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ar_progress

글자크기 설정

닫기

[차장칼럼]가로등과 하수구 과학

시계아이콘01분 11초 소요

출연: '가로등만 좇는 연구자' '미래부 갑질 사무관' '업무 무능력 출연연 직원'

[아시아경제 정종오 기자] 장면1.
늦은 어느 날 밤. 한 사람이 가로등 아래에서 뭔가를 찾고 있다. 경찰이 이 모습을 목격했다. 경찰은 "무엇을 잃어버렸습니까?"라고 묻는다. 그는 "지갑을 잃어 버렸소"라고 말한다. 경찰이 그 사람과 함께 지갑을 찾는다. 도대체 보이지 않았다. 경찰이 "지갑을 어디에서 잃어버렸습니까?"라고 질문한다. 그는 손가락으로 곁에 있는 하수구를 가리키며 "저곳에서 잃어 버렸소"라고 답한다. 경찰은 어이없다는 듯 "그럼 저쪽에서 찾아야지 왜 이곳에서 찾고 있습니까?"라고 힐난한다. 이 사람은 "저쪽 하수구는 어둡고 이쪽 가로등 아래는 아주 밝지 않소"라고 되받아친다.


[차장칼럼]가로등과 하수구 과학
AD

김상욱 부산대 교수가 펴낸 책 '과학공부-시를 품은 물리학'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김 교수는 이 이야기를 전하면서 "우리나라 과학 분야도 밝은 가로등이 비추고 있는 곳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다"며 "정작 지갑은 하수구에 있는데 누구도 가로등 밑을 떠나려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장면2.
미래창조과학부의 한 회의실.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 관계자들이 의자에 앉아 있다. 이 자리에서 한 사무관이 회의에 참석하지 않는 출연연의 모 실장에게 직접 전화를 건다. 그는 "실장님! 얼굴 안 비치면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라고 말한다. 출연연의 한 관계자는 이 같은 경험을 전하면서 "출연연은 미래부의 영원한 '을'"이라고 한탄했다.


장면3.
미래부의 한 사무관이 책상 위에 놓인 보고서를 보면서 연신 한숨을 쉬고 있다. 책상이 꺼지지 않은 게 다행이다. 출연연에서 작성한 분석 보고서 때문이다. 요점이 뭔지, 구체적 플랜은 무엇인지 도대체 알 수 없다. 괴발개발 제출한 보고서를 한편으로 치운다. 처음부터 자신이 다시 작성해야 할 판이다. 미래부의 한 관계자는 "출연연 직원들의 업무능력이 정말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며 "보고서는 물론 기획안조차 제대로 작성하지 못하는 경우가 수두룩하다"고 토로했다.


우리나라 과학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장면들이다. 영화로 찍으면 블랙 코미디가 되지 않을까. 문재인 정부의 과학기술 정책은 '연구자의 자율성 확대'에 방점이 찍혔다. 그 동안 '연구자의 자율성'을 외치지 않은 정권은 없었다. 그러나 현실은 변하지 않았다. '가로등 아래'에 옹기종기 모여 지갑은 찾지 않고 "야! 우리가 최고지"라며 자화자찬하는 이너서클 꼴은 이제 익숙하다 못해 부끄럽다.


미래부와 출연연의 '불협화음'도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의 과학기술은 미래부의 과학기술혁신본부와 청와대 과학기술보좌관이 주도할 것으로 보인다. 앞선 세 장면의 모순을 걷어내는 게 과학기술 정책의 시작점이다. 아직은 그런 움직임이 구체적으로 보이지 않아 답답할 뿐이다.





정종오 기자 ikokid@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AD
AD

당신이 궁금할 이슈 콘텐츠

AD

맞춤콘텐츠

AD

실시간 핫이슈

AD

놓칠 수 없는 이슈 픽

  • 25.12.0607:30
    한국인 참전자 사망 확인된 '국제의용군'…어떤 조직일까
    한국인 참전자 사망 확인된 '국제의용군'…어떤 조직일까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연출 : 이미리 PD■ 출연 : 이현우 기자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했다가 사망한 한국인의 장례식이 최근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열린 가운데, 우리 정부도 해당 사실을 공식 확인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매체 등에서 우크라이나 측 국제의용군에 참여한 한국인이 존재하고 사망자도 발생했다는 보도가 그간 이어져 왔지만, 정부가 이를 공식적으로 확

  • 25.12.0513:09
    김용태 "이대로라면 지방선거 못 치러, 서울·부산도 어려워"
    김용태 "이대로라면 지방선거 못 치러, 서울·부산도 어려워"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박수민 PD■ 출연 : 김용태 국민의힘 의원(12월 4일) "계엄 1년, 거대 두 정당 적대적 공생하고 있어""장동혁 변화 임계점은 1월 중순. 출마자들 가만있지 않을 것""당원 게시판 논란 조사, 장동혁 대표가 철회해야""100% 국민경선으로 지방선거 후보 뽑자" 소종섭 : 김 의원님, 바쁘신데 나와주셔서 고맙습니다. 김용태 :

  • 25.12.0415:35
    강전애x김준일 "장동혁, 이대로면 대표 수명 얼마 안 남아"
    강전애x김준일 "장동혁, 이대로면 대표 수명 얼마 안 남아"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경도 PD■ 출연 : 강전애 전 국민의힘 대변인, 김준일 시사평론가(12월 3일) 소종섭 : 국민의힘에서 계엄 1년 맞이해서 메시지들이 나왔는데 국민이 보기에는 좀 헷갈릴 것 같아요. 장동혁 대표는 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것이었다고 계엄을 옹호하는 듯한 메시지를 냈습니다. 반면 송원석 원내대표는 진심으로

  • 25.12.0309:48
    조응천 "국힘 이해 안 가, 민주당 분화 중"
    조응천 "국힘 이해 안 가, 민주당 분화 중"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미리 PD■ 출연 : 조응천 전 국회의원(12월 1일) 소종섭 : 오늘은 조응천 전 국회의원 모시고 여러 가지 이슈에 대해서 솔직 토크 진행하겠습니다. 조 의원님, 바쁘신데 나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요? 조응천 : 지금 기득권 양당들이 매일매일 벌이는 저 기행들을 보면 무척 힘들어요. 지켜보는 것

  • 25.11.2709:34
    윤희석 "'당원게시판' 징계하면 핵버튼 누른 것"
    윤희석 "'당원게시판' 징계하면 핵버튼 누른 것"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경도 PD■ 출연 : 윤희석 전 국민의힘 대변인(11월 24일)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에 출연한 윤희석 전 국민의힘 대변인은 "장동혁 대표의 메시지는 호소력에 한계가 분명해 변화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또한 "이대로라면 연말 연초에 내부에서 장 대표에 대한 문제제기가 불거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동훈 전


다양한 채널에서 아시아경제를 만나보세요!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