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뉴욕 김근철 특파원]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의 대북 기류가 점차 강경해지고 있다. 단순히 6~7일(현지시간) 미국 플로리다에서 열리는 트럼프 대통령과 중국 시진핑(習近平) 주석의 정상회담을 앞둔 압박용이 아니다. 백악관은 물론 전ㆍ현직 안보 당국자, 워싱턴의 정치인들까지 나서 그동안 금기시돼왔던 북한에 대한 선제타격론을 언급하며 봉인을 해제할 정도로 심상치 않은 기류다.
트럼프 정부의 분위기가 이처럼 초강경으로 치닫고 있는 것은 북핵 문제가 이제 한반도 및 동북아 정세 현안에 그치지 않고 미국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최근 미국에선 통제 불능의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김정은 북한 노동당위원장의 주도로 북한이 수년내 핵 미사일로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증폭되고 있다.
4일(현지시간) 미 상원 군사위 청문회에 나온 존 하이튼 전략사령관의 언급이 이 같은 정서를 그대로 대변한다. 미국의 핵무기와 미사일방어체계 운용을 담당하는 하이튼 사령관은 증언을 통해 "미국에 가장 큰 위협은 러시아"라면서도 "내가 거의 매일 밤 걱정하는 것은 북한"이라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와 중국은 예측이 가능하지만 "나는 오늘 밤, 북한이 무슨 짓을 할지 확신할 수 없다"고 털어놓았다. 특히 하이튼 사령관은 "김정은이 왜 그러는지를 이해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지적했다.
마이클 헤이든 전 중앙정보국(CIA) 국장도 이날 존스홉킨스대학 국제대학원(SAIS)이 주관한 온라인 강연에서 "북한의 핵무기 개발은 단순히 도발을 위한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북한은 트럼프 대통령의 (4년) 임기가 끝나기 전에 자체적으로 생산한 핵무기 또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아마도 시애틀까지 도달하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헤이든 전 국장은 북한이 핵 탄두를 탑재한 ICBM을 완성하려면 수많은 기술적 난관이 있을 것이란 점을 인정하면서도 "만약 북한이 핵미사일을 발사하려고 한다면, 거침없이 할 것"이라며 우려를 표명했다.
백악관 고위 당국자가 북핵 문제에 대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응급 상황이란 표현까지 쓴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로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백악관은 "모든 옵션이 테이블 위에 올라와 있는 상태"라며 모든 대북 옵션 가능성을 열어 둔 상태다. 미국의 NBC 방송이 '간판 앵커' 레스터 홀트를 한국 오산 미 공군기지로 보내 특집 뉴스를 제작한 것도 한반도 내 미국과 북한의 군사적 충돌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분위기를 고려한 셈이다 .
물론 트럼프 정부가 군사적 옵션을 배제하진 않고 있지만 최우선에 두고 있지는 않다. 트럼프 대통령과 행정부는 일단 미중 정상회담을 계기로 중국의 적극적인 대북 제재 공조를 이끌어내는 데 주력하고 있다. 워싱턴 정가에선 미국이 북한을 굴복시키기 위해 비군사적 제재를 총동원하더라도 중국이 북한의 살 길을 열어주고 있어서 효과를 거둘 수 없다는 점에 이론이 없다.
따라서 일단 트럼프 대통령은 시 주석을 만난 자리에서 베이징 당국이 강력한 경제 제재에 나서야 한다고 압박할 전망이다. 이날 백악관의 고위 당국자도 "중국은 여전히 북한에 대해 강력한 경제적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면서 이 문제가 정상회담에서 핵심적으로 논의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과 행정부는 중국에 북한산 석탄 수입에 대한 엄격한 규제와 함께 대북 중유 지원도 문제 삼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그동안 중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 제재 논의 과정에서도 북한 주민을 위한 석탄과 원유 거래 제한은 부당하다며 제재의 강도를 교묘히 떨어뜨렸다.
백악관은 이날 북한과 거래하고 있는 중국 기업과 금융기관을 제재할 수 있는 '세컨더리 보이콧' 카드를 꺼낼지에 대해선 구체적 언급을 피했다. 그러나 중국의 협조가 미흡할 경우 세컨더리 보이콧을 도입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와 별도로 미 의회와 정부는 북한에 대한 테러 지원국 재지정 수순을 밟아가고 있다. 하원은 지난 3일 '북한 테러 지원국 재지정 법안(H.R.479)을 압도적인 찬성으로 가결했다.
이를 바탕으로 트럼프 정부는 북한에 대한 테러 지원국 재지정을 위한 최종 검토에 나설 전망이다. 북한은 1987년 11월 대한항공(KAL)기 폭파사건으로 이듬해 1월 테러 지원국에 지정됐지만 2008년 북핵 검증 합의 이후 대상에서 삭제됐다. 북한이 테러 지원국으로 지정되면 미국은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 결의안과 별도로 북한 지도부와 정권 핵심인사와 관련 정부기관, 기업들에 대한 독자적인 경제 봉쇄 조치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한편 미국 정부는 중국에 시장경제(ME)국 지위를 부여하는 방안을 연방 관보를 통해 공식적으로 언급했다.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중국은 지금까지 비시장경제(NME) 국가로 분류돼왔다. 중국의 무역지위에 대한 재검토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시 주석에게 내보인 하나의 '협상 카드'일 수도 있다.
뉴욕 김근철 특파원 kckim10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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