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1.5배속 시대](https://cphoto.asiae.co.kr/listimglink/1/2020010615340581511_1578292446.jpg)
[아시아경제 명진규 기자] 넷플릭스 시리즈 중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본 작품 ‘오징어게임’은 총 9부작이다. 1부당 방영 시간은 조금씩 다른데 전체 시리즈의 상영 시간은 492분이다. 매화 5분 정도의 크레디트 영상을 제외하면 450분 정도로 7시간 조금 더 걸려 주말 하루를 꼬박 투자해야 완결편까지 볼 수 있다.
좀 더 시간을 단축하고 싶다면 영상 속도를 1.5배로 설정하면 된다. 조금 지루한 장면이 나온다 싶으면 10초 앞으로 가기 버튼을 누르다 보면 4시간이면 전편을 볼 수 있다. 넷플릭스에 가입하지 않았다거나 4시간도 길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유튜버들이 편집해 만들어 놓은 1시간짜리 영상을 보면 된다.
유튜브에는 4개 시즌 장장 100여편에 달하는 넷플릭스 시리즈도 시즌당 1시간짜리로 만들어 놓은 영상이 차고 넘친다. 굳이 수십시간을 투자하는 대신 줄거리만 보는 게 더 재밌다는 이들이 늘고 있다.
시간은 없고 봐야 할 것은 많다. 1배속으로 지나가는 현실은 느리고 답답하다. 결국 디지털 세상에서 1.5배, 2배속에 몸을 싣는 이유다. 나이가 어릴수록 ‘배속 시대’에 더 빨리 적응하고 더 많이 활용한다. 인터넷 강의를 2배속으로 보고 종이책을 사서 한 장씩 넘기며 보는 대신 전자책으로 구입해 읽어주기 기능을 2배속으로 놓고 책을 읽는다.
웹페이지를 볼 때 조금만 지루하거나 관심이 없는 내용이 나오면 다른 페이지로 옮겨가듯이 영화나 시리즈를 볼 때 지루하다면 10초 앞으로 가기 버튼을 누른다. 디지털에 익숙한 MZ세대(밀레니얼+Z세대)들이 많이 사용하는 방법이다 보니 세태를 걱정하는 이들이 많지만 10년 전에도 상황은 비슷했다.
10년 전 가장 인기 있던 인터넷 기사 중 하나는 어제 방영된 ‘1박 2일’에서 강호동이 한 재미있는 개그라든가 ‘무한도전’ 멤버들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TV 보고 쓰는 기사였다. 주말에 꼬박 1~2시간을 투자해 봐야 하는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 별 흥미가 없는 사람이라도 기사는 봐야 했다. 학교 또는 직장에서 친구들과의 대화에 끼기 위해 보는 사람도 있었고 유행에 뒤처지기 싫어하는 마음에서 보는 대신 읽는 이들이 많았다.
유튜브 시대가 펼쳐지며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을 정주행하는 사람은 크게 줄었다. 유튜브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3분만 보면 된다. 방송사마다 아예 프로그램의 하이라이트를 제공하는 곳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10년 전에도 지금도, 읽고, 보고, 들을 것들은 많고 시간은 없다. 1.5배속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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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가 1.5배속 기능을 지원한다고 할 때 수많은 영화인과 창작자들이 ‘창작자의 의도를 벗어난 정책’이라며 비난했지만 이를 이용하는 소비자들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과거 SK텔레콤 광고 중 배우 한석규씨가 대나무숲을 거닐며 휴대폰 벨소리가 들리자 "또 다른 세상을 만날 때는 잠시 꺼두셔도 좋습니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문득 떠오른다. 1.5배속 디지털 세계를 잠시 로그아웃하고 1배속 현실세계를 돌아볼 때다.
명진규 기자 ae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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