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진수 기자]북한 핵ㆍ미사일 문제를 둘러싼 한반도 정세 논의에서 중대한 변화 기류가 감지되는 가운데 정작 한국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지난 5일(현지시간) 대북 제재결의 2371호를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중국ㆍ러시아까지 찬성해 만장일치가 된 것이다. 핵심 내용은 북한의 석탄ㆍ철광석 등 주요 광물과 수산물 수출을 전면 금하는 것이다.
이보다 앞서 북한 문제 해결에서 매우 중요한 중국이 움직이지 않자 미국 각계는 새로운 해법 찾기에 골몰했다. 지난달 28일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은 북한 정권 붕괴 이후 상황과 관련해 '주한미군 대부분 철수' 공약을 중국에 제안할 수 있다고 말했다.
북한이라는 '완충지대'가 사라질 것이라는 중국의 우려를 덜어주려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하다"면서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 등 미 핵심 관료들에게 이처럼 조언한 것이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과 제럴드 포드 대통령 행정부에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국무장관을 지낸 키신저는 국제관계와 관련해 현존하는 인물 가운데 가장 권위 있고 고급 정보에 근접한 인물로 평가 받고 있다. 그러나 그의 조언에서 한국의 입장에 관한 부분은 전혀 없었다.
주한미군 철수를 거론한 인물은 또 있다. 미 싱크탱크 애틀랜틱카운슬의 토드 로즌블룸 수석 연구원이 바로 그다. 그는 1990년대 한국ㆍ북한ㆍ미국ㆍ중국이 참여한 4자회담의 미국 측 대표단에서 활동한 뒤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국방부 국토방어 및 안보 분야 차관보를 역임했다.
그는 지난달 19일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 기고문에서 제2의 한국전쟁 없이 북한의 핵 프로그램을 저지하려면 주한미군이 철수하고 그 대가로 중국은 대북 지원을 중단함과 동시에 김정은 정권 붕괴를 이끌어 북한이 한국에 흡수 통일되도록 만들자고 주장했다.
그는 "북한 흡수 통일 과정에 미국ㆍ중국이 공동 관여하고 미중과 다른 나라들이 북한 재건에 드는 수백억달러를 대도록 하자"며 통일 비용 조달과 통일 한국의 자주권을 맞바꾸자는 황당한 논리도 펼쳤다.
한국이 배제된 주장은 또 있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대북 인권특사를 지낸 제이 레프코위츠는 북핵 문제가 해결되려면 미국은 한반도 통일이 목표인 '원 코리아(One Korea)' 정책부터 포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북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뼈아프지만 올바른 선택이 바로 중국과 협상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러니 '코리아 패싱(Korea Passing)'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코리아 패싱이란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에서 한국이 배제된 채 논의가 이뤄지는 현상에 대한 자조 섞인 표현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 존스홉킨스대학 한미연구소 산하 북한 전문 매체 '38노스'의 운영자이자 한반도 전문가인 조엘 위트 수석 연구원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내는 서신 형식의 글을 지난 4일 홈페이지에 올렸다. 미국이 북한의 위협 중단을, 한국이 남북관계 개선을 각각 주도하는 한미 역할 분담론에 대해 주장한 것이다. 마치 한국에 적선이라도 하는 듯한 주장이다.
1990년대 미 국무부 북한 담당관을 역임한 위트 연구원은 지난해 11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반관반민' 형식의 북미 1.5 트랙 대화에 민간 전문가로 참석한 바 있다.
그는 "미국이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역할하지 않으면 북한은 대응하지 않는다"면서 "많은 한국인의 바람과 달리 한국이 북한 문제에서 주도권을 잡는 일은 실패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코리아 패싱이 한국은 취급도 안 해주는 '코리아 낫싱(Korea Nothing)'으로 조만간 이어지기 전 우리 목소리를 제대로 내야 할 시점이다.
이진수 기자 commu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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