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의 취임사에는 있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취임사에도 있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취임사엔 그 대목이 전혀 없었다. 그것은 '정치'였다.
박 전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막중한 시대적 소명'으로 경제부흥, 국민행복, 문화융성을 제시하고 설명했지만, 이를 실현하기 위한 정치과정은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정치와 관련된 발언을 굳이 찾아보면, '정부'와 '국민'의 관계에 대해 "저는 깨끗하고 투명하고 유능한 정부"를 만들테니 "국민 여러분께서도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뿐만 아니라 공동의 이익을 위해 같이 힘을 모아주실 것을 부탁드린다"고 말한 대목뿐이다.
노 전 대통령과 이 전 대통령은 정치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노 전 대통령은 "정치부터 바뀌어야 한다"며 "당리당략보다 국리민복을 우선하는 정치풍토가 조성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대결과 갈등이 아니라 대화와 타협으로 문제를 푸는 정치문화가 자리 잡았으면 한다"며 "저부터 야당과 대화하고 타협하겠다"고 다짐했다. 이 전 대통령은 실용정치를 내걸고 정치권에 "소모적인 정치관행과 과감하게 결별하고 국민의 뜻을 받들고 국민의 고통을 덜어주는 생산적인 일을 챙겨 하자"고 제안했다. 이를 위해 "여와 야를 넘어 대화의 문을 활짝 열고 국회와 협력하고, 사법부의 뜻을 존중하겠다"고 약속했다.
취임사는 정치에 대한 박 전 대통령의 생각을 '원형'으로 살펴볼 수 있는 자료다. 그는 정치 이슈를 놓고 자주 정반대로 말을 바꿨다. 그래서 어느 한자리의 발언으로는 그의 정치관을 짐작할 수 없다. 그러나 그가 대통령이 된 다음 선거과정의 경쟁에서 벗어나 백지에 국정 구상을 펼쳐놓은 취임사에는 그의 생각이 많이 반영됐다고 볼 수 있다.
취임사를 보면 박근혜 전 대통령의 머릿속에는 행정부가 민주절차에 의해 의견을 수렴하고 정책을 수립해 입법하고 시행하는 과정이 자리 잡지 않았다고 나는 짐작한다. 그래서 그는 민의를 듣지도 않았고 민의의 대의기구인 국회를 상대로 자신의 생각을 설득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정치에 대한 그의 관념은 박정희 시대의 것이었다. 민주주의 사회와 맞지 않는 시대착오적인 관념이었다. 그런 생각을 품고 실행하는 정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통할 수 없었고 알력과 마찰, 불만을 빚을 뿐이었다. 그의 정치 리더십이 지지자들의 기대는 물론 일정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은 취임 후 시일이 지나면서 드러났다.
그는 민주주의 정치에 대한 관념이 없었을 뿐더러, 정치 지도자의 기본조건을 어느 하나도 갖추지 못했다. 정치 지도자의 기본조건은 시대의 과제를 파악하는 통찰력과 공감능력, 설득력, 도덕성으로 압축할 수 있다. 그는 통찰력이 없었고 공감능력이 매우 떨어졌고 설득력이 없었으며 도덕성이 결여됐다. 그는 최악의 대통령으로서 가장 훌륭한 반면교사였다.
제19대 대통령 선거 후보는 이 네 가지 기준에서 철저하고 냉정하게 검증해야 한다. 안타깝게도 이번 대선에 등록한 후보들 가운데 통찰력, 공감능력, 설득력, 도덕성 모두를 갖춘 정치인은 없다고 본다. 대선 후보들에게서 가장 아쉬운 대목이 통찰력이다. 유권자들은 아쉽지만 차선을 선택해야 한다. 각 후보가 도덕적인지, 국민들과 공감하고 설득하면서 정책을 펼 것인지 뜯어봐야 한다. 어느 후보가 그런 정치인이라고 생각하시는가.
백우진 한화투자증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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