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IT 기업 잇단 금융상품 출시
떨고 있는 은행권 '디지털 전환' 사활
[아시아경제 김민영 기자] 네이버, 카카오 등 ‘IT 공룡’들이 앞다퉈 금융권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은행들은 핀테크(금융+기술) 주도권이 테크핀(기술+금융)으로 넘어가지 않을까 우려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디지털 전환에 중점을 두며 대비책을 잇따라 내놓고 있지만 대형 플랫폼 업체들을 상대하기에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10일 금융권에 따르면 신한은행은 최근 금융권 최초로 인공지능(AI) 상담 서비스를 내놨다. AI 상담 서비스를 통해 고객이 대기시간 없이 바로 필요한 내용을 안내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디지털의 핵심인 ‘속도’에 초점을 맞췄다. 지난 4월엔 나흘 간 마라톤 화상회의를 개최하는 등 디지털 탈바꿈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KB국민은행도 비대면과 대면 마케팅을 일원화했다. MZ(1980년대~2000년대 초반 출생)세대 공략을 위한 마이핏통장ㆍ적금도 최근 출시했다. 입출금 통장인 이 상품은 하나의 통장을 관리 목적에 따라 기본비, 생활비, 비상금으로 분리해 관리할 수 있는 ‘머니쪼개기’가 핵심이다. ‘통장 안의 또다른 통장’이라는 신개념 서비스로 은행의 디지털 마인드를 입힌 상품이라는 평가다.
우리은행의 경우 그룹 차원에서 ‘디지털혁신위원회’를 발족하는 등 디지털 전환에 승부수를 띄웠다. 하나금융은 최근 디지털 인재 육성을 위한 ‘DT 유니버시티’ 출범시켰다. DT 유니버시티는 디지털 맞춤형 실무 교육을 진행하는 통합 교육 플랫폼이다. 하나금융은 디지털 인재를 디지털 비즈 전문가, 디지털 IT 전문가, 혁신기술 전문가 3가지로 정의하고, 모든 임직원을 1개 이상 분야에서 전문가로 키우겠다는 포부다.
이처럼 은행들이 디지털 전환에 사활을 걸고 있는 것은 생존을 위한 절박함에서 나온다. 네이버나 카카오 등 거대 플랫폼 사업자들이 속속 파격적인 금리와 혜택을 앞세워 금융시장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한 시중은행 임원은 “핀테크사 중 제2의 쿠팡, 마켓컬리가 나오지 않을 이유가 없다”며 “은행들이 대비하지 않으면 젊은 고객의 외면을 받는 것 뿐아니라 생존에도 큰 위협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어 그는 “플랫폼 업체와 손을 잡아야 되지만 자칫 종속적으로 갈 수 있게 되는 데다 금융상품에 대한 은행들의 브랜드 파워가 낮아질 수 있어 걱정”이라고 했다.
실제 IT공룡들은 금융시장 공습은 본격화되는 모습이다. 최근 네이버파이낸셜은 연 3% 이자(적립금)와 최대 3% 포인트(결제금액)를 받을 수 있는 ‘네이버통장’을 출시했다. 이 통장은 미래에셋대우와 손잡고 만든 종합자산관리계좌(CMA)인데 가입자가 월 10만원 이상 네이버페이로 결제하면 통장 잔액 100만원까지 3% 이자를 지급한다. 은행권은 “예금통장과는 다르다”고 애써 무시하지만 10~30대들은 “네이버가 통장을 출시했다”며 폭발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카카오페이는 한 발 더 나아가 시중은행과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모바일 통장을 선보였다. 하나은행과 함께 출시한 ‘하나 카카오페이 통장’인데 국민 메신저 카카오톡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비대면으로 신규 계좌를 만든 뒤 이 통장에 하나은행 계좌를 등록하는 방식이다. 은행 모바일ㆍ인터넷뱅킹ㆍ현금자동입출금기(ATM) 등 수수료 면제 혜택을 주면서 젊은층 공략에 나섰다.
거대 이동통신회사의 금융권 진출 행보도 커지고 있다. SK텔레콤은 오는 15일 KDB산업은행, 모바일 금융플랫폼 핀크와 손잡고 자유입출금 금융상품인 ‘T이득통장’을 출시할 예정이다. 이 통장에 넣어둔 200만원까지는 2% 금리를 제공하고, 초과 예치금에 대해선 0.5% 금리를 적용하는 등 쏠쏠한 혜택을 제공한다. KT는 인터넷전문은행 케이뱅크의 주요 주주로 참여 중이다.
이들 IT사들은 기존 은행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파격적인 금리와 혜택을 강점으로 내세워 고객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가뜩이나 저금리로 금리 혜택을 내세울 수 없는 은행들은 고객이 이탈할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더 큰 고민은 플랫폼을 가지고 있는 빅테크 기업과의 경쟁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특히 국내 플랫폼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네이버가 본격적으로 금융업에 뛰어들 경우 은행들은 본진에서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다고 우려한다.
한 은행 관계자는 “내부에선 적잖은 긴장을 하고 있다”면서 “특히 네이버가 본격적으로 금융업에 뛰어들면 콘텐츠와 플랫폼 경쟁력에서 밀릴 수밖에 없어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고 전했다. 앞서 카카오페이증권이 선보인 예탁금 계좌는 출시 한 달도 안돼 가입 좌수 50만개를 돌파하는 등 성공 가도를 달렸다.
김민영 기자 my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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