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성일 코리아트레일 대장
직장생활하다 번아웃…산티아고 순례길 완주 위해 사표
국내 도보여행 후 산티아고 순례…인생 터닝포인트
대부분 자비로 길 만들고 유지·보수…한계도 느껴
"2006년부터 갈아치운 신발만 100켤레가 넘습니다. 지금까지 걸어왔던 거리를 계산해 보니 6만㎞가 넘더군요."
손성일 코리아트레일 대장은 인생의 삼 분의 일 이상을 길에서 살아왔다. 걷기의 매력에 푹 빠져 멀쩡하게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무작정 걷기에 나섰다.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다가 우리나라에도 이런 길이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직접 트레킹 로드를 개척했다. 지금도 손수 만든 걷기 길의 보수에 나서고 있다. 지난 13일 그를 서울 중구의 남산골한옥마을에서 만났다.
손 대장은 장거리 도보 여행 코스인 '코리아트레일'을 개척한 도보 여행 전문가다. 경기도 파주에서 서울을 거쳐 충청도, 전라도 주요 도시를 경유해 땅끝마을이 있는 전남 해남군까지 이어지는 삼남길은 손 대장이 전국 곳곳을 직접 걸어보면서 만들어냈다. 이후 몇 차례의 이름 변경을 거쳐 지금은 코리아트레일로 불린다. 2008년부터 시작된 코스 개척이 2018년에야 마무리됐으니, 10년 이상 걸린 셈이다. 그는 코스를 만들기 위해 전국 곳곳을 걸어 다니며 걷기에 편한지, 주변 자연환경을 충분히 조망할 수 있는지, 안전한 걷기 여행이 가능한지를 세심하게 살폈다. 전국 29개 지자체를 거치는 코리아트레일은 52개의 세부 코스로 구성됐고, 총 길이는 685㎞에 달한다. 코스 개척을 위해 그가 걸어 다닌 거리만 약 1만㎞에 달한다. 코리아트레일과 삼남길, 아름다운도보여행의 한글,영문 상표는 손 대장이 상표권자다. 코리아트레일은 현재 사단법인으로 손 대장은 상임이사를 맡고 있다.
손 대장이 본격적인 도보여행을 시작한 건 2006년부터였다. 당시 그는 등산과 걷기를 좋아하는 평범한 영업직 직장인이었다. 반복되는 과중한 업무에 어느 순간 '번아웃(burnout)'이 왔고, 예전부터 이루고 싶었던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완주라는 꿈을 위해 과감히 사표를 던졌다. 본격적인 산티아고 순례에 나서기 전, 우리나라의 해변 길을 먼저 걸었다. 외국의 길을 걷기 전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길부터 걸어보고 싶다는 마음에서였다. 북한 땅과 맞닿은 임진강역에서 시작해 동해안 해변길을 따라 부산으로 향했다. 이어 해남 땅끝마을에서 호남대로를 따라 서울로 올라왔다. 그렇게 걸었던 거리만 2200㎞에 달했다. 이어 2007년엔 산티아고 순례길의 5개 코스 1800㎞를 3개월에 걸쳐 종주했다. 순례길에서 잡념을 벗어던지고 걷기와 주변 자연환경에만 집중하다 보니 번아웃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의 경험은 손 대장이 코리아트레일을 개척하는 계기가 됐다. 걷는 길마다 자연환경과 어우러지면서도 군데군데 설치된 이정표처럼 도보 여행자들을 위한 배려가 돋보였다. 걷는 순간만큼은 자연과 하나가 된 것 같았다. 곳곳마다 아름다운 자연이 펼쳐진 것을 보며 우리나라에도 이런 길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귀국 후 곧바로 우리나라 전역을 걸으면서 길들을 잇는 데 나섰다. 지금도 그가 세운 사단법인에서 코리아트레일의 관리와 유지보수를 담당하고 있다. 길마다 훼손된 이정표를 다시 세우고, 도시 정비로 도보 길이 사라졌다면 경로를 다시 짜고 있다. 손 대장은 "길을 만드는 건 1%에 불과하다"며 "길을 걷는 사람의 편의를 생각한다면 평생 관리해야 한다"고 유지보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의 인생은 '걷기'를 빼놓고는 말할 수 없다. 걷고 싶다는 소망 하나로 시작한 걷기는 어느새 17년 차를 맞았고, 이 기간 6만㎞를 걸었다. 지구를 한 바퀴하고도 반을 더 돌 수 있는 거리다. 걷기 운동을 하며 갈아치운 신발도 100켤레에 달한다. 오랜 거리를 걸으며 누더기 진 신발을 기념 삼아 보관해왔지만, 양이 많아지면서 일부를 처분했다. 결혼식도 길에서 했다. 함께 길을 만드는 동료였던 아내와 직접 개척한 길 위에서 평생을 함께하기로 약속했다.
손 대장이 일상에서 실천하는 걷기 운동법은 '이만저만'이다. 이만저만은 '이른 아침에 만보, 저녁에 만보'를 줄인 말이다. 이른 아침 출근 전에 만보를 걸으며 몸을 깨우고, 퇴근 후에도 만보를 걸으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하루에 2만보를 걷는 일이 쉽지 않아 매일 실천하진 못하지만, 걷고 난 뒤엔 몸이 상쾌하다고 그는 이야기한다. 하루에 2만보를 걷지 못하더라도 매일 꾸준하게 걷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손 대장은 최근 잠시 숨 고르기를 하고 있다. 코로나19 여파로 한동안 여행이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이다. 세계 각국이 빗장을 걸어 잠그면서 해외 걷기길 탐방도 제한됐고, 코리아트레일을 걷는 국내 여행객들도 크게 줄었다. 최근 일상으로의 회복이 시작되면서 탐방길을 찾는 사람들을 위한 채비에 나설 예정이다. 오는 10월엔 일반인들이 한달여 동안 코리아트레일에 참여할 수 있는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걷기와 친환경을 접목한 프로젝트를 기획 중이다. 길을 걸으면서 주변 환경을 돌아보자는 취지에서다.
이명환 기자 lifehw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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