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건 바꾸고 진보언어 금기
미래보다 과거 지우기만 혈안
[아시아경제 ] 새 정부 들어 이상한 정보가 자꾸 들어온다. 서울시의 한 지자체는 축제를 직전에 두고 코로나19 확산 우려를 이유로 갑자기 취소했다. 거기까지 준비한 민간 기관에 대한 보상 논의는 없었다. 경기도 한 지자체는 수년간 어렵게 준비해서 지정된 문화 도시를 준비하는 문화도시지원센터를 해체했다. 새 시장의 논리는 빈약했다. 대구시는 슬로건이었던 ‘컬러풀(Colorful)’을 ‘파워풀(Powerful)’로 바꿨다. 컬러풀은 대구시의 정체성과 지향을 담는 것이었지만 파워풀은 의미도 평범하고 지자체장의 개인 의지를 담은 단어로만 보인다. 이뿐만이 아니다.
충남의 한 지자체장은 축제기획서에 들어간 단어 ‘시민’ ‘참여’ ‘혁신’ 등을 쓰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진보 측 언어라서 불편하다는 것이다. 이 단어들이 민주주의의 언어이지 진보만의 언어인가. 과천시는 차 없는 거리 축제를 없애고 대신 특정 공간에 모여서 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상도 하다. 사람 중심, 삶의 질, 넷제로 등을 위해 차 없는 거리는 대세임에도 그 의미를 모른단 말인가.
서울시는 ‘사회혁신’ 단어가 금기어가 되고 있고 서울시의 슬로건 ‘I, SEOUL. U’를 교체하겠다고 한다. 전 세계에 자랑해도 좋은 사회혁신의 메카 서울혁신파크를 곧 상업시설로 전환한다는 소문도 들린다. 대신 한강에 대관람차 건설을 하겠다는데 이는 하드웨어 중심과 환경 파괴, 모방을 좇는 아둔한 역행이다.
서울혁신파크는 전국에 유사 공간을 다섯 개 이상 그리고 대만이 벤치마킹 공간을 세 개 만들 정도로 파급력이 큰 자산이다. 이상한 서울시다. 민간 위탁을 하던 서울시의 여러 대표 시설이 공무원 직영으로 전환되고 있는 것도 이상한 역행 신호다. 이들은 그야말로 근거도 없고 지향도 없는 오로지 우향우다.
이전 지자체장을 망신 주고 진보를 반대하겠다는 것 같은데, 착각하지 말자. 보수의 반대는 진보가 아니며 지자체는 몇 년 임기인 지자체장의 소유가 아니다. 그 긴 집단지성과 참여의 축적을 함부로 폄훼할 권한은 없다. 이렇게 반대를 위한 반대만 하면서 자산을 파괴하면 지자체엔 축적의 힘이 사라진다. 역사는 축적의 작품이다. 한국이 진보와 보수의 두 날갯짓 축적으로 선진국이 됐음을 부인하자는 것인가.
지금 정부나 지자체는 미래 건설보다는 과거의 유산 지우기에만 혈안이 돼 있는 것 같다. 기후 위기, 삶의 질, 나의 해방, 도시와 지방의 재설계 같은 미래 화두는 잘 들리지 않는다. 서울시장, 경기도지사, 인천시장이 모여서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를 논의한다는데 이 역시 걱정스럽다. 당장은 2500만 수도권 시민을 위한 빠른 연결 사업으로 보이겠지만 최근의 역사는 그것이 결국엔 도시 팽창, 공동체 파괴, 집값 상승, 지방 인구의 유입과 지방 몰락을 불러온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역 재생, 재택근무 확대, 공유 오피스와 워케이션의 활성화, 착한 인공지능(AI) 같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대안을 찾아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속도와 하드웨어 중심의 구태를 좇는다.
지자체의 이상한 우향우, 똑바로 읽어도 뒤로 읽어도 우향우는 그동안의 성과를 파괴하고 이기적 팬덤 확보와 자신의 색깔 드러내기만 추구하는 모지리 행정이다. 이제라도 ‘지역 활력 창조부’를 만들어 국민의 지성을 깨우고 축적하는 역사의 교훈을 얻기를 바란다.
황인선 마케터겸 작가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