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관주 기자]#1. 2005년 5월13일. 강원 강릉 구정면 덕현리에 혼자 사는 A(당시 70세·여)씨가 손발이 묶여 숨진 채 발견됐다. B씨의 입에는 포장용 테이프가 붙여져 있었고, 손과 발은 전화선 등으로 묶인 상태였다. 경찰은 수사에 착수했으나 별다른 증거를 발견하지 못해 사건은 미궁에 빠졌다. 유일한 단서는 B씨 얼굴에 붙여진 포장용 테이프에 흐릿하게 남아 분석조차 어려운 ‘쪽지문(부분지문)’ 뿐이었다. 하지만 포기는 없었다. 그리고 올해 9월 A씨를 살해한 혐의(살인)로 B(49)씨를 검거하는 데 성공했다. 기술의 발달로 쪽지문에 대한 분석이 가능해졌고, 경찰은 B씨의 지문과 일치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12년 만에 강릉 노파 살인사건의 실체가 확인된 것이다.
#2. 2002년 12월14일, 서울 구로구의 한 호프집에서 50대 업주가 살해당했다. 경찰은 현장 증거 수집에 주력했으나 용의자가 수건으로 현장을 모두 닦아버려 지문조차 확보하기 어려웠다. 업소 한편에서 깨진 채 발견된 맥주병에만 유일한 단서가 남아 있었다. 신원 불상 인물의 엄지손가락 쪽지문이었다. 이 사건의 실체는 15년이 지나서야 유력 용의자가 검거되며 드러났다. 경찰은 비슷한 지문 1500여개와 비교한 뒤 장모(52)씨의 지문임을 확인하고, 지난 6월 장씨를 붙잡아 구속했다.
“모든 접촉은 흔적을 남긴다”
과학기술의 발달이 영원히 미궁 속에 묻힐 뻔한 ‘미제사건’들을 해결하는 데 톡톡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특히 1㎝가량에 불과한 쪽지문 인식이 가능해짐에 따라 유력 용의자를 검거하는 결정적 증거로 활용되고 있다.
1일 경찰청에 따르면 경찰은 올 3월부터 8월까지 6개월간 미제 강력사건 994건의 현장 지문을 재검색해 482건에서 신원을 확인하고, 이 가운데 154건을 검거했다.
해결된 154건 가운데 범죄 유형은 침입절도가 85건(55%)으로 가장 많았고, 빈차털이(34건), 차량절도(23건), 성범죄(7건), 살인(2건) 등 순이었다.
우리나라 경찰이 지문감식을 범죄수사에 활용한 것은 1948년부터다. 사실상 경찰의 출범과 궤를 같이 하고 있는 셈이다. 이후 지문 채취기법과 감정기법은 지속적으로 발전하면서 범인 검거에 적극 활용됐다. 특히 경찰은 2010년 지문감정 분야에서 ‘KOLAS(한국인정기구)’의 인정을 받으며 법정 증명력과 대외 신뢰도를 크게 높였다. 이를 바탕으로 경찰은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7년에 걸쳐 해결되지 않은 현장지문 재검색을 실시해 604건의 사건을 해결했다.
경찰 관계자는 “중요 미제사건에 대해 매년 현장 지문 재검색을 실시해 사건 해결에 단서를 제공할 것”이라며 “DNA분석, 영상분석, 프로파일링 등 첨단 과학수사 기법을 총동원해 억울한 피해자가 없도록 끝까지 추적하겠다”고 말했다.
이관주 기자 leekj5@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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