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C랩 과제 '릴루미노', 기어VR용 앱으로 일반 공개
스마트폰 후면 카메라 영상을 시각장애인이 볼 수 있게 변환
임상실험 결과 최대 교정 시력 0.1 저시력자도 0.8~0.9로 개선
일상 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안경 형태 제품도 개발 계획
삼성전자, "착한 기술…후속 과제 지원 아끼지 않을 것"
[아시아경제 강희종 기자]"릴루미노를 써보니 400만원대의 확대 독서기를 사용하는 것 같았습니다. 안경 형태로도 개발한다니 기대돼요."
지난 18일 서울 태평로 삼성전자 언론 브리핑실에서 만난 김찬홍 한빛맹인학교 교사의 목소리는 한껏 고조돼 있었다. 김 교사는 자신이 시각 장애 2급을 갖고 있고 교정 시력도 0.1에 불과하다. 한빛맹인학교 8명의 학생들과 교사는 삼성전자 사내 벤처 프로그램인 C랩이 시각 장애인용 앱 '릴루미노'를 개발하는 과정에 참여하면서 많은 도움을 주었다.
김 교사는 "시각보조기구를 개발했다며 연락을 해오는 곳은 많았지만 삼성전자는 실제 시각장애인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반영하려고 노력했다는 점에서 달랐다"고 전했다.
특히 그동안 시각보조기구들이 데스크톱 크기여서 사용이 불편했지만 삼성전자가 개발한 릴루미노는 가상현실(VR) 기기를 이용한다는 점에서 시각장애 학생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김 교사는 "릴루미노를 사용해본 학생들은 매우 좋아하고 신기해 했으며 공부할 때 유용할 것 같다는 반응이 많았다"며 "많은 저시력자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기어VR 이용, 저시력자들도 독서·TV 시청 가능=릴루미노는 지난해 6월 삼성전자 사내벤처 프로그램인 C랩 과제로 출발했다.
릴루미노팀의 조정훈 CL(Creative Leader)은 "시각 장애인의 92.1%가 여가 활동으로 TV 시청을 선호하고 있으며 시각쟝애인의 86%는 명암을 구분할 수 있는 저시력자라는 기사를 보고 저시력자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 릴루미노 과제를 제안하게 됐다"고 개발 배경을 설명했다. 잔존 시력이 있다면 저시력자들이 더 잘 볼 수 있는 무엇인가를 만들 수 있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현재 시중에도 시각보조기기가 있지만 가격이 수백만~1000만원의 고가이고 굉장히 커서 이를 활용하는 시각장애인은 매우 제한돼 있다. 조정훈 CL은 상당수 시각장애인들이 사용하고 있는 스마트폰을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한 끝에 기어VR용 앱을 생각하게 됐고 지난해 5월 C-랩 과제로 제안, 선정됐다.
처음에는 혼자 개발하다 9월 2명의 팀원이 추가됐다. 9월 첫번째 프로토타입을 개발, 가능성을 입증했으며 10월에 두번째 프로토타입도 선보였다. 황반변성, 녹내장 등 다양한 시각장애인의 패턴을 고려한 기능도 추가했다. 올해 1월부터는 중앙대학교 안과 문남주 교수팀과 함께 임상 실험도 시작했다.
릴루미노는 지난 2월 스페인 바로셀로나에서 열린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2017'에 참가하면서 전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에 자신감을 얻은 릴루미노는 5월부터 본격적인 제품화에 나서 이달 일반에 앱을 공개하게 됐다.
릴루미노는 기어 VR에 장착된 스마트폰의 후면 카메라를 통해 보이는 영상을 변환 처리해 시각장애인이 인식하기 쉬운 형태로 바꿔준다. 조정훈 CL은 "1월부터 7월까지 임상실험 결과 최대 교정 시력이 0.1 미만인 저시력자들이 릴루미노를 착용한 이후에는 0.8~0.9로 개선되는 효과를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실제 기자가 저시력자처럼 시야를 뿌옇게 만들어주는 특수 안경을 착용한 후 기어VR에서 릴루미노 앱을 실행해보니 독서가 가능하고 그림을 인식할 수 있었다.
릴루미노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갤럭시S7 이상의 스마트폰과 기어VR이 있어야 한다. 스마트폰에서 릴루미노앱을 다운로드한 후 기어VR에 장착하고 사용하면 된다. 릴루미노 설치와 사용법은 릴루미노 홈페이지(www.samsungrelumino.com)에 소개돼 있다.
릴루미노팀은 VR에서 더 발전된 안경형태의 제품을 개발해 시각장애인들이 일상생활에서 편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C랩 과제가 원칙적으로 1년 후 종료되는데 비해 릴루미노는 이례적으로 1년 더 후속 과제를 진행할 예정이다.
이재일 삼성전자 창의개발센터 상무는 "릴루미노는 전세계 2억4000만명 시각장애인들의 삶을 바꿔줄 '착한 기술'"이라며 "후속 과제에 대한 지원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C랩 180개 과제 수행·750명 임직원 참여=C랩은 삼성전자가 창의적인 조직문화를 확산하고 임직원들의 아이디어를 발굴하기 위해 2012년부터 도입한 사내벤처 육성 프로그램이다. 사물인터넷(IoT), 웨어러블, VR와 같은 IT 분야뿐 아니라 ‘릴루미노’와 같은 사회공헌 과제도 선정해 지원하고 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과제까지 총 180개 과제를 수행했고, 750명의 임직원이 참여했다.
또한, 2015년부터는 C랩 과제 중 사업화 가능성이 높은 과제를 선정해 임직원들이
독립해 스타트업을 설립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현재까지 25개 C랩 과제가 스타트업으로 독립했다.
이 중 산업 건축용 진공 단열 패널을 설계·생산하는 에임트(AIMT)는 40억원 규모의 해외 투자를 유치했고, 허밍으로 작곡하는 앱을 개발하는 쿨잼컴퍼니(COOLJAMM company)는 최근 세계 3대 음악 박람회 미뎀랩(MIDEMLAB) 2017에서 우승하는 등 해외에서도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다.
또, 점착식 소형 메모 프린터를 개발해 올해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최대 가전전시 CES에서 최고혁신상을 수상했던 망고슬래브(MANGOSLAB)는 스타트업으로 독립한지 1년 만에 양산 제품을 생산해 9월 본격적인 판매를 앞두고 있다.
망고슬래브는 지난 해 6월 창업해 현재 14명으로 인력이 3.5배 증가했고 2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세대가 함께 근무하고 있다.
강희종 기자 mindl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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