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만 34세에 접어들면서 친구들과 대화의 중심에 올라온 주제가 임신·출산·육아다. 한국의 초산 평균 연령인 32.3세를 넘기고, 의학적으로 노산 기준에 해당하는 만 35세를 눈앞에 둔 여성 직장인의 입장에서 피할 수 없는 일생일대의 고민이기 때문이다. 시간이라는 제약 앞에 선 여성들은 첫 임신과 출산으로 감내해야 하는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올해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클라우디아 골딘 하버드대 교수는 ‘첫 아이(first birth)’의 출산이 남녀 임금 격차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주목했다. 200년 이상의 미국 노동시장 관련 데이터를 분석해보니 대학 졸업 후 같은 직업의 남녀 임금은 동일했으나, 첫 아이 탄생 1~2년 뒤부터 크게 벌어지기 시작했다. 여성 직장인은 월급이 떨어진 반면, 남성 직장인은 오히려 월급이 올랐다. ‘모성은 페널티(motherhood penalty)’, ‘부성은 프리미엄(fatherhood premium)’이 됐다는 것이다.
골딘 교수는 이러한 격차의 근간에 ‘탐욕스러운 일자리(greedy work)’가 있다고 규정했다. 불규칙한 일정 속에 밤샘도 마다 앉고 장시간 일하며 그 대가로 고소득, 승진까지 보장받는 일자리가 부성 프리미엄을 강화한다는 내용이다.
자신의 월급이 줄고 남편 또는 남자친구의 월급은 늘어날까 봐 첫 아이의 탄생을 우려하는 여성 직장인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출산의지가 있는 여성 직장인에게 임금격차보다 맞벌이를 하며 육아와 일을 병행할 수 있는지 여부가 훨씬 중요하기 때문이다. 예상치 못한 일이 수도 없이 터지는 육아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근무 여건 조정이 가능한지에 방점이 찍히는 것이다. 이러한 병행이 어렵다면, 새로운 일을 찾거나 경력이 단절될 수밖에 없다.
이처럼 30대의 여성 직장인은 첫 아이의 탄생과 더불어 인생의 대대적인 변화를 감당해야만 한다. ‘육아는 엄마 몫’이라는 사회적 인식과 경제 구조 속에서 어렵게 얻어낸 꿈과 직장을 내려놔야 한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성장할 때까지 최소 10여년간 인생을 뜻대로 살기 어려울 것이란 불안감도 받아들여야 한다.
이러한 불안감은 회사와 사회 속 경험을 통해 확신으로 변한다. 기업의 일·가정 양립 제도가 존재는 하지만, 실상 보여주기식으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국내 직장인 10명 중 4명이 출산휴가·육아휴직을 자유롭게 못 쓴다. 남성 육아휴직 비율은 28.9%로, 70%가 넘는 여성 육아휴직에 턱없이 못 미친다. 최근 정부가 최근 남성 육아휴직 이용을 장려하기 위해 ‘부모 공동육아휴직제’를 확대 개편했지만, 첫 출산을 두 달 앞둔 한 동갑내기 친구는 "나라가 강제해주지 않으면 어차피 쓰지도 못할 정책"이라며 답답해했다.
5남매를 둔 ‘다둥이 아빠’ 개그맨 정성호 씨는 최근 한 방송에서 "육아는 희생"이라며 "부모가 희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달라"고 말해 주목받았다. 부모가 육아를 위해 자신을 희생할 환경조차 갖춰져 있지 않은 상황에서 어떻게 육아를 할 수 있겠냐는 말이다. 사회 변화 속도에 한참 뒤처진 기업 문화를 먼저 바꿔야 저출산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서서히 보일 것이다.
정현진 기자 jhj4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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