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솟는 기준금리에 커지는 깡통전세 우려
받기 쉬운 전세대출에 갭투자 확 늘어난 영향
"집값 우상향 도박, 전세족 불행하게 해"
[아시아경제 송승섭 기자] 대구 동구에 거주하는 김준하씨(23)는 2019년 2월 3억7000만원을 주고 아파트 전세 계약을 했다. 그런데 두 달 만에 집주인이 바뀌었다. 새 집주인은 김씨의 전세금에 대출받은 1억원을 더해 4억7000만원에 집을 샀다. 시세차익을 노린 일명 '갭투자'였다. 당시엔 저금리에 집값도 고공행진 중이라 걱정이 없었지만 올해부턴 사정이 달라졌다. 금리가 오르면서 부동산 경기가 얼어붙고 집값은 하락했다. 계약 만료를 앞둔 김씨는 제때 전세금을 되돌려받을 수 있을지 초조해졌다. 집주인에게 슬며시 물어봤지만 "집값은 내려가고 그 사이 금리도 많이 올라서"라며 말끝을 흐렸다.
7%에 달하는 전세자금대출 금리에 허덕이는 세입자들은 최근 부동산 경기까지 침체되자 '깡통전세' 공포까지 겪으며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우려가 높은 '깡통전세'의 근원은 주로 집주인의 갭투자에서 비롯됐다. 2016년 이후 정부와 은행이 대거 풀어댄 전세자금대출이 갭투자를 불러일으켰다. 국내 은행 전세자금대출 잔액(10월 기준, KB경영연구소 집계)은 약 200조원에 육박한다.
전세대출은 서민 주거 안정이라는 명분으로 주택담보대출과는 다르게 박근혜, 문재인 정권 모두 한도 상향, 금리 완화 기조를 지속했다. 규제가 널널한 전세대출에 사람들이 몰렸고 은행들도 발 벗고 전세대출에 나서며 전셋값이 집값에 근접할 만큼 오른 것이 갭투자가 활발해진 이유다.
현재 전세대출은 대부분 보증 규모의 80~90%까지 실행된다. 지난해까지는 금리도 낮았다. 코로나19 시절 기준금리가 0.5%로 내려갔을 때는 주요 시중은행에서 1%대 금리의 전세대출이 나오기도 했다. 2012년 23조원 규모에 불과했던 전세대출은 2016년 이후 가파르게 늘어 지난해 184조원까지 증가했다. 지난달 기준으로는 193조9000억원에 달한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 부동산연구팀은 '전세자금대출 증가에 따른 시장 변화 점검 보고서'를 통해 "전세자금대출은 전세가격 상승에 영향을 줄 뿐 아니라 전세가격 상승에 영향을 미쳐 갭투자에 유리한 환경을 만들었다"고 분석했다. 김상훈 국민의힘 의원이 국토교통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서울시 주택 매수 건수 대비 갭투자(매매 시 임대보증금 승계) 비율은 2018년 14.6%에서 2021년 41.9%로 상승했다.
결국 정부와 은행이 대거 풀었던 전세자금대출이 갭투자를 일으켰고, 이것이 금리인상기에 보증금 리스크로 변질해 가뜩이나 금리 부담이 높아진 세입자를 두 번 울리고 있는 셈이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위원은 "갭투자도 기본적으로 우상향을 고르는 위험한 도박이고 세입자까지 불행해진다는 걸 알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송승섭 기자 tmdtjq850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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