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진흥원 '서울국제뮤직페어' 11년차 국내 유일 음악비즈니스마켓
해외 매니지먼트·에이전시 등 초청…국내 음악인 해외 진출 도와
잠비나이·이디오테잎·세이수미 등 수혜, 올해도 록·일렉트로닉·펑크 40팀 참가
단발성 이벤트에 그치지 않고 해외서도 쇼케이스 열어 새 길 모색
"해외에서 노래하는 줄 알았어요."
지난 20일 서울 용산구 노들섬 라이브하우스에서 공연한 가수 제이유나의 소감이다. 객석에 외국인이 그만큼 많았다. 하나같이 무대를 뚫어지게 응시했다. 팝스타 빌리 아일리시의 세계투어를 주도한 톰 윈디시 와서맨 뮤직 비즈니스 대표, 가수 씨엘의 음악을 세계 시장에 유통한 트리시아 아놀드 오차드 부사장 등 해외 음악 산업 관계자들이었다. 서로 가까이하면서 의견을 주고받았다.
화두는 단연 K-팝. 방탄소년단(BTS), 블랙핑크 등 아이돌이 아니었다. 국내에서 거의 주목받지 못하는 록, 일렉트로닉, 펑크 그룹 등에 대해 이야기했다. 음악 색깔, 대중성 등을 꼼꼼히 따지며 한국 밖에서 성공할 가능성을 타진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콘진원)이 서울 국제 뮤직페어(뮤콘)를 마련하며 의도한 K-팝 확장이 가시화되고 있었다.
뮤콘은 올해 11년 차를 맞은 국내 유일의 음악 비즈니스 마켓이다. 해외 매니지먼트, 페스티벌 감독, 부킹 에이전트, PR 에이전시 등을 초청해 국내 음악인의 해외 진출을 유도한다. 올해 참여한 해외 음악 산업 관계자 수는 대표자급만 약 300명. 무대 밖에서 쇼케이스를 빛낸 음악인들과 인사를 나누고 연락처를 교환했다.
최승연 콘진원 음악패션산업팀 과장은 "네트워크 확장력이 작은 중소 기획사, 레이블, 독립 음악인들에게 글로벌 진출 기회를 제공한다"며 "우리 음악인을 소개할 뿐만 아니라 해외 진출 프로젝트가 성사되면 항공료 등 비즈니스 비용도 지원한다"고 말했다.
지난해까지 뮤콘 쇼케이스에 참가한 음악인은 약 700팀. 대표적 성공사례로는 ‘잠비나이’, ‘이디오테잎’, ‘세이수미’ 등이 손꼽힌다. 잠비나이는 한국 전통음악을 뼈대로 헤비메탈, 포스트 록을 전하는 밴드다. 김형군 더 텔 테일 하트 대표는 "2013년부터 뮤콘 쇼케이스에 네 번 참여했다"며 "스티브 릴리와이트 등을 만나 북미 최대 음악 축제인 사우스바이사우스웨스트(SXSW), 호주 워마들레이드에 진출할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릴리와이트는 U2, 롤링스톤스, 심플 마인즈 등의 음반을 제작해 그래미 어워즈만 다섯 차례 수상한 세계적 프로듀서다.
김 대표는 "해외에서 또 다른 음악 산업 관계자를 만나 새로운 공연을 제안받는 연쇄반응을 경험했다"며 "연평균 50회 이상 해외 공연을 진행해 2016년 미국 국영 라디오 NPR에서 뮤직 ‘톱 100’에 선정되고 2018 평창 동계올림픽 폐막식 무대도 장식했다"고 복기했다.
이디오테잎은 2008년 결성된 일렉트로닉 밴드다. 최학송 두루두루 아티스트 실장은 "2013년 뮤콘 쇼케이스에 처음 참가해 이듬해 SXSW를 시작으로 미국(시카고·샌프란시스코·로스앤젤레스) 투어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그는 "유럽 투어 등을 주선하는 현 부킹 에이전트 제롬 윌리엄스와도 2014년 뮤콘 쇼케이스에서 처음 인연을 맺었다"며 "싱가포르 뮤직 매터스, 베트남 몬순 뮤직 페스티벌, 독일 리퍼반 페스티벌, 스페인 라 메르세 BAM 등 다양한 무대에 오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세이수미는 부산 출신의 4인조 인디 록 밴드다. 매니지먼트를 맡았던 김민규 일렉트릭뮤즈 대표는 "2018년과 2019년 뮤콘 쇼케이스를 계기로 일본 후지노 페스티벌 등에 참여할 기회를 얻었다"며 "세계 음악 팬들이 애청하는 미국 시애틀 라디오 방송국 KEXP의 ‘라이브’까지 출연해 인지도를 크게 높였다"고 말했다.
이들의 활발한 활동 덕에 해외 음악 산업 관계자들은 더는 K-팝을 댄스 음악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아놀드 부사장은 "K-팝은 한국의 대중음악 전체"라며 "다양한 장르의 음악인이 해외에서 공연, 인터뷰, TV·라디오 출연 등으로 새로운 수요층을 만들어냈다"고 말했다.
올해 쇼케이스에는 바통을 넘겨받을 음악인 마흔 팀이 참가했다. 제이유나를 비롯해 가호, 그리즐리, 다브다, 동양고주파, 라쿠나, 설, 소이에, 에스나, 우진영, 임금비, 이상의 날개 등이다. 가장 기대를 모으는 음악인은 가호. 대표곡 ‘시작’이 수록된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가 일본 넷플릭스 등에서 시청 시간 1위에 올랐다. 노래가 널리 알려진 만큼 해외 음악 산업 관계자들의 러브콜도 쇄도했다.
소속사 인넥스트트렌드의 박대원 홍보팀장은 "‘이태원 클라쓰’가 세계적 인기를 얻었을 무렵 코로나19가 확산해 해외는커녕 국내 공연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며 "뮤콘 쇼케이스를 통해 새로운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해 에스파와 함께 유튜브 ‘아티스트 온 더 라이즈’에 선정된 덕에 글로벌 성장 잠재력을 눈여겨보는 관계자들이 많았다"며 "오는 12월 일본 니혼TV를 시작으로 해외 활동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못잖은 관심을 받은 제이유나는 일본과 남미 공연을 구상한다. 그는 "유튜브 등 다양한 플랫폼으로 나라 간 장벽이 허물어져 지구 반대편에서도 내 노래를 아는 분들이 계셨다"며 "인터넷상에서 느낄 수 없는 관심과 열기를 하루빨리 현장에서 실감하고 싶다"고 말했다.
해외 공연이 장밋빛 미래를 약속하는 건 아니다.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거나 단발성 이벤트에 그칠 수도 있다. 구체적 계획과 단계별 프로세스를 수반해야 해외 음악 생태계에 안착해 비즈니스를 확장할 수 있다.
콘진원은 음악인들의 우려를 덜고자 ‘코리아 스포트라이트’라는 타이틀로 영국 더 그레이트 이스케이프(TGE), SWSX, 독일 리퍼반 페스티벌 등에 무대를 조성한다. 다음 달에는 처음으로 일본 도쿄에서 현지 음악 산업 관계자들을 초청해 쇼케이스도 개최한다.
최승연 과장은 "‘코리아 스포트라이트’와 뮤콘을 통합·연계해 글로벌 음악 업계에 국내 음악인을 소개하는 강력한 브랜드로 키우고자 한다"며 "다양한 해외 음악 행사는 물론 해외 유관 기관과 탄탄한 네트워크를 다져 다양한 글로벌 진출 프로그램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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