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 동안 60대 시각장애인을 봤어요. 지팡이를 들고 걷는데 얼굴의 입 주위가 꽃이 피어 있는 거예요. 그런 미소는 본 적이 없을 정도예요."
50대 김모씨는 남산둘레길에서 만난 시각장애인을 잊지 못한다. 김씨는 "내가 그동안 자만했고, 불평이 많았구나하는 생각을 하게됐다. 한동안 그 자리를 떠날 수 없었고 바라만 봤다"고 말했다. 김씨는 젊은 20대 술을 많이 먹었다. 40대부터 걷기 시작한 후 변화가 시작됐다. 그에게 걷기여행은 몸 건강보다 정신 건강에서 효과가 크다.
60대 하모씨는 30대 직장생활을 할 때 번 아웃(burn out)을 겪었다. 번 아웃은 신체적·정신적으로 모든 에너지가 소모돼 무기력증이나 자기혐오, 직무거부 등에 빠지는 현상이다. 운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그는 관악산으로 갔다. 주변에서 맨발 산행을 권하자 함께 맨발로 올라갔다. 그는 "살고 싶어서 올라갔다"고 돌아봤다. 산을 오르면서 조금씩 정신이 맑아지는 게 느껴졌다. 맨발이지만 아픈 것도 못 느끼고 올라갔다. 정상에 올라갔을 때는 원래의 몸 컨디션을 다 찾은 느낌이었다. 내려올 때는 맨발이 아파 신발을 신고 내려왔다. 그는 이후 전국의 명산을 다니고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산도 찾았다. 암벽등반도 하고 코리아둘레길도 다녀왔다. 하씨는 "걷기여행은 인생을 살아내게 하는 힘이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관광레저연구 제34권 제11호’에 실린 ‘걷기여행길에서의 걷기경험에 대한 미학적 고찰’ 논문에 실린 걷기여행의 체험사례다. 박종윤 이부커스코리아 대표는 경기대 관광전문대학원 박사과정을 밝으며 최종우 경기대 관광학부 교수와 함께 서울 중구 걷기지도자 자격증을 소지한 5명을 상대로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들은 걸으면서 건강을 넘어 자신과 가족, 인생 등에 대해 긍정적 변화를 겪었다.
70대 정모씨의 경우는 60대가 된 2015년부터 걸었다. 동기가 재밌다. TV에서 의사 5명 정도가 동호회로 걷기여행을 하는 것을 봤는데 ‘걷기가 최고다’는 말을 들었다. 당시 허리가 아파 수술도 했던 그는 걷기 시작했다. "허리가 아프다고 계속 누워만 있으면 중환자가 된다"고 생각했다. 정 씨는 나무가 많은 숲길을 좋아한다. 특히 벚꽃이 필 때 신비롭다고 생각한다. 사진 찍기도 즐긴다. 정씨는 "배수지 공원 같은 경우는 눈이 내리면 쌓인 모습이 좋아서 사진도 찍는다. 마음이 기쁘고, 치유도 되고, 회복도 되고 그런 것 같다"고 했다. 남산둘레길, 서울성곽길을 좋아한다.
70대 유모씨는 40대 초반 때부터 걷기시작했다. 지금도 일주일 6일은 1만보씩 걷는다. 50대 때 직장암 2기가 와서 수술을 했다. 그는 "평소에 걷기운동을 했기 때문에 몸이 견딜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면서 "걷기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나를 지켜준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걷는다. "걸으면서 자식이 결혼할 때만, 손자를 볼 때까지만 잘 걷었으면 하는 생각을 했었다. 남산에 있는 꽃들을 보면서, 이 꽃이 내년에도 볼 수 있을까하고 생각도 한다."
40대 후반부터 걷기를 시작한 60대 강모씨는 걷기로 많은 것을 얻었다. 걷기여행을 하면 생각이 없어진다. 무의식 상태 같은 것이다. 잡념이 없이 자연을 보고 걷는다. 그는 "걷다보면 아픔 마음이 사라진다. 정신적인 아픔. 걷기의 효과같다"면서 "정신적인 아픔은 두통이 아니고, 신경질적이고, 짜증나고, 욱하고, 급해지고 그런 것이다. 걷기여행 후에는 화를 잘 안낸다"고 말했다. 강씨도 코로나19로 사업이 어려워졌다. 스트레스도 받고 인상도 나빠졌다. 집안도 편안하지 않았다. 걸으면서 다시 마음에 안정을 찾았고 집안에도 웃음이 많아졌다. 권위적인 모습에서 사랑하는 아빠의 모습으로 변했고, 닫혀 있던 아이들의 마음도 서서히 열렸다. 강씨는 "걷기로 가족을 다시 얻은 게 가장 큰 선물"이라고 말했다.
이춘희 기자 spri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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