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주요 핵심 소재
데이터 관리·전기차 등에 필수
세계 각국 값 싸고 강력한 영구자석 개발 박차
자석, 어린 시절 장난감으로 익숙하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 시대 꼭 필요한 ‘국가 핵심 미래 소재’이기도 하다. 전기차 구동기부터 데이터 저장·읽기 등 대부분의 첨단 분야에 반드시 필요하다. 전 세계 과학자들이 좀 더 강력하고 효율적이고 값싼 자석을 만들기 위해 연구를 거듭하고 있다. 현 기술상 미·중 기술 패권의 핵심 갈등 요소인 희토류가 주요 소재여서 안정적 공급망 확보 차원에서도 신기술 연구가 필수다.
자연 상태에서 이미 존재하고 있어 나침반 등으로 활용해 왔다. 영국의 의사 윌리엄 길버트(1544~1633)는 N극이 북쪽을 가리키는 이유가 지구가 자석이라는 가설을 세웠고 훗날 인정받았다. 다만 지구의 자기장은 몇십만년 주기로 북극과 남극이 바뀌고 위치별로 자기장도 다르다. 아직 지구가 왜 자성을 띠고 있는지 등에 대한 원인은 정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덴마크의 과학자 한스 크리스티앙 외르스테드(1777~1851)는 전류를 흘리면 자기장이 생긴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벤젠을 발견해 유명한 영국의 화학자·물리학자인 마이클 패러데이(1791~1867)는 자석을 움직이면 전기가 만들어진다는 것을 밝혀냈다.
자기장은 원자핵을 중심으로 전자가 자전·공전하는 힘이 원천이다. 전류와 근본적으로 같다. 전자가 에너지를 받아 본래의 위치에서 튀어나와 흐르는 것이 전류라면, 이 전자가 자전·공전하면서 발생하는 게 자기장이라는 얘기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모든 원자는 자석의 성질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자력이 강한 순서대로 강자성체·상자성체·반자성체 등으로 나뉜다. 자력이 강할수록 전자들의 회전이 같은 방향으로 잘 정렬돼 있으며, 약할수록 중구난방이다. 하지만 원자의 성질에 따라 구리나 플라스틱처럼 아예 자성이 없는 물질도 있다. 자성의 강도를 결정하는 것은 온도와 원자 간 거리다. 온도가 높을수록 자성이 약해지고 전자들의 움직임이 제각각이다. 절대온도(영하 273도)에 가까울수록 전자들의 움직임이 일정해지고 정렬되면서 자성을 띠게 된다. 원자 간의 거리도 영향을 끼친다. 원자 간 거리가 너무 가깝거나 멀지 않고 적당해야 전자 간 정렬이 손쉬워지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인공 영구자석을 만들기 위해 100여년간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1940년대 철산화물을 주 소재로 만들어진 페라이트(Ferrite), 1950년대 알루미늄·니켈·코발트 소재 알니코(Alnico), 1970년대 사마륨-코발트(Sm-Co) 자석 등이 개발됐다. 하지만 값비싼 희귀금속인 코발트 등을 소재로 해 대량 생산·공급을 통한 상업화에 제한이 있었다. 그러다 1981년 일본의 마사토 사가와가 강력하고 값싼 네오디뮴(Nd-Fe-B) 자석을 개발하면서 온갖 산업 제품에 자석 활용이 가능해졌다. 철에 희토류인 네오디뮴과 붕소를 섞었다. 철은 당초 원자 사이가 너무 가까워서 강한 자석을 만들 수 없는 물질로 알려져 있었다. 사가와는 가볍고 싸고 작은 붕소 원자를 철 원자 사이에 삽입하고 네오디뮴으로 전자 간 정렬을 유도할 수 있는 황금 비율을 찾아내 역대 가장 강한 자석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다만 이 자석은 고온(섭씨 200도)에서 성능이 떨어지는 게 단점이다. 또 다른 희토류인 디스프로슘(Dy)을 섞으면 이 점을 개선할 수 있다.
스핀트로닉스는 스핀을 가진 전자가 움직이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즉 자석에 전류를 흘리면 발생하는 다양한 변화를 연구해 컴퓨터 하드디스크나 반도체 등 첨단 기술에 응용하는 작업이다. 1980년대 초미세 물질을 연구하는 나노(Nano) 기술이 등장하면서 본격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했다. 원자를 다룰 수 있게 된 과학자들은 원자를 한 층씩 쌓아 인공 자석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처음에는 원자 간 거리가 벌어지면 강한 자석을 만들 수 있다는 원리를 이용해 자석과 자석 사이에 원자를 한 층 쌓아 봤다. 거기까지는 자석이 강해지면서 성공을 거두는 듯했다. 하지만 원자를 두 겹으로 깔았더니 갑자기 상·하의 자석이 서로 위치를 바꾸는 층간 교환 결합과 반복되는 현상이 발생했다. 페터 그륀베르크, 알베르 페르가 1988년 발견한 ‘거대자기저항효과’(Giant Magneto Resistive effect)다. 이를 응용한 자기 헤드는 현대 컴퓨터 하드디스크 기술의 핵심이다. 하드디스크 원판은 디지털 정보를 N극 1, S극 0으로 저장한다. 자기 헤드의 끝에는 작은 자석 2개가 상하로 설치돼 있다. 위의 자석은 N극으로 고정돼 있고 아래 자석은 밑에 있는 원판의 N극과 S극을 번갈아 접촉하면서 평행·반평행 현상을 반복한다. 이때마다 저항이 생겼다가 작아지는데 이를 통해 디지털 데이터를 읽어낼 수 있다. 김갑진 카이스트(KAIST) 물리학과 교수는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은 데이터인데 그걸 저장하고 읽을 수 있는 수단이 바로 자석"이라며 "고성능의 자석을 개발해 활용하는 게 반도체·전기차 등 첨단 미래 사업의 핵심 과제가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상업용 네오디뮴 자석에 사용되는 희토류 네오디뮴은 주로 모나자이트(monazite)와 희토류광(bastnasite)에서 복잡한 과정을 통해 추출된다. 환경 오염이 심하고 노동집약적이라 다른 희토류처럼 중국이 전 세계 공급량의 대부분을 생산한다. 미·중 기술 패권 경쟁이 격화되고 글로벌 공급망이 불안해지면서 중국산 네오디뮴을 대체·보완해야 할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도 2021년 국가연구개발 과제를 통해 영구자석 내 네오디뮴의 30%를 값싼 세륨(Ce)으로 대체할 수 있는 희토류 저감형 영구자석 소재 기술을 개발해 곧 상용화할 예정이다.
이와 관련, 지난 3월 한국재료연구원 연구팀은 그 구체적인 내용을 공개했다. 고가의 희토류인 네오디뮴(Nd)의 사용량을 약 30% 저감하고도 상용 자석(42M 등급) 수준의 성능을 구현할 수 있는 희토류 저감형 영구자석 소재 기술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기존 공정 대신 매우 빠른 냉각 속도로 공정이 가능한 멜트스핀법(Melt-spinning)과 열간변형법(Hot-deformation)을 희토류 저감형 전구체와 영구자석 제조에 각각 적용했다. 그 결과 자석 내 불필요한 자성입자의 형성을 억제해 자석의 미세구조를 최적화하는 데 성공했다. 이를 통해 영구자석의 주요 특성인 잔류자화와 보자력을 동시에 향상할 수 있었다. 고효율 모터용 희토류 영구자석 분야의 국내 시장 규모는 2021년 기준으로 연 1860억원에 달하지만 거의 전량을 해외로부터 수입하고 있다. 전기차, 드론, 플라잉카, 전기선박 등에 활용될 수 있는 기술이다.
김태훈 재료연 책임연구원은 "모터의 성능을 좌우하는 소재 중 가장 영향을 주는 것이 영구자석이며, 자석의 세기가 강할수록 성능이 좋아진다"면서 "우리나라는 2000년대 후반에야 중국의 희토류 공급 독점 문제 등을 인식하고 희토류 영구자석을 국산화하는 기술을 연구하기 시작해 다소 출발이 늦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연구실 수준에서 기술을 개발해도 양산 단계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면서 "효율적으로 기술을 개발해 산업의 전반적 수준을 끌어올리려면 연구기관에서 양산 기술까지 연구할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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