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한 두 해 전쯤 서울대생들을 대상으로 했던 설문조사는 씁쓸함을 안겨준다. 부모님께서 몇 살까지 사셨으면 좋겠는지를 물었는데, 약 58세라고 나온 것이다. 더구나 그 이유로 부모님 은퇴 후 퇴직금을 다 써 버리기 전이라는 대목도 있었다.
오늘날 인간의 잠재 수명은 120세에 가까워지고 있다. 통계청의 고령자 통계자료에 따르면 2026년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노인인구 비율은 20%에 달할 전망이다. 지금부터 약 10년 후면 인구 5명 중 1명은 노인이 된다. 고령화 추세는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동시에 삶의 질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얼마나 오래 사는가'라는 평균수명 개념에서 '얼마나 건강하게 오래 사는가'에 중점을 두는 것이다. 2014년 현재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82.4세인데 비해 건강수명은 73세로 집계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노후 8~9년 정도는 건강하지 못한 상태로 '버티다' 죽는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많은 노인들은 일부 젊은이들의 바람(?)과는 달리 돈을 자신의 건강관리에 쏟을 수밖에 없다.
우스갯소리로 여자가 늙어서 꼭 필요한 5가지는 돈, 딸, 건강, 친구, 찜질방인 반면 남자는 부인, 아내, 집사람, 와이프, 애들 엄마라는 말이 있다. 최근의 한 여론조사를 보면 남성은 미혼보다 기혼인 경우 행복지수가 높은 반면 여성은 그 반대의 결과를 보였다. 기혼 여성의 경우 자녀가 있는 여성이 자녀가 없는 여성보다 행복지수가 높았으며, 특히 40대 이후부터는 자녀가 있을 때 행복지수가 더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88세이신 나의 어머니의 경우 그 시절 기준으로는 결혼적령기를 훌쩍 넘긴 28세에 두 살 연상의 독자인 아버지와 결혼하신 후 줄줄이 딸만 넷을 낳으셨다. 남아선호사상이 강했던 당시의 전통적인 가족가치관 속에서 외며느리로서 정신적 스트레스가 얼마나 심했을 지 가히 짐작이 간다. 하지만 딸들과 부지런히 소통을 하는 지금은 그 누구보다 그 어느때보다 가장 행복하다고 하신다.
부모님께서는 70대 후반부터 건강이 부쩍 쇠약해져 아파트를 처분하고 유료노인시설로 입소하셨다. 처음 경험하는 낯선 주거환경과 다양한 배경을 가진 입주노인들과의 공동체 생활에 적응하시느라 두 분 모두 초반에는 마음고생을 꽤 하셨다. 아직까지 우리나라에는 다양한 유형의 노인주거시설이 공급되고 있지 못하며 시설 입소율도 전체 노인의 2% 미만에 불과한 수준이다 보니 선택과정에서부터 많은 제약이 따른다. 따라서 노후에 살 만한 주거유형을 찾는 것도 삶의 질을 높이는데 중요한 부분이다.
노인이 되면 신체적, 경제적, 사회적, 심리적 차원 등 여러 부분에서 변화를 겪게 되는데 특히 정서적 우울감이나 외로움이 노후 삶의 질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나이가 들수록 소통 가능한 가족이나 친구, 친밀한 이웃 등의 존재 역시 매우 중요하다. 얼마전 한 모임에서 어느 선배가 꽤 진지한 표정으로 던진 농담이 떠오른다. 결혼과 이혼, 별거, 졸혼 등 만남과 헤어짐이 쉽게 이뤄지는 사회에서 앞으로 적어도 수십년 이상을 함께 살아낸 부부들에게는 정부에서 공로상을 수여하는 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 가정과 가족의 모습을 유지하고 지키기 위해서는 많은 인내와 노력을 필요로 한다는 뜻으로 던진 말이다. 이 같은 제반 현실을 감안하면 앞서 서울대생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의 응답이 어느 정도 이해되기도 한다. 다가오는 100세 시대에 대비해 세대별로 길어지는 노후의 삶을 보다 건강하고 행복하게 보내기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할 지 깊은 고민이 필요한 때이다.
김영주 중앙대 디자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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