고심에서 벌금 10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박 교수는 지난 2013년 자신의 책 ‘제국의 위안부’를 통해 ‘위안부는 일본군과 동지적 관계이자 매춘이었고 일본 제국에 의해 강제 연행된 것이 아니다’라고 적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됐다.
1심은 기소된 35개의 표현 중 5개 표현은 사실 적시에 해당하나 나머지 30개 표현은 의견 표명에 불과해 명예훼손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봤다. 1심 재판부는 "위안부라는 역사적 집단을 말한 것으로 피해자가 특정됐다고도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반면 2심은 1심에서 사실 적시로 인정한 5개 표현 등 외에 추가로 6개 표현을 사실 적시로 인정하고 각 표현은 허위사실 및 명예훼손적 사실의 적시에 해당, 피해자도 특정됐으며 명예훼손의 고의도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2심 재판부는 "독자들로 하여금 객관적 사실과 달리 받아들이도록 했다"며 벌금 1000만원을 선고했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2심이 유죄로 인정한 표현은 박 교수의 학문적 주장 내지 의견의 표명으로 평가해야 해 명예훼손죄로 처벌할 만한 사실 적시로 보기 어렵다고 봤다.
재판부는 "통상의 연구윤리를 위반했다거나, 피해자들의 자기결정권, 사생활 비밀의 자유를 침해하는 등 이들의 존엄을 경시했다고 볼 만한 사정이 확인되지 않는다"며 "일본군에 의한 강제연행을 부인하거나, 조선인 위안부가 자발적으로 매춘행위를 했다거나, 일본군에 적극적으로 협력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이 사건 각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조선인 위안부 문제에 관해 일본의 책임을 부인할 수는 없으나, 제국주의 사조나 전통적 가부장제 질서와 같은 사회 구조적 문제가 기여한 측면이 분명히 있으므로 전자의 문제에만 주목해 양국 간 갈등을 키우는 것은 위안부 문제의 해결에 도움이 되기 어렵다는 주제 의식을 부각하기 위해 각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며 "학문적 표현을 그 자체로 이해하지 않고, 표현에 숨겨진 배경이나 배후를 섣불리 단정하는 방법으로 암시에 의한 사실 적시를 인정하는 것은 허용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허경준 기자 kjun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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