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조슬기나 기자]정부가 신고리 원자력발전소 5ㆍ6호기의 건설 영구중단 여부를 놓고 '공론화위원회'를 운영하기로 한 기간은 불과 3개월이다. 향후 탈(脫)원전 정책의 흐름을 가를 중요 변수인데다 이미 1조6000억원 이상이 투입됐다는 점을 감안할 때, 사회적 합의를 이루기엔 매우 짧은 기간이다.
특히 이전 정부에서 적법한 과정을 거쳐 결정된 국책사업을 정권이 바뀌자마자 재검토에 나선 것은 '법 절차 무시'라는 비판도 나온다. 앞서 탈원전을 선언한 독일, 스위스의 경우 사회적 합의과정에만 20∼30년을 소요했다.
28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정부가 사회적합의를 위해 벤치마킹하기로 한 사례는 독일의 '핵폐기장 부지선정 시민소통위원회'다. 독일 정부는 7만명에게 전화설문을 돌려 그 중 571명을 표본으로 추출했고, 120명 규모의 시민패널단을 구성해 관련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조만간 출범할 공론화위원회도 이처럼 건설 중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릴 시민배심원단을 구성하게 된다. 이해당사자 간 대립이 첨예한 이슈인 만큼, 정부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기보다 독일 등 해외사례를 참고해 시민의 손에 맡기겠다는 명분인 셈이다.
하지만 에너지전문가들은 정부 전력수급계획에 따라 결정된 국책과제를 시민투표로 결정하는 것에 대한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이미 정부는 시민배심원단은 물론, 공론화위원회에도 이해관계자나 에너지분야 관계자 등은 배제하기로 한 상태다.
또 탈원전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가 갓 본격화된 시점에서, 장기적 논의 없이 무작정 공정률 30%에 육박하는 원전 건설을 중단하는 것은 전기요금 인상, 전력안보 위협, 원전수출 등 관련산업 붕괴와 같은 부작용만 키울 수 있다는 지적도 잇따른다. 임시중단이 결정된 신고리 5ㆍ6호기는 지난해 6월 착공해 공정률이 28.8%에 달하며 공사비 1조6000억원이 투입된 상태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위 소속인 정유섭 자유한국당 의원은 "신고리 5ㆍ6호기 건설을 백지화하고 이를 석탄 및 LNG, 신재생 발전 등으로 대체하면 연간 최대 4조6000억원을 추가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무엇보다 관련분야의 최고 의사결정조직인 원자력안전위원회와 법 절차를 무시하고 국책사업을 뒤집는 것은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신뢰도를 스스로 낮추는 행위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높다. 원안위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건설허가 취소 안건을 위원이 제기하고 위원장이 동의할 경우 회의에 상정할 수 있게끔 절차가 마련돼 있다.
정부가 벤치마킹하는 독일의 경우 1986년부터 원전폐지를 논의해, 1998년 '원자력 발전을 점진적으로 폐쇄한다'는 합의문 문구를 이끌어냈다. 사회적 합의를 시작한지 25년만인 2011년 4월 독일 정부는 탈원전 시행을 위한 마지막 절차라 할 수 있는 '안전한 에너지 공급을 위한 윤리위원회'를 출범했다. 이 위원회에는 재계 인사와 대학교수는 물론, 종교지도자, 원로정치인, 시민단체 등이 모두 포함됐다. 스위스 역시 1984년부터 공론화를 시작해 국민투표만 무려 5번을 실시했다.
한국수력원자력 노조는 성명서를 통해 "정부의 원전 정책 변화해 대해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막대한 비용을 투입해 국책사업을 건설 중에 있는 원전에 대해서는 신중한 검토가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종=조슬기나 기자 se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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