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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관의 세계인문여행]클로드 를루슈가 영화에서 말하려 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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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남과 여’와 ‘남과 여-여전히 찬란한’
'우리에게 진정 소중한 것은 사랑' 일깨워

누구에게나 죽어도 잊지 못하는 사랑 영화가 있다. 청춘의 가슴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낙인처럼 새겨진 영화, 아련한 첫사랑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영화.


나의 경우는 클로드 를루슈 감독의 ‘남과 여’가 전자에 해당하고, 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의 ‘시네마 천국’이 후자에 속한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두 영화는 영화음악(OST)이 유명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조성관의 세계인문여행]클로드 를루슈가 영화에서 말하려 했던 것 1966년 영화 '남과 여'에서 주인공 남녀가 도빌 해변을 걷는 모습. 사진=영화 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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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과 여’의 주요 배경은 프랑스 노르망디의 도빌(Deauville)이다. 파리도 가끔 등장하지만 우리는 파리의 장면들을 거의 기억하지 못한다. 눈을 감으면 도빌의 해변과 수평선이 스르르 펼쳐질 뿐이다. 도빌은 영국 해협에 있는 휴양 도시다.


끝없이 펼쳐진 백사장, 그 모래밭에서 갈매기들이 한가롭게 파도와 숨바꼭질을 한다. 그리고 백사장을 따라 길게 이어지는 목조 데크. 그 모래밭에서 기숙학교 친구인 소년과 소녀가 까르르 까르르 뛰어논다. 목조 데크 위에서 남과 여가 두 아이를 바라본다.


[조성관의 세계인문여행]클로드 를루슈가 영화에서 말하려 했던 것 도빌 해변과 영국 해협. '남과 여'에서 주인공과 두 아이들이 거니는 곳으로 나온다. 사진=조성관 작가

TV ‘주말의 명화’ 시간에 보았던 ‘남과 여’는 내 인생의 첫 프랑스 영화였다. 영화가 끝났을 때 나는 한동안 영화의 충격을 진정시켜야만 했다. 그러고 나서도 여러 날을 들썽한 마음으로 지냈다. 아마 영화를 본 모든 사람이 그랬으리라.


영화감독 비서로 나온 안느 역의 배우 아누크 에매(Aime). 그녀의 이지적인 아름다움은 곧 프랑스 여배우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오랜 세월 내게 프랑스 여배우는 곧 아누크 에매였다. 한참 뒤에 줄리엣 비노슈와 이자벨 아자니가 들어왔고, 그다음이 마리옹 꼬띠아르, 줄리 델피 …. 도빌은 ‘아름다운 사랑’과 이음동의어였으며, 내게 파리 다음의 프랑스 도시로 각인되었다.


[조성관의 세계인문여행]클로드 를루슈가 영화에서 말하려 했던 것 도빌의 부티크 '가브리엘 샤넬' 앞에서 포즈를 취한 샤넬. 사진=샤넬사 제공

‘파리가 사랑한 천재들’(예술인 편)에 들어가는 인물이 패션 디자이너 코코 샤넬(1883~1971)이다. 샤넬이 파리에서 패션 디자이너로 막 첫걸음을 떼려던 순간 1차세계대전의 암운(暗雲)이 덮친다. 샤넬이 피난을 간 곳이 노르망디의 도빌이었다. 이곳에서 샤넬은 자신의 이름을 딴 부티크를 연다. 도빌은 샤넬 연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공간이다. 샤넬이 부티크를 차린 곳은 해변으로 나아가는 길목의 콩도비롱 가.


[조성관의 세계인문여행]클로드 를루슈가 영화에서 말하려 했던 것 영화 '남과 여'의 한 장면. 사진=영화 스틸

영화 ‘남과 여’는 도빌의 기숙학교에 다니는 딸을 보러온 안느가 기차 시간을 놓쳐 파리로 돌아갈 방법이 없자 기숙학교 교장이 역시 아들을 만나러 온 카레이서 장 루이에게 부인(안느)을 파리까지 태워줄 수 있는지를 물어보면서 시작된다. 안느가 장 루이의 차를 타고 파리까지 가면서 남과 여에게 벼락처럼 사랑이 찾아온다. 컬러와 흑백 화면이 번갈아 나오는 가운데 프랜시스 레이의 음악이 흐른다. “단단단, 다다다다다~”


이 영화는 를루슈 감독이 1966년 누벨 바그 스타일로 불과 3주 만에 찍었다. ‘남과 여’는 세계 영화 팬들을 사랑으로 적셨다. 를루슈는 이 영화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비롯해 주요 세계 영화제의 그랑프리를 휩쓸었다. 불과 스물여덟 살에.


출장을 가는 데 그곳이 추억이 깃든 곳이라면 우리는 설렘으로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샤넬을 만나러 도빌을 가야 하는데, 우연히 그곳이 ‘남과 여’의 도시라니! 그래서 안느처럼 파리 생라자르 역에서 기차를 탔다. 생라자르 역은 에두아르 마네와 클로드 모네의 그림에도 등장하는 파리에서 가장 유서 깊은 기차역이다. 도빌까지 가는 동안 나는 첫 데이트를 앞둔 청춘처럼 가슴이 두근거렸다.


늙음과 죽음의 문제를 다루다


[조성관의 세계인문여행]클로드 를루슈가 영화에서 말하려 했던 것 클로드 를루슈 감독의 2019년 모습. 사진=위키피디아

여든세살의 를루슈 감독은 2020년 ‘남과 여-여전히 찬란한’를 세상에 내놓았다. 1966년의 주인공 장-루이 트랑티냥과 아누크 에매를 그대로 주연으로 등장시켰다. ‘그 후 50년’이라는 시간 설정과 함께 두 사람은 80대 노인으로 나온다. 젊은 날 카레이서로 이름을 날렸던 장 루이는 치매에 걸려 요양원에서 지낸다. 안느는 시골 마을에서 작은 상점을 운영하며 평온하게 살아간다. 어느 날 장 루이의 아들 앙드레가 수소문 끝에 안느를 찾아온다. 안느는 처음엔 중년 남자가 되어 나타난 앙드레를 알아보지 못한다.


“요양원에 계시는 아버지가 부인과 보냈던 시간만을 행복하게 기억하고 계세요. 한 번만 아버지를 만나주실 수 있을는지요.”


‘남과 여-여전히 찬란한’은 늙음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다. 젊은 날 요절하지 않는다면 누구나 피해 갈 수 없는 생의 마지막 여정에 관한 서사(敍事)다.


안느는 장 루이를 찾아간다. 안느는 금방 장 루이를 알아보지만, 치매 환자인 장 루이는 안느를 알아보지 못한다. 장 루이는 ‘처음 보는’ 안느에게 자신이 젊은 날 사랑했던 한 여인에 대해 회상한다. 지나고 나서 보니 그때가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었다고 이야기한다. 안느의 요양원 방문 이후 아버지의 컨디션이 좋아져 표정도 밝아지셨다고 아들이 전한다. 이후 안느는 자주 요양원을 찾아가 장 루이를 만난다. 장 루이는 ‘젊은 날 사랑한 여자’에 대해 이야기하며 행복해한다.


“그 여자가 당신과 웃는 게 너무 닮았다” “그 여자가 지금 당신이 한 것처럼 그렇게 머리를 빗어넘겼다” “당신, 그런데 왜 이렇게 나한테 잘해주느냐?”


안느는 비록 장 루이가 자신을 기억하진 못해도 자신과 함께 한 시간을 추억하며 행복에 젖는 모습을 보며 미소 짓는다.


영화는 도빌의 50년 전 모습을 흑백영화로 불러내기도 하고, 장 루이의 꿈속에서 등장시키기도 한다. 도빌은 전통적인 영국 상류층의 휴양 도시였다. 그래서 거리에는 빅토리아식 건축물이 즐비하고, 고샅마다 빅토리아풍(風)이 물씬 풍긴다.


도빌은 ‘남과 여’로 인해 영화 도시라는 별명을 얻었다. 실제로 도빌에서는 미국 영화제와 아시아영화제가 열린다. 영화팬들이 기억하는, 세계의 영화 스타들은 모두 한두 번씩 이곳을 다녀갔다. 샤넬의 부티크가 있던 콩도비롱가(街)에서 해변으로 나가는 광장의 이름은 ‘클로드 를루슈 광장’이다. 해변을 따라 길게 설치된 목조 데크 탈의실에 붙은 스타들의 이름에서 우리는 도빌이 영화와 불가분의 관계임을 실감한다.


나이 팔십을 넘기면 넷 중 하나는 치매가 찾아온다. 치매 환자 장 루이는 곧 우리의 미래 모습이다. 우리는 이 영화에서 치매 환자와 지내는 법을 배운다. 장 루이는 아들 이야기를 했다가도 “아들이 없다는 데 왜 자꾸 아들 이야기를 하냐”고 안느를 핀잔주기도 한다. 이야기를 주고받다 장루이가 바로 전에의 일을 기억하지 못하면서 대화는 끊긴다. 다시 같은 이야기의 반복. 안느는 그때마다 답답함을 느끼지만 그러려니 넘어간다.


섬광처럼 번득이는 대화도 나온다. “죽음이란 뭐라고 생각하나요?”(안느) “삶에 대한 댓가지”(장 루이)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급사가 아니라면 죽을 때는 누구나 외롭고 쓸쓸하다. 마지막 순간까지 글을 쓰다 간 괴테의 피날레는 모두가 바라는 꿈같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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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왔다가는 인생길에서 우리에게 정녕 소중한 것은 무엇인가. 를루슈 감독은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팔십 대 배우를 내세워 무엇을 말하려 했던 것일까. 그것은 사랑이다. 마지막 여행길에서 사랑의 추억을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 그래서 감독은 ‘여전히 찬란한’이라는 부제를 붙이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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