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단지 내 놀이터 이용시간 제한 논란
일부 주민 "아이들 소리 시끄러워 쉴 수 없다" 불만
전문가 "아동에 대한 차별" 지적
[아시아경제 김가연 기자] "놀이터는 애들을 위한 공간 아닌가요?"
최근 아파트 단지 내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뛰어노는 소리를 둘러싼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한 아파트 일부 주민들은 사실상 소음이나 다름 없다며 퇴근 시간 이후나 주말 오전 휴식을 위해 놀이터 이용을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몇몇 아파트에서는 이미 이용시간 제한 규칙을 자율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또 다른 주민들은 아이들만을 위해 마련된 공간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고 반박했다.
놀이터에서 뛰어노는 두 아들을 지켜보던 직장인 A(38) 씨는 "이용 시간을 제한하자는 건 말도 안 된다"면서 고개를 저었다.
A 씨는 "맞벌이다 보니 아이들과 함께 있거나 놀아줄 수 있는 시간이 별로 없다. 그래서 집에 일찍 오는 날은 아이들과 함께 놀이터에 나가서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하는 편"이라면서 "사실 퇴근을 일찍 해도 저녁을 먹고 이것저것 하다 보면 7시, 8시는 훌쩍 넘어간다. 이 시간에 이용을 제한해버리면 우리 가족 같은 경우는 아예 놀이터를 이용할 수 없는 것 아니냐"라고 토로했다.
앞서 지난달 한 누리꾼이 자신의 SNS를 통해 몇 장의 사진을 공개하면서 "입주자 전용 온라인 카페에서 아파트 놀이터 사용제한 투표를 하고 있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해당 글은 4500회 리트윗되는 등 SNS 및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빠르게 확산했다.
이에 대해 누리꾼들은 "노키즈존도 모자라 키즈존도 눈치를 봐야 하나", "약자혐오가 심각하다", "밤 12시에 술먹고 고성방가하는 아저씨들에 대해서는 대책이 하나도 없는데, 쉽게 통제 가능하다고 아이들에게만 규제를 가하다니 정말 심각하다"는 등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아이들이 뛰어 노는 소리를 둘러싼 어른들의 언쟁이 이어지는 가운데, 아이들은 '놀 권리'를 보장 받고 있다. UN은 아동에게 놀 권리가 있다고 규정했다. UN아동권리협약 31조에 따르면, 모든 아동은 충분히 휴식을 취하고 놀 권리가 있으며, 우리나라는 지난 1991년 이 협약에 비준했다.
또 놀이 활동을 보장받은 아동일수록 삶의 질이 높아진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빈곤아동을 돕는 국제 기구 세이브더칠드런은 지난달 열린 '놀 권리 성장 포럼'에 참석해 '놀이터를 지켜라' 캠페인 사업에 대한 아동들의 만족도를 발표했다.
'놀이터를 지켜라'는 아이들의 놀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세이브더칠드런이 펼친 캠페인으로 '놀이터 개선 사업', '놀 권리 정책 개선 활동' 등 사업이 포함된다.
해당 사업에 참여한 아동 91.4%가 '놀이를 통해 행복해졌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밖에도 90.2%가 '친구 관계가 향상됐다'고 답했으며 81.2%는 '스트레스가 해소됐다', 76.4%는 '자신감이 향상됐다'고 답했다.
그러나 일부 주민들은 아이들의 이런 권리를 인정한다면서도, 불만이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아이들이 뛰어노는 소리가 시끄러워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기가 어렵다는 주장이다.
서울 관악구에 거주하는 직장인 B(26) 씨는 "퇴근하고 저녁에 쉬려고 누우면 밖에서 아이들이 소리 지르는 게 다 들린다"며 "심지어는 놀이기구가 부딪치면서 나는 쇳소리도 너무 크게 들려 스트레스받는다"고 토로했다.
이어 "애들이 뛰어노는 게 당연하다는 건 알고 있지만 하도 스트레스를 받으니 이제 그런 생각도 안 드는 지경"이라면서 "차라리 평일 저녁에 놀이터를 이용하지 못하게 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은평구 소재 아파트에 거주한다는 직장인 C(59) 씨 또한 비슷한 의견을 내놨다. C 씨는 "애들이야 뛰어놀아야 한다지만 놀이터 앞 동에 사는 주민들도 있을 것 아니냐"며 "아동의 권리를 위해 그 동에 거주하는 모든 주민들에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권리를 빼앗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강제적인 방법으로 이용 제한을 두는 것이 아니라 투표나 주민회의 등 합의를 거친다면 괜찮을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전문가는 자기중심적인 성향이 강해져 공동체 의식과 타인에 대한 배려심이 결여되는 것이 일종의 사회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자신의 입장만 생각하다 보니 아이들의 관점에서 전혀 생각하지 못하는 거다. 사실 그렇게 이용을 제한하는 것 자체가 아이들에 대한 또 하나의 차별"이라면서 "한쪽에서는 차별에 대해 굉장히 반발하고 있는 동시에 아이들에 대한 차별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곽 교수는 "아이들이 시끄럽다는 것이 어느 정도 사실일지라도 관련한 사례가 하나 생기면 그에 따라 동조하는 현상이 커지게 된다"라며 "저출산이 큰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현재에, 부모들은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고려할 수도 있고 출산 기피 현상도 심각해질 수 있다. 결국엔 아이들에 대한 어른들의 차별이 사회의 양극화를 낳는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김가연 기자 katekim22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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