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개혁 의지 가졌던 정치인 '무대' 떠나
정부·여당, 개혁할 결심 여전히 주저
[아시아경제 나주석 기자]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정치권은 연금개혁을 언급하며 이 말을 종종 사용한다. 누군가는 꼭 해야 하지만, 선뜻 나서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대선을 거치면서 정치권은 다시금 연금을 개혁할 ‘결심’을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연금개혁을 노동개혁, 교육개혁과 함께 3대 개혁 과제로 제시했고, 국회는 연금개혁 특위를 구성하기도 했다.
연금개혁 논의가 나오는 것은 일단 현재 연금이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판단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국민연금은 현재 적립금이 882조7000억원(2022년 6월말 기준)으로 세계적으로 큰 규모를 자랑한다.
하지만 장기전망을 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2018년 국민연금 재정계산에서 기금고갈 시점은 2057년으로 전망됐다. 2020년 국회예산정책처가 실시한 재정전망에서는 기금고갈 시점이 2년 더 앞당겨져 2055년이 됐다. 하지만 코로나19 등을 겪으면서 출산율이 급감하면서 재정고갈 시점은 더욱 단축될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연금은 지난달 10일 재정추계에 들어갔다. 결과는 내년 3월에 나올 예정이다.
쌓아둔 독이 알고보니 밑 빠진 독이라는 드러난다는 전망이 나오면, 당연히 대책이 나와야지만 정치권은 이 문제에 대해 신중했다. 대선 승자인 윤석열 대통령과 패자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포로 기억되는 지난 대선에서 연금개혁 문제는 일찌감치 화두였다.
국민의힘 소속 대선후보로 나섰던 유승민 전 의원과 윤희숙 전 의원이 각각 연금개혁을 주장했기 때문이다. 다만 눈여겨볼 것은 이들이 연금개혁을 이야기하면서 비장한 각오를 밝혔다는 점이다.
가령 유 전 의원은 연금개혁 공약을 발표하면서 "남들은 다 퍼주겠다고 달콤한 말을 늘어놓을 때 대선에서 표를 받아야 할 후보가 굳이 이런 인기 없는 공약을 내야 하느냐는 반대의견도 있었다, (…) 최소한 우리 청년들이 돈만 내고 나중에 연금도 못 받는 일은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집값 폭등으로 내 집 마련의 꿈을 접고 코인, 주식 투자도 해봤지만, 이것마저 여의찮은 청년들이 지금 월급에서 꼬박꼬박 내고 있는 국민연금조차 나중에 못 받게 되는 것은 정말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었다.
윤 전 의원도 연금공약을 약속했다. 그는 당시 본지와 인터뷰에서 "지난 선거 때 문재인 전 대통령이 연금 개혁을 하겠다고 했죠. 전문가들이 안을 만들어 갔지만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고 되돌려보냈어요. 연금이 없어지게 생겼는데 국민들 보험료 올리는 거 싫어한다고 ‘빠꾸’시키면 개혁 안 한다는 이야기죠. 국민 눈높이를 설득하고 설득해서, 개혁할 수 있게 만드는 게 지도자의 일이잖아요. 4년간 재정은 더 엉망이 됐어요.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하기 전에 보험료를 올렸어야 했는데 연금 고갈 시점은 더 빨라졌죠. 고쳐야 할 점을 얘기하지 않는 지도자에게 속으면 더 큰 고통이 눈앞에 있어요. 국민들에게 반복해서라도 얘기하고 정직하게 얘기하는 지도자를 뽑아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이들이 연금개혁을 이야기하면서 비장했던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유 전 의원은 구체적인 연금개혁 방안을 묻는 말에 "정년을 연장하거나, 60대 초반에 있는 사람이 일을 더 한다거나, 국민연금 수급 개시 시점을 늦춘다거나, (국민연금) 보험료를 올리거나, 세금을 미리 투입하는 등의 방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말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의미냐면, 보험료를 올린다는 것은 즉 봉급생활자 입장에서 세금 등을 제한 실제 월급이 줄어든다는 의미다. 가뜩이나 탐탁지 않은 국민연금 보험료가 오를수록 연금은 건강해지지만 개개 월급쟁이의 소득은 줄어든다. 정년을 연장한다는 것은 더 오래 일하라는 것이며 더 오랜 기간 국민연금 보험료를 내라는 것이다. 국민연금 수급 시점을 늦춘다는 것은 60세부터 받을 수 있는 국민연금 수급 시점을 더 늦춘다는 것이다.
유 전 의원과 윤 전 의원의 의제화를 거쳐 안철수 당시 국민의당 대선후보(현 국민의힘 국회의원)이 대선 토론 등에서 다른 후보들에게 연금개혁에 동의할 것을 설득하면서 일단 합의는 이뤄졌다.
하지만 여전히 연금개혁은 개점 휴업 상태다.
더불어민주당 연금특위 간사를 맡은 김성주 민주당 의원은 "윤 대통령이나 안 의원 등이 연금개혁을 공언했던 것에 비하면 정부나 여당의 의지가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다"며 "국회 연금특위를 만들었지만, 특위 구성 후 한 번도 소집된 적이 없다. 말과 달리 의지가 약하다는 느낌이 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처음에 대선 공약을 냈을 때나 인수위원회 시절만 해도 의지를 보였는데, 대정부질문 등을 통해 물어보니 ‘정부 내 기구를 설치하지 않고 국회 특위로 갈음하겠다’, ‘정부 안이 나오면 그걸로 국회에 제출하겠다’고 하는 것으로 봐서는 정부의 의지가 약해진 것이 아니냐는 판단이 든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다만 그는 야당이라도 이 문제를 주도할 뜻이 있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여당이 소극적이라고 해서 야당이 여당 입장 후에 입장을 표명을 하겠다고 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본다"면서 "여당이 그렇다고 한다면 야당이 먼저 나서서 연금 개혁의 화두를 제기하고 사회적 토론을 이끄는 것이 옳다고 본다"고 했다.
나주석 기자 gonggam@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