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석유수입국 된 中...美 공백 빠르게 메워
이스라엘과 아랍국가 중재에 치중하는 美...오히려 주둔 병력 축소
[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미국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주둔 중인 미군을 대폭 감축하는 등 중동에서 발을 빼는 사이 중국이 그 공백을 빠르게 메우며 중동에서 세력 확장에 나선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반미국가인 이란뿐 아니라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같은 중동의 대표적 친미국가들은 이미 세계 최대 석유수입국가로 떠오른 중국과 급속도로 밀착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향후 중국이 중동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배제하고 새로운 중동 지역의 패권국가로 올라설 수 있다는 점을 이유로 국제 정세에 큰 파장을 몰고 올 수 있다고 경고한다.
13일(현지시간) 미국 외교전문매체 디플로맷에 따르면 중국의 일대일로(육상ㆍ해상 실크로드) 사업 투자를 도맡고 있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은 내년 10월 열리는 6차 연차회의를 UAE 두바이에서 개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AIIB가 연차회의를 중동에서 개최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두바이 엑스포와 동시에 개최된다.
중국은 이와 함께 아프가니스탄 반군을 이끄는 군벌인 탈레반에 도로망 건설을 제안하며 접근하고 있다. AFP 통신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중국은 파키스탄의 발루치스탄 지역에서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지도자들과 만나 아프가니스탄 주요 도시를 연결하는 고속도로 건설 투자를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포린폴리시를 비롯해 주요 외신들은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 석유수입국으로 떠오른 이후 중동 각국과 빠르게 밀착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에너지정보청(EIA)과 중국 해관총서 등의 집계에 따르면 중국의 지난해 하루 평균 석유수입량은 1018만배럴로, 미국의 679만배럴을 크게 상회했다. 오히려 미국은 셰일가스 개발붐 이후 2018년부터 일일 석유생산량이 1310만배럴로 늘어나, 사우디(1200만배럴)를 넘어섰다. 이는 미국이 중동 석유 최대 고객에서 최대 경쟁자로 탈바꿈했다는 것을 뜻한다.
미국은 점차 중동에서 발을 빼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최근 아프간 병력을 8600명에서 4000명으로, 이라크 병력은 5200명에서 2000명으로 줄이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대신 이스라엘을 내세워 이 지역의 방위를 대체하는 모습이다. UAE는 물론 바레인까지 이스라엘과의 국교정상화 공동성명에 끌어들인 것이다. 이는 미국 정부가 이스라엘과 아랍연맹 국가 간의 수교를 중재해 이란에 대항하는 동맹관계 확대를 꾀하는 의도로 풀이된다. 이스라엘 동맹을 넓히면 이 지역 주둔 미군 규모를 점차 축소할 수 있다는 게 미국의 계산이다.
국제관계 전문가들은 중동에서 점차 발을 빼는 미국보다 '힘의 공백'을 노리는 중국을 경계하고 있다. 중국이 미국의 빈자리를 꿰차 중동에서 패권을 장악할 경우 국제 정세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미국 외교안보전문지인 내셔널인터레스트에 따르면 마이클 도란 미국 허드슨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중국은 중동 지역에 주로 석유와 가스 등 경제자원의 이득만을 바라는 것처럼 알려져 있지만 최근 아덴만과 홍해, 수에즈운하와 연결되는 요충지인 지부티에 해군기지를 개설하는 등 군사적 패권장악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중국은 중동에서 미국을 축출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 중이며, 중동 패권을 중국이 장악할 경우 유럽 등 다른 지역에서 미국과의 충돌은 잦아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는 미국의 바람과는 반대로 국제 정세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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