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구채은 기자] 가계빚을 줄이면 소비가 둔화되기 때문에 정부가 정책적으로 가계부채를 줄이려면 저소득층보다 고소득층의 부채를 먼저 줄여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한국금융연구원은 28일 서울시 중구 은행회관에서 개최한 ‘국제적 관점에서 본 가계부채 리스크에 대응한 정책과제’를 주제로 국제컨퍼런스를 열었다.
이날 연사로 나선 박종상 연구위원은 통계청과 한국은행의 가계금융복지조사(2012~2015년)를 분석한 결과 주택담보대출 증가가 가계 소비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보고서(노형식 연구위원)를 소개했다. 빌린 돈의 일부를 다른 용도로 소비할 여력이 생겨서다.
다만 빚이 소비에 미치는 영향은 계층별로 달랐다. 평균소비성향이 중간 이상인 중·저소득층은 대출로 현금으로 활용할 수 있는 유동성이 좋아졌다. 하지만 평균소비성향이 중간 이하인 고소득층은 대출을 소비에 활용하지 않는 강제저축 수단으로 썼다. 박 연구위원은 “정부가 가계부채를 정책적으로 축소할 때 소비둔화 문제를 완화하려면 고소득층의 주택담보차입을 상대적으로 먼저 줄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가계부채가 소비를 늘리는 효과는 단기에 불과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강종구 한국은행 국장은 “가계부채 증가가 단기적으로 경제성장을 촉진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경제성장에 부담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가계가 원금과 이자 상환 부담으로 소비를 줄이면 경제성장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금리 인상기에는 고정금리가 영향을 덜 받는다는 연구 결과도 소개됐다. 박춘성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의 ‘금리유형별 주택담보대출과 경기변동’이라는 논문에 따르면 금리가 0.25% 포인트 상승할 경우 고정금리·분할상환 차입자의 소비 감소 폭이 변동금리·일시상환 차입자보다 0.5%포인트 낮은 것으로 나왔다. 박 연구위원은 “금리가 상승할 때 고정금리는 미상환 금리가 변하지 않지만 변동금리는 대출 잔액 금리가 오른다”며 “차입 가계는 고정금리 아래에서 비내구재 소비 및 주택소비 여력이 상대적으로 유지된다”고 평가했다.
이보미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가계의 채무불이행 위험을 줄이는 차원에서 변동금리 주택담보대출에 금리상한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크리스토프 안드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한국의 가계부채 문제와 관련해 "위기가 임박하지는 않았지만 해결해야 할 문제"라며 "최근 한국 정부가 서울과 경기, 부산 등 일부 지역에서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을 10%포인트 낮추는 방식으로 부동산 규제를 강화한 것은 적절한 조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날 콘퍼런스에는 신인석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위원과 신성환 금융연구원장, 이동걸 동국대학교 교수, 성태윤 연세대 교수, 이형주 금융위원회 금융정책국장 등이 참석해 발표와 토론을 진행했다.
구채은 기자 faktu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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