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립보건원 연구팀,
말라리아 원충 잡는 박테리아 확인
말라리아는 매년 전 세계에서 50만명 이상이 사망하는 주요 전염병이다. 그것도 주로 5세 이하 어린이들에게 치명적이다. 그런데 과학자들이 미생물을 이용해 말라리아와 싸울 수 있는 새로운 무기를 개발해 관심을 끌고 있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은 지난 3일(현지 시각)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이같은 내용이 담긴 실험 결과를 논문으로 발표했다. 자연 상태에서 발견되는 박테리아를 모기에게 먹였더니 말라리아 원충(플라스모디움 기생충·Plasmodium parasites)'을 박멸하는 효과가 있었다는 내용이다.
박테리아를 이용해 모기가 전달하는 각종 전염병을 예방하려는 노력은 이전부터 있었다. 뎅기열을 예방하기 위해 '볼바키아 피피엔티스(Wolbachia pipientis)'라는 바이러스 대항 박테리아가 이미 일부 국가에서 사용되고 있다. 말라리아 원충을 막기 위해서도 이미 박테리아가 활용되고 있긴 하다. 문제는 유전자 조작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것이라 기술ㆍ비용이 들어가는 것은 물론 거부감도 상당해 대중화되기 힘들었다.
연구팀은 인간에 의한 유전자 조작 없이도 말라리아 원충을 억제할 수 있는 박테리아를 우연히 발견했다. 연구팀에 참여하고 있는 글로벌 제약사 글락소스미스클라인사의 연구원들이 모기를 이용해 말라리아 방제를 위한 연구를 진행하던 중 일부 모기들이 점점 더 말라리아 원충에 잘 감염되지 않게 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연구팀은 자세히 살펴본 끝에 이같은 상황이 모기들이 예상치 못한 특정 박테리아에 감염되면서 발생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후 이 박테리아의 정체가 '델프티아 츠루하텐시스 TC1(Delftia tsuruhatensis TC1)'라는 것을 밝혀냈다. 이 박테리아는 모기 등 일부 벌레들의 장내는 물론 물ㆍ토양, 병원 내 감염에서도 발견된다.
연구팀은 이 박테리아를 모기에게 먹였더니 말라리아 원충이 침샘으로 이동하기 전에 장내에 있을 때 성장을 방해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 박테리아가 장내에 있는 모기는 없는 모기보다 말라리아 원충 알 숫자가 75% 이상 적었다. 쥐를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에서도 효과가 확인됐다. 일반 모기에 물린 쥐들은 100% 말라리아에 걸린 반면 해당 박테리아가 장내에 있는 모기에 물린 쥐들은 3분의1만 말라리아에 걸렸다.
구체적인 작용 기전도 밝혀냈다. 이 박테리아는 일부 문화권에서 전통 치료약으로도 사용하는 식물 성분인 하르만(Harman)을 분비해 말라리아 유발 기생충을 공격했다. 연구팀은 이 물질을 모기에게 먹이거나 그 위를 걷도록 했더니 기생충 발달이 방해받는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는 하르만을 말라리아 방제용 약품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실제 자연 환경에서의 실험도 성공했다. 부르키나파소에서 실제 식물이 심어져 있는 곳에 폭 5~10m가량의 모기장을 친 후 솜에 설탕과 이 박테리아를 묻혀 모기들에게 먹였다. 하룻밤 사이 4분의3 가량의 모기들이 이 박테리아에 감염됐다. 연구팀은 이 모기들에게 말라리아 원충에 감염된 사람들의 피를 먹였고, 실험실에서처럼 이 박테리아들이 말라리아 원충의 성장을 차단하는 것을 확인했다.
연구팀 관계자는 "이번 연구 결과는 말라리아 방제의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 있다"면서 "모기 내부에 들어간 이 박테리아들은 지속적으로 말라리아 원충을 차단하며 번식에도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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