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 입학해서 ‘한식조리실습’시간에 신선로를 배웠다. 한 학기가 거의 끝나갈 때쯤이 되어 기초 조리를 어느 정도 배운 후라 교수님이 특별하게 준비하신 신선로 재료는 그야말로 버라이어티 했다. 채소, 해산물, 육류, 두부, 달걀, 여러 가지 고명까지 그중에서도 지금까지 잊히지 않는 재료는 간, 천엽, 소 등골이다.
깨끗하게 손질된 재료들도 아니고 자연의 상태 그대로이니 천엽에선 참아내기 어려운 고약한 냄새가 나고 소 등골은 어디서 왔는지 만지기가 두려운 대상이었다. 세상 처음 보는 재료들을 손질하는 것이 어렵고 또 어려운 일이었다. 정해진 실습시간인 4시간을 꼬박 채워서 재료를 손질하고 하나하나 지져서 반듯반듯하게 자르고 육수를 맑게 끓여서 신선로에 담으니 그 모양새는 더 이상 화려할 수 없을 만큼 알록달록하여 꽤 근사해 보였다.
화통에 불을 붙인 후 맛있게 끓여지기를 기원하며 경건하게 기다렸다. 재료들이 보글보글 끓여져 큰 기대감으로 신선로에 담긴 음식을 한수저 떠서 입속으로 넣으니~ ‘이게 웬걸’ 왜 그 고생을 하면서 끓였을까? 교수님이 원망스럽고 갑자기 급 피곤함이 몰려왔다. 담백한 맛이 나다 못해 그 많은 재료가 들어갔음에도 무슨 맛이라고 표현하기 어려운 건 신선로의 맛을 모르는 내 잘못인가?
명절 끝에 남은 전으로 엄마가 끓여 주시던 찌개의 맛과 같은, 신선로 맛의 첫 추억은 그랬다.
한국 음식의 진수인 궁중음식 중에 신선로를 그 대표 음식으로 꼽으며 우리나라 첫 관문인 인천공항에서도 한국 음식으로 신선로 사진이 외국인들에게 처음 소개된다. 화려하고 보기 좋으니 한국 음식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되는 요리이다.
신선로는 원래 화통이 붙은 냄비 이름이고 학교에서 만들었던 음식은 신선로에 담은 ‘열구자탕’으로 입을 즐겁게 한다는 뜻이다. 신선로는 조선시대 연산군 때 세속을 떠나 선인의 생활을 했던 허암 정희량이 즐겨 먹었던 음식에서 유래하여 화로에 여러 가지 재료를 넣어 익혀 먹는 것이 허암 선생의 신선과 같은 생활을 닮아 신선로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궁중의 잔치에서는 탕신선로와 국수를 넣고 끓인 끓이는 면신선로가 빠지지 않는 것으로 면신선로는 경사스러운 일이나 추모의 뜻이 길에 이어지기를 염원하는 뜻이 담겨 있었다.
학교에서 배웠던 신선로는 손이 많이 가는 것으로 이제 만들어 먹기 쉬운 음식은 아니다. 상다리가 휘어지게 차려지는 고급 한정식집에서는 볼법한 요리가 되었지만 식탁 위에 브루스타나 전기렌지를 올려놓지 않고도 음식이 식지 않게 끓일 수 있는 화통이 붙은 조리도구로서의 신선로는 하나쯤 가지고 사용하고 싶다. 가녀리게 생긴 그 모양새가 돋보이며 식탁의 가운데서 센터피스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어느 파스타 집에서는 파스타를 신선로에 담아 재밌는 퍼포먼스를 하기도 하고 한식당에서는 보글보글 끓여야 맛있는 국이나 탕을 정성으로 담아내기도 한다. 처음 만들어진 신선로의 유래처럼 검소한 재료들을 넣어 끓이면 궁중음식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신선처럼 여유 있게 먹게 될 수 있을 것 같다.
글ㆍ사진=이미경(요리연구가, 네츄르먼트 http://blog.naver.com/pout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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