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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보행천국 vs보행지옥…지자체마다 하늘과 땅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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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만보 하루천자]법정 지수된 기초자치단체별 ‘보행안전지수’

[단독]보행천국 vs보행지옥…지자체마다 하늘과 땅 차이 한국언론진흥재단 2022 우리지역뉴스크리에이터 양성사업으로 진행된 [보행자 권리 찾기 프로젝트: 횡단보도에서죽고싶지않아] 유튜브 영상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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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아시아경제 변선진 기자] “이사 온 지 1년 넘었는데 건너기가 너무 무섭네요.”


부산시 해운대구 반여동에 거주하는 A씨는 반여동 세월교 앞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반여4동 주민들은 학교·직장에 가기 위해 이 횡단보도를 통과해야 하지만, 운전자들이 보행자가 건널 틈을 주지 않거나, 횡단보도의 중간지점을 지나고 있는데도 경적을 울리는 일이 잦다. 신호기가 없는 교차로 특성상 운전자들이 각자 판단에 차량을 빠져나가야 하는 탓에 도로 중간에 얽히고설키는 일이 많다. 이 때문에 교차로 지점을 빨리 운전해 나가면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뉴스 크리에이터 성동욱씨는 이런 문제점을 지적한 콘텐츠를 지난해 8월 유튜브에 올렸다. 그는 “몇 년 전에 이사 와서 이 횡단보도를 건너게 됐는데, 5분이 넘는 시간 동안 어떤 운전자도 지날 수 있게 도와주지 않았다"며 "운전자를 개별적으로 신고해보고, 구청에 민원을 제기했지만 변한 게 없었다”고 말했다.

[단독]보행천국 vs보행지옥…지자체마다 하늘과 땅 차이 보행 중 교통사고 이미지
OECD 중 보행자 안전 최하위권 국가 ‘대한민국’

우리나라 보행자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10만명당 2.88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0만명당 1.1명)의 2배가 넘는다. 통계가 확인되는 OECD 28개국 중 칠레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보행 중 교통사고 사망자 수다. 정부는 보행 중 교통사고 사망자 수를 2026년까지 2021년의 44% 수준으로 줄이기 위해 작년 8월 ‘제1차 국가보행안전 및 편의증진 기본계획(2022~2026년)’을 세웠다. 교차로에는 우회전 신호등과 고원식 횡단보를 설치하고, 횡단보도에서 앞지르기를 금지하는 등 보행자의 안전을 확보하는 게 골자다.


행정안전부는 2021년 건축공간연구원에 ‘보행안전지수 개발산출 및 운영방안 연구’ 용역을 발주했다. 전국 226개 기초자치단체의 보행안전을 계량적으로 파악해 취약점을 체계적으로 보완하겠다는 취지에서다. 보행안전지수는 보행 중 사망 건수 등을 점수로 반영한 ‘사고안전도’와 보행안전 조례 유무, 보행 예산 비중 등을 측정한 ‘정책노력도’에 각각 ‘R(Red·개선 필요)’, ‘Y(Yellow·보통)’, ‘G(Green·양호)’ 세 등급으로 매겨 산출됐다. 보행안전지수는 30만명 이상·미만 자치구(A), 30만명 이상·미만 시(B), 5만명 이상·미만 구(C) 등 인구 규모와 행정구역 단위별로 세 등급으로 집단을 나눈 뒤 그 안에서 우열을 가리는 식으로 산정됐다. 시범조사에서 부산 해운대구의 경우 사고안전도에서는 R등급을 받았지만, 보행환경 조성을 위한 지속적인 사업이 반영돼 정책노력도에서는 G등급을 받았다.


일명 ‘보행천국 도시’는 총 11곳

그렇다면 사고안전도와 정책노력도에서 모두 G등급을 받은 일명 ‘보행천국 도시’는 어딜까. 서울 광진구·노원구·양천구, 경기 용인시·여주시, 대전 대덕구, 충남 계룡시, 강원 홍천군·영월군·양구군, 전남 무안군 등 총 11곳이었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코로나19 이후 스쿨존·노인보호구역 등 보행자 안전 확보가 중요한 곳에 불법 주정차 단속을 예전보다 50% 이상 늘려왔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지자체는 “장애인 거주 비율이 다른 기초지자체보다 높은 탓에 2019년부터 장애인 보도 블록 예산 비중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학교·역사 주변에 많이 설치한 영향이 크다”고 했다.

[단독]보행천국 vs보행지옥…지자체마다 하늘과 땅 차이

사고안전도에서 G등급을 받았다는 건, 어린이·노인, 일반인 등 누구든 길을 걷다가 교통사고가 날 가능성이 적고, 횡단보도·차도·보도의 인프라가 그만큼 잘 조성돼 있다는 뜻이다. 예컨대, 통행량이 많음에도 보도가 설치되지 않은 이면도로에 ‘보행자우선도로’로 지정·관리한 구역이 많다면 좋은 점수를 받는다. 정책노력도의 경우 지자체의 보행 예산 비중이 얼마나 차지하는지, 보행안전 관련 조례는 얼마나 되는지 따지는 지표다. 높은 등급을 받은 지자체일수록 횡단보도 신호등, 교통약자 보호구역 등이 많고, 불법주정차 단속에도 적극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단독]보행천국 vs보행지옥…지자체마다 하늘과 땅 차이 어린이 보호구역 주정차금지 안내판 /문호남 기자 munonam@
보행안전지수 최하등급 받은 14곳도

사고안전도와 정책노력도에서 모두 최하 등급인 R을 받은 곳도 있다. 부산 진구·강서구, 경기 의정부시·광주시·연천군, 경남 거창군·진주시·사천시, 강원 태백시·화천군, 경북 칠곡군·성주군, 전북 임실군, 충남 청양군 등 총 14곳이다. 다만 14곳이 보행자가 걷기에 반드시 위험하다는 의미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있다. 오성훈 건축공간연구원 보행환경연구센터장은 “보행안전지수를 볼 때 지자체가 보행환경 개선을 위해 노력했지만, 성과가 그만큼 나타나지 않았을 수도 있는 반면 보행환경 인프라와 운전자·보행자 의식이 잘 잡혀 처음부터 좋은 등급을 받을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했다.


일례로 부산의 기초자치단체들은 보행안전지수가 개선될 여지가 있다. 지난해 부산시가 시민이 체감하는 ‘15분 도시’ 보행 환경을 조성하기로 하면서다. ▲신호등(적색등·녹색등) 잔류시간 표시 보도 경계석 폭 2배로 확대 보행자 집중조명 설치 횡단보도 전 20m 구간에 미끄럼방지포장 ▲차선의 경우 갈지자로 색칠이 주요 계획이다. 오 센터장은 “보행안전지수가 지자체가 보행안전을 개선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계량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필요한 부분에 대해 정부가 선별적으로 지원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 보행안전지수 매년 조사·공표…서열화 가능성 최소화

정부는 ‘보행안전 및 편의증진에 관한 법률’에 따라 법정 지수가 된 보행안전지수를 올해부터 매년 조사·공표한다. 보행안전지수는 지자체 간 보행안전의 격차 정도를 직관적으로 알 수 있게 해줘 지자체 간 경쟁을 촉진시켜 보행안전을 높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서열화를 통한 위화감 조성의 시각도 존재한다. 보행안전지수가 점수나 순위가 아닌 등급으로 공표되는 이유다. 한수경 건축공간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정부는 매년 산출되는 보행안전지수를 통해 지자체의 보행안전 수준을 모니터링하고 지자체는 구체적인 보행안전 취약지점을 도출해 예산의 효율적 집행을 도모할 수 있다”고 말했다.




변선진 기자 s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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