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중용의 핵심구절인 '9경'과 '부끄러움을 아는 용기'
여보게. 많이 바쁘실 걸세. 시작하는 이에겐 모든 일이 설레고 긴장되는 법이지. 나는 그대의 의욕과 지혜와 희망과 비전이 아름답게 펼쳐지기를 바라는 사람일세.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봐 이렇게 찾아왔네. 요즘 말로 정치의 꿀팁이라도 좀 드릴까 해서 말일세. 나라를 다스리는 데엔 9경(九經)이란 게 있네.
1경은 수신修身(스스로를 닦음).
대통령도 계속 스스로를 살펴 반성하고 문제를 고민하고 공부해야 하네. 권력의 울 안에 갇혀, 혹은 자기 고집이나 생각의 틀에 갇혀, 자폐적인 소통 불능의 권력자는 국민들이 이제 그만 보고싶어할 것이네. 국민들은 '멋진 스타 대통령'을 보고 싶은 것이 아니라, 소명감에 넘치면서도 진실하고 편안한 지도자를 보고싶은 것이네. 대단한 대통령보다, 거울방이 아니더라도 자기 스스로를 자주 들여다볼 수 있는 대통령을 원할 것이네.
2경은 존현尊賢(지식인을 존중함).
나라의 지식인을 가리지 않고 존중하고 그 충고를 들어야 하네. 그 충고에는 가시도 있을 것일세. 그러나 대선토론회 때처럼 허허 웃으며 그 비판을 듣고 경청할 것들을 골라내시게.
3경은 친친親親(부모와 가족을 잘 모심).
자신의 가족관계를 다른 사람이 본받고 싶도록 떳떳하게 꾸려야 하네. 대통령으로서의 주변관리이기도 하다네.
4경은 경대신敬大臣(정치인들을 공경함).
국회와 야당에게 겸허하고 진실한 태도로 대해야 하네. 대선 기간이나 야당 시절에 외친 것처럼, 그들은 그대의 정치적 라이벌이 아니라, 국사를 함께 이끌어가야할 논의의 다른 주체라는 걸 잊지 말게.
5경은 체군신體群臣(공무원들과의 일체감).
내각을 비롯한 공직자들에게 몸소 모범이 되고 일체감을 갖도록 해야 하네. 권력의 필요에 의해 그간 그들을 자주 들쑤시고 뒤흔들어 자부심과 정체성, 그리고 공복으로서의 높은 도덕성이 흐려지는 기미가 있어왔네. 이들이 권력 아래 춤추면 나라는 희망이 없다네.
6경은 자서민子庶民(서민들을 챙김).
서민을 비롯한 국민을 하나하나 자식 돌보듯 살펴야 하네. 선거 때 시장상인이나 아이들을 포옹하는, 그런 쇼가 필요하다는 말이 아니네. 실제로 그들의 삶 속을 살피고 또 살펴 지금 당장 필요한 것과 장기적으로 꼭 갖춰야 할 것을 정해 그들이 체감할 수 있는 정책들을 펴나가란 얘기일세.
7경은 내백공來百工(경제인들을 모심).
온갖 기업들이 모두 대한민국에서 일하고 싶도록 해야하네. 이 나라 기업들이 그간 쌓아온 폐단들을 바로잡으려는 기개도 좋고 또 크고 작은 기업들끼리의 불평등과 불공평을 고쳐나가는 것도 좋은 일일세. 그것은 나라경제라는 큰 틀이 건전해지고 부강해지는 전제 위에서 이뤄져야 한다네. 그들이 국가경제의 몫을 담당해온 역할이나 현실적 공로를 잊지는 말게. 기업의 맹렬한 생존과 성장의 욕망을 건전한 틀 안에서 발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핵심일세. 외국 기업들까지 여기로 와서 일하거나, 우리와 손잡고 일하고 싶도록 해주는 문재인 정부만의 '미래지향의 기업생태계'를 한번 구축해보게나.
8경은 유원인柔遠人(먼나라와 부드러운 외교).
외교는 여러 나라가 두루 선린을 유지할 수 있도록 지혜를 발휘해야 하네. 강경책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건 권하고 싶지 않네. 지금 골이 깊어진 남북관계도 보여주기식보다 뭔가 실질적인 진전을 이뤄보게.
9경은 회제후懷諸侯(지방관리를 품음).
지자체를 잘 보듬어 지역경제를 살리고 전국의 균형발전을 꾀하는 걸세. 그간 정권들이 상습적으로 해온, 표를 염두에 둔 지역 구애가 아니라, 그간 갈라지고 돌아서고 서로 불평등이 심화되었다고 생각하는 지역들을 고루 잘 끌어안고 상처를 치유해주고 공평한 기회를 지니고 함께 발전하도록 만드는 일일세.
이건 인류 2500년의 정치 노하우일세. 이렇게하면 전 정권들처럼 실패하지 않을걸세. 자네에게만 특별히 해주는 말일세. 이제 대한민국도 일류정치 한번 해보게.
아참, 그리고 이건 덤일세.
지치(知恥).
부끄러움을 아는 것(知恥)이 용기일세. 지금 이 땅에서 가장 필요하고 절실한 덕목은 이것일지 모르네. 속에서 돋아오르는 부끄러움을 외면하지 않는 것 말일세. 살다 보면 생각이 달라질수도 있고 관점이 바뀔수도 있으며 또 실수나 실언을 할수도 있네. 현실 판단이 잘못될수도 있고 뭔가 의욕을 가지고 하려다 보니 뜻과는 다른 것도 있을수 있네. 식언(食言)도 사람인 이상 할 때가 있는 법이지.
하지만 그런 것들에 대한 부끄러움이나 민망함을 피하지 말게. 그럴 때일수록 정직하고 분명해야 하네. 하면 왜 하는지, 거두면 왜 거둬야 하는지 토로하게. 무용담 속에 춤추는 겁없음이나 목숨을 아끼지 않는 호전성이 용기가 아닐세. 이게 바로 진정한 용기일세. 최근의 공직인사와 관련한 물의나 앞으로 생겨날수 있는 크고 작은 실수나 오점들에 대해 그대가 취해야할 태도의 핵심은 여기에 있다네.
(위의 9경과 지치(知恥)는, 4서(書) 중의 하나인 '중용(中庸)'에 나오는 공자의 말들입니다.)
# 다음은 2017년 1월26일에 필자가 쓴 '공자가 박근혜 대통령을 꾸짖은 5가지'
논어에 나오는 공자의 오미(五美)론을 풀어, 최근 박근혜대통령의 리더십과 비교를 해보았습니다. 공자는 이 다섯 가지 아름다운 태도와 행동이 정치를 하는 사람의 자질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첫째 혜이불비(惠而不費), 은혜를 베푸는 건 좋지만 낭비해선 안되고
둘째 노이불원(勞而不怨), 남에게 일을 시키되 원망을 사서는 안되고
세째 욕이불탐(欲而不貪), 의욕을 부리는 건 좋지만 탐욕으로 나아가선 안되고
네째 태이불교(泰而不驕), 배포와 아량을 지니는 건 좋지만 교만해져서는 안되며
다섯째 위이불맹(威而不猛), 위엄을 갖추는 건 좋지만 그렇다고 그악하고 사나워져선 곤란하다는 것입니다.
그 논지를 현재의 최순실 사태 및 최근의 국정 관련 논란들과 비교해서 보면 그 뜻이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옛 사람들이 지도자의 품격을 강조한 것은, 그것이 나라 전체의 품격이며 나라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전체의 삶의 격을 말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늘을 두려워할 줄 알고, 민심을 두려워할 줄 알고, 훌륭한 선인들의 말씀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 그런 기품을 유지할 수 있다고, 공자는 말하고 있기도 합니다.
아시아경제 티잼 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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