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세 이후 유럽 제국주의 열강의 서세동점(西勢東漸)에 대응하는 일본과 조선의 상이한 전략은 두 나라의 운명을 바꾼다.
시마바라(島原)에서 일어난 1637년 기독교도 반란을 진압한 일본 막부 정권은 배후로 의심되는 포르투갈인들을 추방해 버렸다. 이에 앞서 막부는'데지마'(出島ㆍ でじま)라는 인공섬을 나가사키에 개발하였다. 면적 1만3000제곱미터, 바다를 메워 부채꼴 모양 부지를 조성하고 숙소, 창고 13동을 막부정부가 건립하는데 은(銀) 300관이나 들었다. 막부는 데지마에서 포르투갈 세력을 추방하고 그 자리를 네덜란드 상인들로 채웠다. 명분상 쇄국은 했지만 일본은 서구 과학기술을 흡수하기 위한 탯줄은 유지하는 계산적인 선택을 했다.
불행히도 조선의 책략은 많이 달랐다. 대원군이 서양인을 배척하기 위해 전국에 세웠던 척화비(斥和碑)에는 "양이침범 비전즉화 주화매국(洋夷侵犯 非戰則和 主和賣國ㆍ서양 오랑캐가 침입하는데, 싸우지 않으면 화친하자는 것이니, 화친을 주장함은 나라를 파는 것이다)"라는 주문(主文)을 큰 글자로 새기고, "계아만년자손(戒我萬年子孫ㆍ우리들의 만대자손에게 경계하노라)"라고 작은 글자까지 새겼다. 서양에 개방하겠다는 자는 그 영혼까지 잘라내겠다는 생각… 같은 시기 일본에 비해 이념적이고 다분히 종교적이다. 오늘날의 한국인의 정신, 특히 북한의 정서와 비슷하다.
당시 서양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을 수용하는 태도도 일본과 조선은 '하늘과 땅' 이었다. 일본에는 네덜란드(和蘭)를 통해 서구 학문ㆍ기술을 배우는 이른바 난학(蘭學)이 유행했다. 이 학파는 나가사키(長崎)지방을 중심으로 실증적, 비판적인 정신으로 발전해 히라가 겐나이(平賀源內)나 시바 코오칸(司馬江漢) 같은 탁월한 학자들을 배출했다. 조선과 다른 점은 막부(幕府)는 난학을 실학(實學)으로 장려하고 이를 비방하는 유학자들은 탄압까지 했다. 이런 전통은 메이지(明治) 시대에 자연스럽게 영학(英學), 양학(洋學)으로 발전하였다. 하지만 조선은 서양학문에 관심도 없었고 서양 서적을 읽을 수 있는 지식인도 없었다. 그로부터 약 50~100년후 일본은 전함 야마토, 제로 전투기, 항공모함을 생산하여 태평양 전쟁 직전에는 미국 군사력을 압도하는 능력을 가졌고. 노벨 과학상 수상자들을 많이 배출했다. 같은 시기 한반도는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로 넘어가 근대화의 뿌리는 처참하게 말라 버렸다. 격랑의 세계사적 변화에 눈은 감고 '우리민족 끼리'를 외치다 벌어진 이념중심 사고방식의 자업자득이다.
아무래도 '최순실' 덕분에 차기 정권은 야권이 잡을 것 같다. 대선후보 토론에선 먹고 사는 문제, 즉 경제정책에 대한 토론은 치열하지 않지만 짐작컨대 '성장'보다 '분배', '자유'보다 '규제'가 강조되고 유럽형 복지사회와 사민주의(社民主義) 경향이 지배적일 것으로 예상된다. 즉 2017년 한국사회는'데지마' 보다 '척화비' 쪽으로 간다고 생각하면 무리일까?
이제 세계는 '4차 산업혁명'이란 엄중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다. 쓰나미 같이 몰려오는 세계사의 변화에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따라 나라의 미래는 달라진다. 일본과 조선의 선택같이 극단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다. 하지만 집권을 희망하는 대선후보들에게서 세계사적 변화에 대응하는 전략을 듣기 어렵다.
가장 시급한 것이 규제 혁파다. 지금까지 설립된 소위 '특구'들은 제 구실을 못하고 그 비전과 실천 전략도 일본의 '아베노믹스'특구전략에 비해 턱 없이 부실하다. 한국의 특구정책은 나눠 먹기식으로 전국이 특구화되고 각 특구 수장은 퇴임 공무원들이 자리 차치하는 전형적 관료주의 행정이다.
우리에게는 4차 산업혁명을 준비하는 '데지마'가 필요하다.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강병호 배재대학교 한류문화산업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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