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B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 1.5→1.3%
경제협력개발기구, 국제통화기금 등 줄줄이↓
심각한 IT편중, 반도체 불경기에 나라가 휘청
중국 경기 나쁘면 한국도 덩달아 회복 못 해
"한국 경제, 체질개선과 구조조정 시급"
‘상저하고(상반기 저성장, 하반기 고성장)’를 판가름할 하반기가 시작됐지만 한국 경제의 성장률 전망은 여전히 어둡다. 세계 경제는 코로나19 충격을 딛고 회복세로 돌아서는데 유독 한국만 성장세가 둔화하는 추세다. 국제기관은 과도한 정보기술(IT) 중심 산업구조와 대중국 수출에 대한 지나친 의존을 원인으로 꼽고 있다. 인구감소로 근본적인 내수 활성화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강도 높은 체질 개선이 이뤄지지 않으면 저성장이 고착화할 거라는 우려가 나온다.
아시아개발은행(ADB)이 전일 발간한 ‘2023년 아시아 경제전망 보충’ 보고서에는 한국 경제의 고질적인 문제가 담겼다. ADB는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을 지난 4월 1.5%에서 0.2%포인트 내린 1.3%로 하향 조정했다. ADB는 “한국의 경제성장 전망은 기존 예측보다 더 느려질 것”이라면서 “IT에 대한 ‘관성(Inertia)’과 중국 경제회복의 ‘파급효과(Spillover)’가 최소화된 점이 수출축소를 야기했다”고 지적했다.
심각한 IT 편중, 반도체 불경기에 나라가 휘청
ADB가 언급한 IT는 반도체 산업을 의미한다. 한국은 지난해 수출의 19.3%, 2021년 제조업 부가가치의 18.5%가 반도체에서 나올 정도로 산업구조가 치우쳐있다. 특히 반도체 수출 중에서 경기 영향을 크게 받는 메모리반도체 수출 비중이 57.1%다. 미국(29.9%), 일본(24.5%), 대만(21%) 등 경쟁국보다 높다. 창업 역시 IT 위주다. 벤처기업협회에 의하면 초기창업 벤처기업 중 31.2%는 IT 업종을 택했다. 반도체 불황이 경기악화로 전이되기 쉬운 구조다.
올해 한국의 ‘상저’ 현상도 반도체 불황에 강한 영향을 받았다. 올 초 반도체 수출물량과 수출단가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처음 동시 하락했다. 금융위기 때만큼 반도체 경기가 나빴던 셈이다. 실제 지난 1월 반도체 수출은 전년동기대비 44.5%로 대폭 줄었다. 그러자 한국의 총수출이 16.6% 감소했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총수출 감소에 반도체가 끼친 영향만 52.4%다.
정부에서 ‘하고’를 자신했던 것도 반도체 순환 사이클과 관련돼 있다. 국내외 주요기관들은 컴퓨터·모바일 기기 수요가 2~3분기에 저점에 다다를 것으로 내다봤다. 컴퓨터가 4~5년, 모바일 기기가 2~3년마다 교체되는데 각각 2019년과 2020년에 저점이 있었다. 계산대로면 과거처럼 저점을 찍고 하반기부터 반도체 업황이 빠르게 개선된다.
중국 경기 나쁘면 한국도 덩달아 회복 못해
그런데도 한국의 성장률 전망치가 자꾸만 내려가는 건 중국의 영향이 크다. 중국은 한국 반도체 수출의 55%를 차지하고 있다. 미·중 분쟁의 영향으로 2018년부터 대중의존도를 낮추고 있지만 여전히 높다. 중국의 리오프닝 효과가 예상보다 작고, 중국 내 반도체 자급률이 꾸준히 올라가면 국내 반도체 경기회복도 더딜 수밖에 없다. 정부와 주요기관의 애초 예상보다 반도체 경기 상승 시점이 조금씩 뒤로 밀렸다는 의미다.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도 최근 기자간담회를 열고 회복 시점에 대해 “6개월 뒤 아니면 1년 뒤”라고 말한 바 있다.
반면 세계경제 전망은 애초 예상보다 희망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세계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종전 2.6%에서 지난달 2.7%로 0.1%포인트 올렸다. 주요 20개국(G20) 성장전망도 2.6%에서 2.8%로, 중국의 경우 5.3%에서 5.4%로 높였다. 국제통화기금(IMF) 역시 5월 아시아 지역 성장률을 0.3%포인트 올린 4.6%로 내다봤다.
이런 차이는 내수 요인에 기인한다. ADB는 “제조업 구매관리자 지수(PMI)는 한국과 싱가포르, 중국에서 50 밑으로 떨어지며 약세를 보이고 있다”면서 “하지만 인도와 필리핀, 태국은 내수 호조에 힘입어 높은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불경기로 전 세계 수출시장이 어렵지만 내수가 뒷받침하는 나라에서는 성장 전망이 좋다는 의미다.
한국은 내수불안 요인이 컸다. 고금리 정책이 물가상승을 잠재웠지만 반대급부로 내수회복을 제약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지난달 수정전망 보고서를 내고 “고금리·고물가의 충격이 반영돼 가계 실질구매력이 약화한 것도 내수 회복을 제한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OECD도 “한국의 높아진 부채상환 부담과 부진한 주택시장은 민간소비와 투자에 계속 부담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수요가 늘어나는 시점은 올해 하반기가 아닌 2024년으로 예상했다. ADB가 예상한 민간소비·투자 흐름 역시 2023년 약세, 2024년 개선이다.
"한국 경제, 체질개선과 구조조정 시급"
한국 경제의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는 제언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중국이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5% 정도인데 한국경제는 3분의 1 이상을 의존하고 있다”면서 “수출국과 반도체를 다변화하려는 체질개선이 이뤄지지 않으면 문제 해결이 어렵다”고 설명했다.
강도 높은 구조조정으로 경기 활력을 되살려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국책연구기관 관계자는 “저출산으로 인구가 감소하는 상황에서 근본적인 대책은 구조조정밖에 없다”면서 “코로나19 시기는 부실한 기업을 솎아내고 자연스러운 시장 퇴출로 한국의 경제를 재편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는데 우리 정부가 놓쳤다”고 비판했다.
OECD는 “(한국이) 구조적 문제가 있고 정책적 조치가 필요하다”면서 “급속한 고령화가 이뤄지고 있어 재정을 건전하게 만들어야 한다. 실업자의 교육을 활성화하고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면서 인력 재배치를 용이하게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세종=송승섭 기자 tmdtjq850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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