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요즘 기상예보 중 눈에 띄는 것이 '대기환경 주의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황사'문제를 주로 다뤘으나 근래 들어서는 '초미세먼지'가 크게 부각되고 있다. 그만큼 대기환경이 사람들의 일상 활동에 지장을 줄 정도로 악화됐기 때문이다.
흔히 대기오염 주범으로 자동차 배기가스나 산업 활동을 떠올린다. 그러나 최근 미국 에너지관리청(EIA) 자료에 따르면 전체 에너지의 약 48%를 건축물이 소비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전기로 75%를 소비하고 있으며 이산화탄소 배출량 비중은 차량의 34%보다 많은 44%였다.
게다가 건축물의 전체 에너지 소비량 중에서도 건축물 사용 과정에서 소비되는 에너지가 41%를 차지하고 있어 대기환경 개선을 위해 건축물의 유지 관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 수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건축물이 전체 에너지의 40%를 소비해 자동차를 앞지른 지 오래다. 특히 건물의 에너지 손실이 크다. 한겨울 가정용 아파트나 주택의 현관문을 만져보면 매우 차갑다. 열은 온도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전달되는 것이 자연법칙이라 안쪽 열기를 빼앗기기 때문이다. 외벽이나 지붕, 창호의 틈새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우리 건축물이 에너지 손실을 줄이기 위한 노력보다 디자인을 중시한 데 원인이 있다.
최근 건축물 착공과 유지관리에 에너지 절약형 공법을 적용하고 있지만 주요 선진국에 비해 여전히 뒤떨어진 실정이다. 미국 뉴욕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은 창문 단열을 통해 에너지 비용을 40% 가까이 줄였고, 독일 프랑크푸르트는 아예 건축물의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 단열재와 삼중창문을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 노원구는 국가 에너지 정책과 관련해 의미 있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세계적인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국내 최초로 건설 중인 121세대 규모의 친환경 에너지 자립 주택단지의 완공을 앞두고 있는 것이다.
국토교통부의 예산지원으로 진행하는 이 사업은 주택유지에 필요한 냉ㆍ난방, 급탕, 환기, 조명 등 5대 주요 에너지를 화석연료가 아닌 태양광이나 지열 등 신재생에너지로 충당한다. 연간 사용량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도록 설계돼 계절에 관계없이 쾌적함을 느낄 수 있는 친환경 주거공간이다.
오는 11월 입주예정으로 사회 초년생, 신혼부부, 고령자가 입주 대상이다. 거주 기간은 최대 6년이다. 30년 이상 살 수 있는 장기임대 주택과 달리 행복주택 요건으로 거주 기간을 정한 것은 더 많은 사람들이 실제 거주하면서 환경의 중요성을 체험했으면 하는 의도에서다. 그래서 아파트 운영방식도 기존 아파트 단지와는 다르다. 입주민 스스로 주택관리업무를 하는 협동조합형으로 운영한다. 지구에 부담을 덜어주면서 이웃끼리 행복하게 사는 첫 마을이 됐으면 좋겠다.
그동안 에너지 주택은 실험용으로만 시도했지 대단위 거주용은 처음이다. 이를 계기로 우리나라 에너지 주택 소재 산업도 바뀌고 있다. 이제껏 관련 자재는 국내 건설 수요가 없어 수입에 의존해 비용이 높았다. 하지만 이번 에너지 제로 주택 건설을 기회로 국내 관련 업체들이 삼중유리와 단열 문짝을 만들기 시작했다. 우리 건축 문화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기후변화는 더 이상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국토교통부가 2020년엔 국내 공공 건축물에 대한 제로에너지 주택 설계를 의무화하고 2025년엔 모든 건축물로 확대할 계획이어서 노원 제로에너지 주택단지는 국내 건축사 측면에서도 의미가 크다. 이제 제로 에너지 주택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김성환 서울 노원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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