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정치 깬 文대통령, 외교에도 새로운 접근 기대
대북 제재는 한계…韓·美·北 연결고리 찾는게 관건
전략적 파트너십보다 상황 따른 유연한 외교 필요
[아시아경제 뉴욕 김은별 특파원] "동북아시아 뿐 아니라 전 세계가 복잡하게 얽힌 상황인데, 한국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단기적으로 북한을 어떻게 협상 테이블로 끌어낼 수 있을 것인지부터 시작해 장기적으로는 보호무역주의 등을 포함한 미국의 외교전략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이달 말 열리는 한미정상회담에 시선이 쏠리는 이유입니다."
토마스 그레이엄 키신저 어소시에이츠 사무총장(박사)이 한미 정상회담을 복잡한 국제 정세를 풀 중요한 도구로 꼽았다. 그레이엄 박사는 13일(현지시간) 뉴욕 키신저 어소시에이츠 사무실에서 진행된 아시아경제 창간 29년 기념 인터뷰에서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한국과 미국, 중국의 관계"라며 "한미 정상회담에 문재인 대통령이 어떤 제안을 가지고 참석할 지 기대가 된다"고 밝혔다.
북한 핵 문제와 관련해 한국이 큰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감도 내비쳤다. 북한에 대해 잘 알고 있으면서도 미국, 중국을 모두 설득할 수 있는 위치에 있어 문제의 열쇠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다.
아울러 그레이엄 박사는 각국의 외교 전략에도 변화가 필요하고, 외교 방식이 바뀔 수밖에 없다는 전망도 내놓았다. 그는 "과거 당연하게 여겨지던 외교 정책들을 한 번 쯤 재정비할 때"라고 예상했다. 그레이엄 박사가 바라보는 동북아시아와 러시아, 미국의 외교 상황과 전망을 들어 봤다.
-한국에서 '문재인 정부'가 새롭게 들어섰다. 북한과 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고 중국ㆍ러시아와도 마찬가지 외교 전략을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앞으로 동북아시아 정세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지난 몇 달 동안 한국 뿐 아니라 미국, 중국, 러시아에서도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 지 예측하기가 어려운 시기였다. 북한 역시 빠른 속도로 미사일 기술과 핵 개발을 진행하고 있어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다. 한국의 새 대통령이 오랜 시간동안 진행된 보수 정치 역사를 깼기 때문에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상황을 해결할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새 대통령이 어떻게 구체적인 대북, 대중정책을 취할 것인지 판가름하는 데에는 시간이 좀 걸린다. 이달 말 미국 워싱턴에서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 이후 명확한 답이 나올 것으로 믿는다. 안보와 북핵, 통상문제를 폭넓게 논의하면서 실타래를 풀어가는 매우 터프한 회담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
-현 상황에서 한국이 동북아 평화를 위해 할 수 있는 역할과 외교정책엔 어떤 것이 있을까.
▲지난 20여년간 한반도, 넓게는 동북아 평화를 위해서 여러가지 방법을 써 봤지만 북핵 문제는 진전이 없었다. 이 문제를 풀 때 중요한 역할을 한국이 할 수 있다. 지금 가져야 할 목표는 미국, 그리고 한국이 함께 북한과의 연결고리를 다시 만들어내는 것이다. 물론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미국 내에서도 북한에 대한 강경대응 여부를 두고 논쟁이 있다. 그러나 어찌됐든 간에 연결고리를 만들고 북한을 다시 협상테이블로 나올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 상황에서 한국이 중국을 격려하고 북한과 얘기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러시아 역시 북한에 대해서는 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고 있다. 앞으로 러시아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나.
▲솔직히 말하면 지금 러시아가 가장 중요한 핵심 멤버는 아니다. 중국과 한국, 미국이 핵심 멤버다. 다만 러시아의 발언처럼 제재를 통한 문제 해결에 한계가 있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그 누구도 제재만으로 북한을 움직일 수 있을 것으로 믿지 않는다. 제재를 어느 정도로 가할 지, 그리고 어느 정도 수준에서 대화로 넘어갈 지는 서울과 워싱턴에 달렸다.
-지금 러시아는 어떤 외교적 전략을 생각하고 있나. 만약 러시아가 북핵 문제와 관련해 협상 테이블에 함께 앉는다면 어떤 장점을 얻을 수 있을까.
▲러시아가 바라는 점은 동아시아,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힘을 늘리려고 하는 것이다. 동쪽으로는 아시아 지역, 서쪽으로는 유럽으로 범위를 넓히면서 예전의 러시아 모습을 되찾는 게 목표인데 그러려면 지정학적으로 핵심 이슈인 북핵 문제에 참여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문재인 정부는 러시아와의 경제협력도 생각하고 있다. 최근 파견한 러시아 특사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도 이를 논의했다. 이 부분도 북핵 문제 해결이나 동아시아 외교에 확실히 도움이 될까.
▲재미있는 질문이다. 왜냐하면 러시아가 지금 상황에서 무엇을 원하는지와도 연결돼 있는 발상이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북핵 문제에서는 다른 나라들처럼 깊은 연관이 있지는 않지만, 많은 시간동안 경제협력에는 공을 들였다. 특히 한국의 경우 IT기술에 관심을 갖고 있는데, 단순히 경제 협력을 한다는 것 자체보다 IT기술을 같이 개발하는 것에 관심이 있다. 정치지리학적인 이득을 얻는 것은 물론이다. 러시아가 중국과 경제적 관계를 만들려고 하면서도 동시에 우려하는 것도 잘 생각해 볼 부분이다. 중국이 경제적 영토를 넓히면 동북아 지역에서 러시아의 비율은 적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러시아는 중국과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결국 '레버리지가 있는' 관계다. 이 부분을 한국 외교부가 잘 이용해 볼 필요가 있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문제에 대한 러시아의 생각은 어떤가.
▲부시 정부에서 일했던 경험을 돌이켜 보면, 사실 러시아는 미국이 아시아 지역에서 군사적 행동을 하는 것에 대해서 큰 신경은 쓰지 않는다. 다만 사드 문제에 반대하는 것은 중국 때문이다. 중국이 반대하기 때문에 같이 힘을 실어줌으로써 서포트 해 주는 뜻을 밝히는 것이다. 실용적인 외교 방식이다.
-다음달 주요20개국(G20) 정상회담에서 미국과 러시아의 관계에 특별한 진전이 있을까.
▲G20는 특별한 이슈를 가지고 토론하는 회의이기 때문에 양자간 협상이 진행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다만 모스크바에서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구 미국 대통령이 만날지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어떤 식으로든 만날 것으로 생각한다. 공식적 만남은 아니더라도, 잠깐이라도 만나 차를 마시고 악수하는 것만으로도 향후 진행될 공식적 만남의 재료가 될 수 있어 중요하다.
-최근 트럼프 정부는 '러시아 스캔들' 때문에 내홍을 겪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한 생각은
▲미국의 모든 외교 라인이 러시아 스캔들 조사 하는데 집중하고 있고, 워싱턴도 모든 산소를 여기에 써 버리고 있는 상황이다. 다른 이슈에 집중을 할 수가 없다. 러시아와 다룰 다른 사안에 대해 어떤 말을 꺼내지도 못한다. G20에서 어떤 얘기를 (러시아랑) 할 수 있는지 공식적으로 아무 말도 못하는 이유도 그것 때문이다. 러시아 정부 역시 특별히 이에 대해 진전된 발언을 내놓지는 않고 지금 입장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한다.
-미ㆍ러 관계자는 역사적으로 어쩔 수 없이 어려운 관계를 지속해왔다. 이 문제를 풀 수 있을까
▲역사적으로 매우 어려운 관계형성을 해 왔기 때문에 지금 미ㆍ러 관계가 힘든 것도 그다지 새로운 이슈도 아니다. 다만 이제는 협력관계를 새롭게 다질 때는 됐다고 본다. 이란, 북핵 문제 등이 끊임없이 나오는 중요한 상황에서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풀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아마 독자 여러분도 '전략적 파트너'라는 말을 못 들어본 지 꽤 됐을 것이다. 2009년 정도에 한창 유행하던 것인데, 이제는 전략적 파트너십보다는 얕은 연결고리를 각 국가마다 유지하면서도 폭넓게 이해하고 상황에 맞게 외교정책을 펼치는 것이 중요해졌다.
☞토마스 그레이엄 사무총장(박사)는= 예일대학교에서 러시아학 학위를 취득한 뒤 하버드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를 취득했다. 1984년부터 1998년까지 미국 외무부 공무원으로서 모스크바 주재 미국 대사관에서 정치 카운슬링 활동을 했다. 2002년부터 2007년까지는 부시 정부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러시아 담당 국장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예일대 잭슨 인스티튜트 소속으로 글로벌 문제를 연구하고 있으며, 헨리 키신저가 세운 국제전략 자문회사인 키신저 어소시에이츠의 사무총장으로도 활동 중이다.
뉴욕 김은별 특파원 silversta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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