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신범수 기자]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환자가 돈을 다 내야했던, 그러나 의학적으로는 필요해서 불가피하게 사용해야 했던, 각종 '비급여' 항목을 급여로 전환한다는 게 이번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의 핵심이다. 결국 건강보험이 부담해야 할 돈이 많아지게 되는데 보건복지부는 2022년까지 총 30조6000억원이 들 것이라고 했다. 정부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런 '보장성 강화' 방안을 발표해왔지만, 지금까지 어떤 대책보다도 돈이 많이 드는 계획이다.
당연한 우려는 건강보험 재정파탄과 이를 막기 위한 건강보험료 폭증이다. 이 부분에서 복지부가 지나치게 안일한 생각을 가진 게 아니냐는 지적이 있다. 불과 5개월 전 기획재정부가 내놓은 재정추계와 비교해보면 복지부의 관측이 너무 '낙관적'으로 들리기 때문이다.
기재부는 지난 3월 사회보험 중기재정추계를 통해 건강보험이 2018년부터 적자로 전환되고 2023년이 되면 적립금마저 모두 소진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 때 사용된 각종 수치가 복지부의 이번 것과 매우 다르다.
기재부는 ①앞으로 건보료를 지난 3년 평균인 1.3%씩 올리며 ②의료가격(수가)을 2.2%씩 인상하고 ③정부가 건강보험에 지원하는 금액을 건보료 수입의 15.6%로 놓고 계산했다. 즉 건강보험과 관련된 중요 수입ㆍ지출 항목들이 예년과 비슷하게 유지될 것을 가정해서 이런 추계를 내놓았던 것이다. '극단적 비관'의 추계라 볼 여지가 있다.
그러나 복지부는 ①앞으로 건보료를 3% 내외로 올리며 ②정부 지원금을 건보료 수입의 17%까지 받아내면 이번 대책을 무리 없이 수행해 낼 것이라고 했다. 복지부의 계획을 좀 자세히 들여다보면, 앞으로 5년간 필요한 30조6000억원 중 10조원은 현재 20조원인 건강보험기금 적립금에서 빼 쓴다는 계획이다. 적립금을 다 써버리면 안되니까 10조원은 남겨두고 그 수준에서 계속 유지하겠다고 했다.
복지부가 크게 기대하는 부분은 정부의 지원금 확대다. 정부는 국민건강보험법 등에 의해 매년 건강보험료 수입액의 20%를 건강보험에 지원해야 한다. 하지만 다른 여러 곳에도 써야하기 때문에 이를 지킨 적이 없다. 올해의 경우 13.8%만 줬다. 복지부는 응당 '받아야 할' 지원금인 만큼, 20%까지는 못해도 17%까지는 올리겠다고 했다. 이를 금액으로 환산하면, 올해 13.8%는 6조9000억원이고 17%가 되면 8조5000억원으로 증가한다. 1년에 1조6000억원 정도 여유가 생기는 것이다. 건강보험료 수입액이 증가하는 것을 감안하지 않고 5년 누적액을 계산해보면 8조원 정도 된다. 앞선 적립금 10조원과 지원금 확대로 총 18조원 정도 마련할 수 있는 것이다.
나머지 12조원은 건보료 인상으로 충당할 계획이다. 한해 들어오는 건보료가 50조원 정도이므로 매년 3% 인상하면 1년에 1.5조원씩 수입이 는다. 단순 계산으로 5년이면 8조원 조금 넘게 재정이 확충되는 것이다. 복지부 계산대로 하면 30조원까지는 아니어도 얼추 26조원 정도는 '큰 무리 없이' 마련할 수 있다. 건강보험의 전체 규모가 꾸준히 증가하는 걸 감안하면 30조원이라는 재정추계는 거의 전부 설명이 된다.
그러나 복지부의 이런 생각은 기재부의 지나친 '비관'과 정반대로 지나친 '낙관'일 수 있다. 우선 건보료 3% 인상이 가능한가부터 걸림돌이다. 3%는 지난 10년간 평균치이지만 2013년 이후만 보면 1%를 넘긴 적이 없다. 갑작스런 건보료 인상을 국민이 받아들일 것인지 확신할 수 없다. 또 정부 지원금을 17% 받아낼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이는 국고에서 나오는 것인데 기초연금 등 쓸 곳이 많아 복지부 바람대로 될지도 두고 봐야한다.
무엇보다 설명이 되지 않는 부분은 적립금 10조원을 앞으로 5년간 다 써버린 뒤 어떻게 할 것인지다. 그 때가서 건보료 대폭 인상이 아니라면 남은 적립금 10조원으로 몇 년을 더 버틴 뒤 고갈 상황을 맞아야 한다. 결국 다음 혹은 그 다음 정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든 일단 선심부터 쓰고 보자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불가피하다.
그러나 이같은 살림 짜기는 사실상 큰 의미가 없다. 건강보험 재정추계에는 변수가 워낙 많아 제대로 맞은 적도 별로 없다. 이번 대책이 서민들에게 희망 혹은 재앙이 될 것인지 여부는 결국 '사용량'에 달렸다.
보장성 강화로 병원 문턱이 낮아지면서 의료 사용량이 대폭 증가할 것이란 점, 노인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란 점 등을 감안하면 자칫 이번 보장성 강화는 5년짜리 시한부 정책일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의료계의 '생존본능'을 과소평가한 측면도 지적해야 한다. 비급여 항목으로 돈을 벌어온 의료기관들이 소득을 유지하기 위해 새로운 비급여를 개발해내는 '풍선효과'가 예상되는데, 이렇게 되면 국민의 체감 의료비 부담은 다시 증가할 수 있다. 여기에 정부가 사용량을 통제하기 위해 병원 문턱을 다시 높이는 정책을 도입할 경우 국민의 반발이 커질 우려도 있다.
복지부는 내년에 '건강보험 5개년 종합계획'을 내놓아 장기적 재정전망을 다시 발표한다는 계획이다.
신범수 기자 answ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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