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라고 하라."
최근 정치권에서 화두가 됐던 '빵투아네트'란 말의 어원이 된 이 문장은 18세기 말 프랑스 루이 16세의 왕비였던 마리 앙투아네트가 했다는 말로 알려져 있다. 그녀의 이 한마디는 현재까지도 프랑스 대혁명과 뒤이은 나폴레옹 전쟁의 도화선이 된 폭정의 대명사처럼 불린다.
그러나 실제 마리 앙투아네트가 이런 말을 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무분별한 사치를 일삼은 것처럼 알려졌지만 오스트리아 출신인 그녀는 프랑스어도 제대로 못했고, 내성적인 성격 탓에 방 밖으로 혼자 잘 나가지도 않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녀가 밤새 술을 마시고 도박을 하고 마치 무도회의 여왕이었던 것처럼 그려지는 것은 왕의 실정을 늘 왕비가 덮어쓰던, 중세 왕조들의 관례가 적용됐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라는 말은 원래 장 자크 루소가 쓴 '참회록'에 나온 말로 알려져 있다. 루소가 1740년에 들은 일화에 따르면 프랑스의 한 왕비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는 내용이다. 1755년생인 마리 앙투아네트는 그때 태어나지도 않았다. 실제 이 말의 주인공은 그녀의 먼 친척이자 17세기 스페인의 공주였던 마리아 테레사란 인물이 한 말로 알려져 있으며, 폭정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굶주린 농부들에게 자신이 궁에서 먹는 케이크를 먹으라고 나눠주며 봉사활동을 했다는 이야기에서 나왔다.
역사 속에서 실제 프랑스를 대혁명의 전화로 몰고 간 인물은 수더분하고 착하면서 모자란 듯 묘사되는 루이 16세였다. 그는 전임 국왕들과 달리 술을 좋아하지 않고 도박을 하지 않으며 드러내놓고 사치를 일삼지도 않았지만, 프랑스의 심각한 재정난을 방관했고 이를 개혁하려는 관료들을 가차 없이 내쳤다.
1774년 재무총감인 안 로베르 자크 튀르고가 내민 개혁안부터 대혁명 1년 전인 1788년 마지막 재무총감이던 자크 네케르가 제시한 개혁안까지 14년간 프랑스 관료들이 제출한 개혁안은 대동소이했다. 특권층의 세금을 늘리고 재정지출을 줄이며 전쟁 등의 대외활동 지출을 줄여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루이 16세는 개혁안이 나올 때마다 그들에게 재정난 책임을 뒤집어씌워 파직시키곤 했다. 이들이 자신의 취미생활이자 막대한 예산이 소요되던 각종 공학 실험들까지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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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과 민생 문제는 등한시하면서도 루이 16세는 자신의 특이한 실험에는 돈을 쏟아부었다. 해부학 교수였던 조제프 기요틴 박사가 루이 16세의 지원으로 단두대를 발명했을 때 칼날을 대각선으로 바꿔야 목이 더 효율적으로 잘린다고 지적한 사람도 루이 16세였다. 혁명으로 가는 길은 사실 마리 앙투아네트의 케이크가 아니라, 루이 16세의 단두대가 열었던 셈이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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