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류센터 투자 손실 가능성에 선(先)매입 약정 불이행 줄이어
기관 투자자들, 약정 가격에 인수하면 손실 불가피…PF 대주단 부실화 우려
코로나19 이후 기관 투자자들의 단골 투자처로 떠올랐던 물류센터가 최근 곳곳에서 부실 신호를 보이고 있다. 높은 수익성을 좇아 너도나도 토지를 매입해 물류센터 개발 사업에 나섰는데 공급 초과 상황에 맞닥뜨렸다. 입주사를 채우지 못한 채 미분양 상태로 준공되는 사업장이 속속 늘어나는 추세다. 금리가 오르고 공사비까지 수직 상승하면서 대출받아 토지를 확보해 놓고 삽을 뜨지 못하는 사업장도 늘고 있다. 시행 사업주와 투자자는 손실이 불가피해졌고, 물류센터 개발 사업에 자금을 빌려준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주단은 PF대출 부실 우려에 노심초사하고 있다.
물류센터 매입 약정 불이행 줄이어
물류센터 투자 매력도가 떨어지면서 선매입 약정을 했던 증권사와 자산운용사들이 약정 이행을 미루는 사례가 늘고 있다. 선매입 약정은 물류센터가 준공되면 사전에 정한 가격으로 인수하겠다는 계약이다. 시행 사업자 입장에서는 우량 투자자의 선매입 약정이 있으면 개발에 따른 손실 위험 부담을 덜고 PF 자금 조달도 쉽게 할 수 있다. 수년 전까지만 해도 기관 투자가들이 물류센터 물량을 확보해 수익을 남기기 위해 경쟁적으로 선매입 계약에 나섰다.
하지만 최근 상황이 바뀌면서 기관 투자가들이 선매입 약정을 기피하거나 약정 자체를 이행하지 않는 사례가 늘었다. 약정 불이행의 표면적 이유는 사전에 정한 선매입 이행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하자(펀치리스트)나 공사비 미지급 등을 구실로 내세운다. 한 금융회사 관계자는 "투자자들이 약정 불이행 이유로 내세우는 것은 대부분 구실에 불과하다"면서 "실제로는 약정 이행 때 손실이 불가피해 약정 이행을 꺼리고 있다"고 전했다.
대표적인 사례는 인천 중구 항동 저온물류센터(콜드체인) 사업이다. 이 물류센터는 개발 사업자인 엘에스디씨㈜가 항동 7가 일원 1만3865㎡(약 4224평)에 지상 1층~8층 규모의 콜드체인을 개발하는 사업이다. 시공은 해성기공·세영건설·오렌지이엔씨 등이 맡아 책임준공 약정을 제공했다. 준공을 완료하지 못하면 PF 차입금 상환 부담을 지겠다는 내용이다.
마스턴투자운용은 펀드를 설정해 해당 물류센터를 선매입하기로 약정했다. 펀드에는 IBK투자증권·현대차증권·하나증권이 출자 비율대로 약 900억원 규모의 수익증권 인수 확약을 제공했다. 메리츠증권은 펀드가 해당 물류센터를 매입할 때 1100억원가량의 담보대출을 해 주기로 계약했다.
이 물류센터는 연초 준공을 완료했다. 그런데도 마스턴운용과 3개 증권사는 PF 대출 때 제공한 약정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마스턴운용이 선매입 약정을 이행하지 않고 있는 것이지만, 실제로 펀드에 자금을 대기로 한 IBK투자증권·현대차증권·하나증권이 수익증권 인수확약을 지키지 못하겠다는 입장이다. 선매입 약정을 이행하지 않으니 메리츠투자증권도 담보대출 확약을 이행할 필요가 없는 입장이 됐다.
이 외에도 최근 대형 자산운용사가 인천 서구의 대형복합물류센터 매각에 나섰다가 매각 계획을 철회한 바 있다. 선매입 조건으로 개발해 준공 후 매입했지만, 물류센터 투자 매력도가 떨어지면서 자금 회수가 어려워진 것으로 풀이된다. 또 쿠팡이 상온 물류시설을 임차하고 있는 여주의 한 물류센터 또한 저온 시설에 대한 준공조건부 매입 계약을 했다가, 매수자가 매입 계약을 해제했다. 마스턴투자운용은 안성 일죽 저온 물류센터에 대한 매입 확약도 이행하지 않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PF대출 만기 연장 또 연장
기관 투자가들의 선매입 약정을 믿고 개발 자금을 빌려준 금융회사들은 대출 부실화 가능성에 긴장하고 있다.
마스턴운용이 선매입 약정을 제공한 인천 항동 콜드체인 사업에는 SC은행·BNK캐피탈·IBK캐피탈 등 7개 금융회사가 각 100억~300억원씩 총 1650억원의 개발자금 대출(PF대출)을 집행했다. 대출 만기는 지난 2월 1차 만기를 맞았다. 하지만 마스턴이 해당 물류센터를 매입하지 않으면서 대출 원리금 적기 상환이 이뤄지지 않았다.
대주단은 이자 후취(나중에 받는) 조건으로 PF 대출 만기를 3월까지 연장했다가, 다시 5월까지 상환일을 미뤘다. 하지만 5월까지 선매입 약정 해결이 지연되면서 대주단이 협의에 따라 기한이익상실(EOD)을 선언할 수 있는 상태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최대한 부실을 막기 위해 약정을 제공한 증권사·운용사와 대주단이 조금씩 손실을 부담하는 쪽으로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금융회사 PF 관계자는 "선매입 약정을 믿고 PF 대출을 집행했는데 투자 기관들이 손실을 회피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약정을 지키지 않아 적기 상환이 이뤄지지 않는 PF 대출이 늘고 있다"면서 "끝까지 약정 이행을 거부하는 경우 해당 물류센터에 대한 공매 처분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임정수 기자 agrement@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